[라멘여행 21] 도야마의 ‘컬러 라멘’

블랙을 시작으로 브라운, 화이트, 레드, 그린이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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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라멘, 출처 : 다카오카 그린프로덕트

(여행레저신문=장범석기자) 혼슈(本州) 중부지방에서 일본해(동해)를 끼고 있는 도야마(富山)현은, 북쪽 바다를 제외한 3면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에도시대 가정상비약 제조 및 유통으로 이름을 날렸고, 근대 들어서는 다테야마(立山)연봉의 풍부한 수자원으로 생산된 값싼 전기를 이용해 호쿠리쿠(北陸) 공업지대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2013년에는 ‘컬러 푸드(Color Food)’라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내놓아 주목을 끈다.

컬러 푸드는 지역을 대표하는 20여 가지 음식을 흑·백·적·녹색·갈색·청색·핑크의 7가지 색상으로 나눠놓은 것이다. 청색 티(Tea)나 블랙 사이다 등 식욕이 일 것 같지 않은 묘한 품목도 있지만, 음식을 색깔별로 분류한 발상이 신선하다. 그 중에는 컬러 라멘도 5가지가 있다. 도야마는 일찍이 블랙(일본어 ‘부락쿠’)라멘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블랙라멘, 출처 : 타이키(大喜) 홈페이지

블랙라멘은 1955년경 토야마시의 전후 복구사업에 종사한 젊은 노동자들의 점심 메뉴에서 유래한다. 진한 쇼유 스프에 굵은 면을 사용하고, 챠슈・멘마・파 등 고명 위로 검정 깨소금이 뿌려진다.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땀을 많이 흘리는 이들에게 염분과 영양을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약선 요리였던 셈이다. 맛의 핵심이 되는 간장은 지역 비전의 어장(생선 간장)을 끓여 사용한다. 블랙이란 용어는 스프의 색깔이 검고 진해 자연스럽게 붙었다. 이 라멘은 타이키(大喜)라는 라멘 집이 야타이(포장마차) 시절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야마 블랙’의 원조로 불리는 타이키는 현재 토야마 시내 4곳에 직영점을 두고 있다.

블랙 라멘이 전국 지명도를 갖기 시작하는 것은 2007년 후지TV에서 방영한 전국라멘 그랑프리에 소개되면서부터다. 2009년에는 이미즈(射水)시의 노포 멘야이로하(麺家いろは)가 ‘도쿄 라멘쇼’에 출전해 매출 1위를 기록한다. 이 점포는 2014년까지 6번의 대회 중 5회를 석권하며 전국에 블랙라멘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다. 라멘의 지명도가 오르자 식품회사들이 연이어 컵 라멘을 출시하고, 이에 자극 받은 주변 지역에서도 새로운 라멘 붐이 일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2010년 북동부의 뉴젠(入善)쵸가 전통 된장으로 맛을 낸 브라운(차색) 미소라멘을 내 놓았다. 이 라멘의 포인트는 된장에 새우 엑기스를 섞은 스프에 있다. 면과 고명은 점포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뉴젠쵸는 이와는 별도로 고춧가루를 섞은 해양심층수로 면을 반죽한 레드라멘도 개발했다. 지역TV방송국과 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개발한 레드라멘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뉴젠(入善)레드라멘, 출처 : 도야마관광navy

다음으로 새로운 맛을 선보인 곳은 서부 내륙 메르헨(독일동화)의 거리로 유명한 오야베(小矢部)시. 이곳은 톤코츠 스프의 화이트 컬러를 고유색으로 한다. 돼지고기의 비린 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토핑 위에 생된장이 얹혀 나온다.

화이트와 거의 같은 시기 그린(녹색)도 모습을 드러낸다. 개발자는 ‘다카오카(高岡)그린프로덕트’라는 지역 법인. 이곳에서는 돈코츠 스프에 시금치를 갈아 넣어 녹색을 표현하고 있다. 현 서쪽에 위치한 인구 17만의 타카오카는 도야마에 이은 도야마 제2의 도시다.

일본 지자체들이 독자성 있는 라멘을 개발하는 것은 ‘마치오코시(町お越し, 지역부흥)’의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컬러 라멘은 임팩트 있는 색상과 맛을 무기로 컵 라면이나 선물용으로도 인기를 끈다. 라멘 개발에 성공한 4개 지자체는 2014년 ‘도야마 컬러라멘 협의회’를 결성하고 공동으로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블랙 라멘에서 시작된 토야마현의 컬러 푸드는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