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여행 26] 독창적 스타일의 ‘가고시마 라멘’

간수를 사용하지 않는 흰 면, 숙주대신 콩나물 사용

‘고무라사키’의 가고시마라멘, 출처 : mizuhosakura.com

(여행레저신문=장범석기자) 규슈 남쪽 끝자락 가고시마현에서 유행하는 라멘은 돈코츠 계열이지만, 규슈 다른 지역과 달리 독자방식으로 스프를 만든다. 이곳의 스프는 돼지 뼈 외에 닭 뼈와 야채를 넣고 비등점과 시간을 조절해 끓여내기 때문에 색깔이 옅고 맛이 부드럽다. 이러한 조리법은 옛날부터 돼지고기를 먹어온 오키나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1609년 사츠마한(薩摩藩, 가고시마 옛 명칭)은 유구왕국(오키나와)을 복속시키고 그들의 돼지고기 식용문화를 받아들였다. 돼지 뼈 특유의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마늘이나 볶은 파를 이용하는 방법도 일찍이 터득하고 있었다. 면은 간수를 넣지 않는 흰 면을 사용한다. 라멘의 상식을 벗어난 라멘인 셈이다.

여기에 점포마다 독창적인 요리법을 채용하는 것도 가고시마 라멘의 특징이다. 보통의 경우, 지역을 대표하는 라멘은 오리지널 점포 한 두 곳을 중심으로 유사한 스타일이 주변에 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가고시마에는 표준으로 지목할만한 스타일이 없다.

콩나물이 들어간 가고시마라멘, 출처: loco.yahoo.co.jp

라멘을 먹을 때, 얼음물 대신 차(茶)가 나오고 단무지가 제공되는 것도 가고시마 식문화의 특징이다. ‘쯔케모노(漬物)’라 부르는 단무지는 한국의 짠 무와 외관과 맛이 비슷하다. 점포에 따라 숙주대신 콩나물을 넣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가고시마 라멘은 가격이 좀 비싸다. 그 이유는 점포마다 자신의 스프에 맞는 면을 사용해 제면 원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신요코하마 라멘박물관을 창업한 이와오카·요지(岩岡洋志)는 이러한 가고시마라멘을, “가고시마 사람들의 자주성 강한 성격, 연구는 하되 모방하기 싫어하는 전통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 정의한다.

가고시마라멘를 대표하는 점포로는 1947년 창업한 ‘노보루야’를 비롯해 ‘노리이치’, 코무라사키, 도겐(桃源), 1972년 창업한 ‘가루후덴몬칸’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중 ‘코무라사키’ 구마모토 라멘 편에서도 이름이 나오지만, 두 점포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 ‘코무라사키(濃紫)’는 보라색 열매를 맺는 키 작은 낙엽수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관상수다.

챠슈가 독특한 ‘노보루야’라멘, 출처 : r.gnavi.co.jp

가고시마의 노포 중 2014년 폐업 후 재 창업한 노보루야의 스토리가 흥미롭다. 이하 내용은 2016.9.6.일자 서일본신문의 기사를 간추린 것이다. 연로했던 노보루야의 여주인은 점포를 이어갈 아들이 사망하자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고 만다. 갑작스런 폐업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던 중, 열혈 팬 한 명이 전 주인의 허락을 받아 다시 문을 열기로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레시피도 없이 여주인의 감(感)에 의존했던 맛을 재현하는 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주변 관계자들의 협력과 35회에 이르는 단골들의 시식회 등을 거쳐 2016년 다시 오픈에 성공한다. 시식회에는 연인원 5백여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노보루야가 폐점했을 때, ‘이제는 사라진 환상의 맛’이라는 광고카피를 단 컵라면이 출시될 정도로 노보루야의 인기는 전국적이다. 다시 문을 연 노보루야는 현재 가고시마 시내 번화가 덴몬칸(天文館)에서 성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