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滿洲), 동북삼성(東北三省) 그리고 만주 개장수의 진실

중국인들이 지린, 헤이롱쟝, 랴오닝성을 동삼성(东三省)이라 부르는데 반해 일본은 이를 만주라 부른다, 일본이 1905년에 일로전쟁에 승리한 뒤 철로를 건설하고는 이를 남만철로라 명명했고 1931년 9.18사변을 일으켰는데 이를 일본은 만주사변이라 부른다,

9.18사변이 국민당정부는 일본정부와 외교담판을 벌였는데 당시 일본대표는 만주란 용어를 사용한데 반해 국민당 정부는 줄곧 동삼성이란 표현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 만주란 명칭은 동삼성보다 앞선다. 중국인도 만주라 불렀고 서양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제정러시아의 짜르도 중국동북지역을 만주리아(Mаньчжурия)라고 불렀으니 이는 만주족의 근거지란 의미였다.

청나라 중엽부터 영국인도 중국동북지역을 러시아어단어를 차용해 Manchuria로 지칭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중국동북지역에 주목했다. 당시 그곳은 땅은 넓으면서 인구는 희박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청나라때 이곳에 인구가 희박했던 이유는 용, 즉 천자의 발상지인 롱싱즈띠(龙兴之地)로 신성시해 한족의 이주를 금했기 때문이었다.

메이지시대 일본 스파이들은 중국동북지역에 파견돼 인구밀도가 낮으면서도 자원이 많은 점에 놀란 것으로 전해진다. 청나라가 방치하다시피 한 광활한 만주의 대지를 일본의 이익지역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하기에 이른다. 만주에 대한 일본의 욕심은 동유럽과 러시아영토를 향한 나치 독일의 레벤스라움(Lenbensraum)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청나라 황실이 신성시해 한족의 만주 이주를 금했지만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1875년부터 3년동안 산서, 산동, 하북지역에 대기근이 발생해 1천만명가까운 인구가 아사하는 재앙이 발생하는데 이를 중국사에서는 丁戊奇荒이라 한다. 이 때 굶주린 화북지역 인구가 생존을 위해 대량으로 산해관을 넘어 동북지역으로 이주하는 촹꽌동 闯关东(chuangguandong闯은 힘있게 돌파한다는 의미로 한국어 독음은 ‘틈’이다)이란 사건이 발생한다.

한족이 이때부터 2-30년동안 동북으로 이주하면서 인구구성에서 만주족과 몽고족을 능가하기에 이르고 20세기 초가 되면서 청나라는 제정러시아와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동북지역에 지속적으로 인구를 늘려야 한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 奉天省(현재의 랴오닝성)”、“吉林省”、“黑龙江省”라는 세 개의 행정구역을 설치하고 이를 동북삼성, 동삼성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민족도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생존을 위해 만주로 많이 건너갔다. 이때 ‘만주 개장수’란 말이 등장했는데 유래는 확실치 않다. 큰 돈을 벌러 갔는데 별 볼일 없었다든지 독립운동이란 대의를 내세우며 만주벌판을 달렸다고 과장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별 성과가 없었다는 자조 섞인 우스개 소리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만주에서 개를 식용으로 팔았다고 가정하면 황당한 이야기다. 만주족은 개를 신성시해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여기에는 만주족의 건국과정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누르하치가 명나라 요동 총병 이성량(李成梁)에게 쫓기면서 하천변 갈대숲으로 숨었을 때 피곤에 지쳐 잠시 잠이 든 동안 명군이 화공(火攻)을 해서 위태로웠으나 누르하치의 개가 하천의 물을 온몸을 적셔 주인을 구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민간설화에 따르면 누르하치가 취해 군막에서 잠들었을 때 만주족 족장인 롱둔(龙敦)이 그를 주살하려 했다. 이때 누르하치의 누렁이가 잠든 주인을 물어 깨우고 롱둔(龙敦)에게 필사적으로 달려들다 죽었다고 한다. 이후 누르하치는 누렁이를 후히 장사지내고 개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누르하치와 의견(義犬)이야기는 역사적으로 고증이 불가능 민간설화 수준의 이야기다. 하지만 중국내 이슬람민족인 회족(回族)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처럼 지금도 만주족은 개를 먹지 않는다. 아마도 누르하치의 명령 때문이기 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해 수렵을 하면서 개를 아끼는 민족특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글: 박상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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