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바람과 물 그리고 푸른 가슴을 찾는 곳, 우이동 용덕사

2월말이니 겨울의 끝자락일터인데 추위는 가시지 않고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은 눈발을 흩뿌리기 시작한다.
우이동 버스 정류장을 조금 지나 사이길로 들어서 얼마지 않아 용덕사 입구에 다다른다.
그 잠깐 사이 눈발은 더 짙어지고 함박눈이 내리는 작은 산길 초입에서 스님을 처음 뵙는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길이 미끄러우니 찬찬히 살피며 올라가시지요’ 짧은 인사를 나누고 스님이 먼저 산길을 짚어 올라가기 시작한다.

용덕사 입구는 소형차 한 대가 다닐 수도 없을 만큼 비좁은 우이동계곡의 들머리이다. 바로 지척에 세속의 화려함과 번잡함이 그득하지만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이 곳은 벌써 인간계와 다른 세상인 듯하다.

천천히 걸음을 놓는 스님의 회색 승복 위에 눈꽃이 피어난다. 회색보다 더 맑고 밝은 흰 눈꽃은 인간의 번뇌와 회한처럼 잠시 머물다가 흩어져 사라진다.
우산을 내미는 보살의 청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어깨 위에 눈꽃들을 얹고 더욱 짙어진 눈발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바위 형상이 묘하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용덕사를 찾았던 보살이 알려주더군요. 두꺼비바위랍니다.’ ‘이리로 오십시오. 여기서 보시면 좀 더 두꺼비 같을 겁니다.’ 스님이 가리키는 바위는 영락없는 두꺼비 모양을 하고 있다.

전래로 두꺼비는 복을 상징하였으니 흐벅지게 내리는 눈 사이로 보이는 두꺼비바위의 형상이 마음을 더욱 푸근하게 한다.

‘용덕사 주변에는 재미있는 모습의 바위들이 많습니다. 이 곳을 오르내리며 코끼리 여우 등의 이름을 붙여 준 바위들이 제법 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는 사이 계곡의 오른쪽에 자리한 용덕사의 대웅전이 눈에 들어온다.

산사 입구의 작은 길을 걸어온 10분 남짓의 시간은 몇 리 산길을 걸어야 겨우 당도할 수 있는 깊은 산속의 맑은 암자를 턱하니 펼쳐 보인다.

‘우선 목부터 좀 축이시지요. 이물은 보약보다 좋다는 서출동류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릅니다. 동쪽이 서쪽보다 지세가 높기 때문이지요. 이 물은 서출동류인데, 마시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귀한 물입니다.’

스님이 물 한 그릇을 바가지에 담아 권하시면서 설명을 한다.

‘어느 가뭄이 심하던 해에 계곡물이 마르고 스님들이 마실 물을 찾아다니던 중 바로 작은 굴 같은 곳에 몽실몽실 스며 나오는 맑은 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출동류에 석간수이니 이만한 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용덕사는 우이동에 위치한 작은 절이다. 높이가 10미터에 이르는 바위에 음각한 약사마애불로 유명한 곳이고 불자라면 한번쯤 다녀 가야 할 영험한 곳으로 꽤나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터가 좁아서 큰 불사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마애불을 정갈한 마음으로 몇바퀴 도신다면 그것으로 족하지요. 경전을 공부하고 기도를 하는 것도 좋지만 세속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는 청정도량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온갖 상념을 지워버리는 것으로 중생의 상처는 치유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도를 터득하는 것일 겁니다.’

‘아직 마애불을 온전히 돌며 마음을 닦을 수는 없습니다. 조금 안타깝습니다. 이곳저곳이 막혀있습니다. 봄이 오고 조금 형편이 좋아지면 한번 일을 저질러볼까 합니다. 이 작은 절을 천리길 멀다않고 찾는 분들을 위해 해야할 도리니 서둘러야지요.’ 마음 잡수신 일이 쉽지만은 않음을 내비치시듯 스님은 말끝을 흐린다.

마애불 몇걸음 뒤로는 토굴이 자리하고 있다. 산신각이다.
‘예전에 이 일대에서 사신 분들은 이곳에서 산신제를 지냈습니다. 마을에 행운과 복록이 넘쳐나고 액운을 멀리할 수 있도록 빌었던 곳입니다.’ 요즘도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자 공양이나 하자며 먼저 걸음을 놓으신다. 노스님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으실 연세시겠지만 걸음걸이며 목소리 그리고 움직임으로는 나이를 어림잡기 어렵다.

몇 가지 나물반찬으로 점심 공양을 하며 스님은 이야기를 이어간다.
‘동진출가한 터라 설움이 많았어요. 내가 어릴 때는 절이 참으로 빈한했어요. 탁발을 해서 노스님들과 나누어 먹었지요’
‘탁발을 다니면 동네 아이들은 모두 뒤를 쫒아 다녔어요. 아이들의 조롱과 놀림을 받으며 탁발을 하노라면 촌로들이 아이들을 나무라며 “대사, 곡차 한 사발 하고 가시오.” 라며 위로를 해주곤 했었어요.’

화범스님은 시서(詩書)에 능하신 분이다. 시인으로 등단을 하셨고 서예와 서화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으로부터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뜻은 슬며시 접어버렸다. 어떤 연유에서인가 스님은 그리 내켜하시지 않는다.

‘그저 그때는 화(火)가 좀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 힘든 시간들이 가슴에 화를 조금 남겨 두었었나 봅니다. 시를 쓰고 그림을 배웠던 것은 화를 벗어내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가진 것도 없고 가질 필요도 없는 중이니 이루고자 하는 것도 없습니다. 용덕사를 찾는 분들이 조금 더 편히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고 머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유일한 바람입니다. 서울시내에서 불과 삼십분 이내의 거리에 이런 산사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지요.
들어 보십시오. 바람소리 물소리 풍경소리…….마음이 잦아들지 않습니까?

다시 바랑을 걸치고 나설 채비를 하신다. 우산을 챙겨주시던 노보살은 스님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못내 걱정스런 표정으로 배웅에 나선다. ‘나오지 마십시오. 내 또 다시 옵니다.’

내려오는 길은 제법 눈이 쌓였다. 겨우내 보지 못한 설경을 용덕사에서 제대로 담아 놓았다.

‘자주 오십시오. 혹여 마음이 산란하시거든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더운 밥 한 그릇, 찬이 없어도 나누면 좋지 않겠습니까? 용덕사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펑펑 내리던 눈이 어느새 멎었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맑게 갠 짙푸른 하늘 아래, 바로 사람들 사는 마을이다.

글 사진: 이정찬/ 여행레저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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