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을 이해하는방법 – 첫번째 카오슝 여행

<타이완(臺灣)>을 이해하는 방법 – 카오슝(高雄)

대만을 잘 아는 학자는 대만을 이렇게 얘기한다.

“대만인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도 평화롭게 섞어 모든 재료를 넣어 만드는 만두처럼 포용의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대만은 절도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처럼 질서 있는 조화로 여백의 미를 사랑하는 정신의 소유자들이 사는 나라!”라고 정의한다. 인심이 넉넉하고 이타적인 관용을 사랑하면서도 치밀한 인정과 원칙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사는 미덕이 태평양의 보물섬 <대만의 상징(狀徵:Symbol)>이라는 것이다.

티웨이가 인천공항을 날아 대만 제3의 도시 카오슝(高雄)의 구름과 사귀는 방법은 존경스러웠다. 아주 얌전히 비행기의 구애를 받아들이는가 싶던 구름으로부터, 순식간에 외면 당하며 저항을 극복해 내는 항공기의 에너지는 대단했다.

난기류가 거대한 힘으로 항공기를 눌렀지만 기체는 몸을 뒤틀어 저항하며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마다 위태로워 하는 승객들의 출렁이는 아랫배와 가슴으로 불안의 그늘이 드리웠다. 그러나 망망대해를 지나 미지의 공간에 닿은 여로(旅路)의 손길은 기대로 가득찬 설렘과 엄습하는 공포의 층간소음을 뚫고 가오슝의 물안개를 더듬었다.

티웨이(TW HL8294)가 2시간 40분을 날아 가오슝(高頌)에 내렸을 때 내가 본 것은, 400여년 전 여진족의 침략을 피해 섬으로 건너와 원주민을 달래고(?) 토착주민이 된 내성인(內城人)의 두툼하고 둥근 얼굴, 즉 원만한 시선과 편안한 인상이었다.

그것은 마치 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축소지향의 나라로 일본을 정의한 기억이나,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이 다른 일본인의 이중성을 국화와 칼로 정의한 루스베네딕트의 분석과는 괘를 달리하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느낌 같은 느낌으로서의 철학이다.

그 인상은 그대로 오토바이 도로가 따로 있는 공업도시 카오슝의 분지를 지나, 파리의 세느강이나 영국의 템즈강을 닮은 아이허강(愛河江)의 12km 뱃길을 위로하며, 꿀벌의 보금자리를 연상하는 음악 공연장의 성스러움으로 아로새겨지고 있었다.

만두(餃)는 중국인을 상징하는 음식이라 했다. 만두의 둥근 모양은 원만함과 풍요로움의 상징하므로 좋은 날(명절, 생일)이면 반드시 준비하는 음식이다. 의정부 부대찌개를 닮은 사연을 간직한 우육면(牛肉麵:소고기면) 집에서 만두를 곁들이며 대만의 역사를 생각한다.

400여년 전 명청 교체 시기, 북방 오랑케인 만주족을 피해 대만으로 떠나온 내성인(內城人)들이 먹던 만두에는 잃어버린 대지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정착지에 대한 삶의 갈망이 촛농처럼 녹아 있었을 것이다. 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의 시조인 원주민의 시선은 싸늘했고 그들을 달래 동화되려 한 남부 한족들의 조화는 요원했다.

만두가 그 시기의 요람은 아니지만, 모든 것을 포용하여 감싼 채 전해지는 만두의 건강성은 이해심 많은 대만인의 탄생을 알렸다. 초복에는 찐만두를 빚었고 중복에는 국수를 말았으며 말복에는 다시 만두를 구워 군만두를 내놓으며 평화로운 삶을 꿈꿨다.

만두를 적벽대전을 앞두고 제사 지내던 제갈공명이 인간의 모습을 대신하여 만들었다고 본토인들은 얘기하지만 신빙성은 없다. 그렇게 만두 천국인 대만인들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만두를 만들었다. 소룡포, 수전포, 생전포, 찐만두, 완탕, 군만두, 넙적만두, 부추고기만두, 소고기만두 등 그 이름을 열거하기 어려워서 만두(?)라 했다.

간장과 마늘의 알싸함이 빚어낸 약간은 비릿한 국물을, 간장 소스와 식초, 후추와 고추가루로 잡은 후 우동가락이 춤을 추는 면발 위로 아이스크림 샤벳 같은 소고기 고명이 부드러운, 우육탕(牛肉湯)에 우리의 물만두 같은 수전포(水餃)를 곁들여 저녁을 대신한다.

더불어 5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노포(老鋪)의 주모(?)가 추천해주는 58°짜리 ‘금문주(金門酒)’에 헐렁하고 살찐 대만인들처럼 아무 고민 없이 느긋하게 만만디(慢慢地)를 카오슝인들이 사랑하는 아이허강(愛河江)으로 던진다. 하늘에서 별이 내려오려는 시간을 억지로 제어하며 카오슝 항구에 정박한 유람선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허강의 사랑을 더듬으며 네덜란드와 스페인, 명과 청을 거쳐 일제 강점기 51년을 보낸 타이페이(臺灣)의 역사가, 청조 말엽과 조선 후기의 부폐하고 무능한 왕족과 관료들의 실정과 어깨동무를 하고 다가온다. 그들의 어깨동무는 아편을 달고 살던 청나라 말기 부역인과 좀비화해 가는 21세기 미국의 마약지대를 닮았다.

왜색이 여전히 짙은 나라인 대만 카오슝(高雄)의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58°짜리 금문주를 사서 가방에 넣은 후 조용히, 잠시 머무는 공간인 모텔 ‘금문대반점(金門大飯店)’의 로비를 지나 방으로 그림자처럼 사라지는 이방인(異邦人)의 손끝에 알콜이 아이허강의 밤안개처럼 걸린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은 잊지 못할 광장과 마주하고 잊고 싶은 장소를 알게 된다. 우중충하고 낡은 이미지의 공업지대 회색 도시가, 밤이면 조명과 신선한 바람의 도움을 받아 더할나위 없는 축제와 평안의 도시로 변모하는 280만 항구 도시 카오슝의 시간은,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흐름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수백만 50cc 오토바이의 명랑한 질주 속에서 이방인은 다시 카오슝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 결코 쓸쓸하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사람 사는 공간은 어디나 똑같다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아이허강변 노천카페에 앉아 금문주와 대만맥주를 번갈아 마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희미하게 웃는다.

글 사진:박철민작가
여행레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