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지구촌을 엄습했다 수많은 비극과 고통이 감내되고 일상 풍경도 소리없이 바뀌고 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란 우려섞인 전망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자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나온다.
이런 가운데, 엄숙하고 근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대학교수님들이 온라인(Zoom)에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미 새로운 방식에 일찍 적응을 마친 교수님들이 별 무리없이 온라인 학술대회를 잘 소화했다는 것이 더 적합한 평일 것이다.
◇ 코로나19 날려 버린 ‘학술대회’
한국문법교육학회(구본관 학회장, 서울대 교수)는 30일 낮 12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온라인 영상으로 제32차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본래는 지난 2월 강원대에서 영국 런던대 등 유수의 해외 학자들도 초빙한 국제회의를 겸한 학술대회로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를 거듭한 끝에 실시간 온라인 회의도구인 줌((Zoom)을 활용한 멀티 영상토론과 전날인 29일 학회 홈페이지에 사전 게시한 발표자료집, 발표영상, 토론문 등을 활용해 이날 첫 실시간 온라인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학술대회는 구본관 학회장(서울대 교수)의 개회사, 김헌영 강원대 총장의 환영사, 축사, 본 행사전 2개 분과 6개의 개인 발표와 해외코리아학포럼 3개의 주제 발표에 이어 ‘문법 교재의 변천과 다양화’라는 주제로 2개 분과로 나뉜 본 학술대회 발표와 토론의 순서로 진행됐다.
본 학술대회 주제 발표는 제1분과에서 ‘한국어 교재의 변천과 문법교육 방법’, 제 2분과에서 ‘국어 문법 교재의 변천과 다양화’를 주제로 각각 발표와 종합토론 및 질의 응답이 진행됐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영상 회의였지만, 오프라인 학술대회와 거의 다를 바 없는 활발한 발표와 토론이 이뤄졌다는 평이 나왔다.
이날 거의 전례 없는 온라인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구본관 한국문법교육학회 학회장은 “요즘 이게 다 생활화 되었다. 강의도 온라인으로 하는데 학회라고 크게 다를 것이 없다.”라며 달리 특이할 게 없다는 담담한 소감을 먼저 밝혔다.
구 학회장은 이어서 “우리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야 하니까 학술대회도 그렇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다”라며, “어떻게 보면 온라인으로 하는 장점도 있다. 지금 (온라인 학술대회에) 외국에서도 꽤 여러 분이 참석했다. 멀리 계신 분이 참여한 것처럼 우리는 단점은 줄이고 장점은 살려야죠.”라고 전했다.
◇ 통일 대비 문법은 생활문법 성격으로 가야
이번 대회에서 주목되는 발표가 몇 가지 있었다. ‘중등 문법 교재의 변천과 다양화’라는 주제 발표를 한 김중수 교사(부산 감천중)는 문법 교재에 대한 현장 교사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했다. 문법 과목이 ‘언어와 매체’로 명칭이 바뀌면서, 과연 현장 학교 교육에서 문법 과목이 있는지 없는지 그 존재감조차 무척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언어와 매체’를 검인정으로 내게 되면서 각 출판사의 교과서마다 교수 학습용 문법 내용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어 현장 수업에서는 어려움이 무척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강보선 교수(대구대)가 주제 발표한 “통일 대비 국어 문법 교재 개발의 과제”라는 논문도 주목을 끌었다. 언제 갑자기 올지 모르는 남북 통일을 대비해서 교육과정과 교재를 준비해야 한다며, 문법 교재 개발을 위해서는 문법 용어 등 내용적인 측면을 미리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는 생활 차원의 문법 연구가 활발한데, 남한에서는 아직 그런 연구가 미진하다는 발표가 주목을 끌었다.
이런 점에서 남가영 교수(아주대)가 발표한 “학교 밖 국어 문법 교재의 현황과 함의”도 주목을 끌었다. 즉 문법 교육이 반드시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인을 위한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문법책들이 나와 있으며, 실제 글쓰기 등 언어생활에서 우리말 문법 내용들이 무척 유익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문법 교육은 학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을 위해서도 이바지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한편, 올해 연구년으로 중국 북경대에 1년간 연구교수로 가 있을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아예 출국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이관규(고려대 교수) 전 학회장은 이날 자유 토론에 참여해 “강의를 쉬는 연구년 기간을 이용해 평소 하고 싶었던 남북한 어문규범 관련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언어와 매체’로 과목명이 바뀌면서 문법 과목의 존폐에 대한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문법이 사라진 언어는 말의 품격도 흐려지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한글을 지키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라는 신념으로 고문과 옥살이를 감수하며 우리말을 지켰던 선배 학자님들의 얼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또한, 통일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이제는 남북이 함께 하는 생활 문법 차원의 연구가 절실히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최근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검토하면서 통일 준비 과정에서 우리의 문법 과목 또 교육은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계속 하게 된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 코로나19 시대, ‘한국어 상승시키기’ 기회로
이관규 교수가 한국문법교육학회장을 맡고 있던 지난 2018년, 교육부 차원에서 대입 수능시험 수월성 강조의 명목으로 국어 문법 출제를 폐지하려는 시도가 진행됐었다. 이를 반대한 이 교수를 비롯해 강단에 서기도 쑥스러워하는 천상 책상물림 여러 대학 국어 교수들은 낯선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 눈밭에 나가 피켓시위까지 벌여야만 했다.
하지만, 이후 교육부는 수능 국어문법 출제를 선택의 문제로 돌리고 문법을 ‘언어와 매체’라는 과목에 흡수시키는 방식으로 우회해 결과적으로 ‘문법’이라는 과목 명칭을 없애고 말았다. 교육부의 집요한 ‘국어 문법 화석화 시도’의 배경이 도대체 뭘까? 국어 사교육의 상업화 시도에서 빚어진 어이없는 폐해라는 촌평 등 다양한 분석도 있고, 일각에서는 국어 문법교육 약화를 통한 ‘한국어 추락시키기’라는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다.
케이팝과 드라마의 열풍으로 한국어 공부는 이미 세계적인 대세가 되었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의 선제적 대응으로 높아진 대한민국의 국격은 세계 한국어 학습 열기에 급가속을 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현장에서 가르치는 한국어 전공 교수들 사이에서는 이번 코로나19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이를 한국어 도약의 전기로 삼자는 목소리도 강하게 나온다. 이런 시기에 한국어 교육 체제를 새롭게 정비하고, 특히 국가전략 차원에서 규범으로서의 한국어 문법에 대한 포괄적 검토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온다.
이관규 교수도 이날 학술대회 후 통화에서 “저는 연구년으로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아서 아이의 도움을 받아 겨우 들어왔다.”라고 애먼해 하면서도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느 면에서 보면 복을 받는 것도 같다.”라며 “이런 탄력에 힘입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통일 한국을 앞당길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