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선 이야기] 동방의 피라미드 장수왕릉

‘동방의 피라미드’, 내가 지은 별칭이 아니다.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명명한 안내문 글귀다. 무언가 뻐개기, 허장성세를 좋아하는 중국측에서도 공식 인정한 인물이 장수왕이다. 그런 장수왕릉을 경건한 맘으로 참배하려는 나에게 김 박사가 뜬금없이 질문을 한다.
“윤박, 자네 쪼다를 아는가?”
“쪼다?”
쪼다 알지. 어리석고 모자라 제구실 못하는 사람으로 어릴 때 “야, 이 바보 같은 놈” 하기보다는 “쪼다야” 하기를 더 좋아했으니까.
“근데 왜?”
장수왕의 아들 이름이 ‘고조다(高助多)’다. 아버지 장수왕이 그야말로 ‘98세’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면서 장수(長壽)하였으니, 친아들 조다는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로 오르지 못하는 불행(?)으로 ‘쪼다’가 되었다네. 참으로 잘 지어낸 꾼들의 이야기다.

사진) 새끼무덤. 봉분은 사라지고 석관만 남은 모습 by 윤일원

왜, 중국이 타민족을 무시하면서 유독 장수왕과 광개토대왕을 존중할까?
징크스 때문이다.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하면 망한다는 징크스의 주인공이 그들이다.
장수왕이 그런 역할을 했다. 아버지 광개토대왕이 확장한 영토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여 동북아에서 절대강자로 만들어 놓았다. 손자 문자명왕(文咨明王)에 이르기까지, 128년 동안 동북아 절대강자로 군림한다.
이로써 고구려는 서쪽으로는 요하(遼河), 동쪽으로는 북간도 혼춘(琿春, 두만강 위쪽), 북쪽으로는 개원(開原, 심양 북쪽), 남쪽으로는 아산만·남양만에서 죽령에 이르는 넓은 국토를 차지했다.
중국의 징크스다.

고구려는 중원을 통일한 수(隨)와 전면전(612)을 한다.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첩을 거두면서 수를 망하게 한다. 중원을 통일한 당(唐)과 전면전(645)을 한다. 양만춘이 안시성 전투에서 이세민(태종)의 눈에 화살을 맞추고 애꾸로 만들자, 당 태종은 “다시는 고구려를 침략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4년 후 죽는다.

조선 땅에 일본이 침공하여 임진왜란(1592)을 일으킨다. 명나라는 이여송으로 하여금 5만 명을 파병하여 도왔지만, 참전 후 60년 만에 망한다. 조선 땅에 일본이 주둔하고 청일전쟁(1894)이 일어난다. 청나라는 그 이후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18년 만에 망한다.

한반도에 6·25전쟁(1950)이 발생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은 항미원조를 외치면서 참전한다. 그 이후 8년 만에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인류역사상 최악의 기록 6,000만 명이 굶어 죽는 혹독한 과정을 겪는다.

이러니 중국도 무려 A를 다섯 개나 주면서 ‘高句麗’라는 명칭을 공식 사용하고 장군총을 안내하면서 “절세의 작품”이라 소개하지만, 그들이 이룬 위대한 업적 영토에 대한 지도는 없다.

“장수왕릉은 일명 장군총이라고 불린다. 기원 5세기에 세워진 장수왕릉은 기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석구조 능묘로 고구려 제20대 왕인 장수왕의 능표이기도 하다. (중략) 무덤 주변에는 10여 톤이나 되는 큰 바위가 11개나 된다. (중략) 장수왕릉 능원은 디자인이 완벽하고 석조공예가 정교하여 고구려 석구조 능묘의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절세의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 압록강 by 윤일원

우리 일행은 집안(集安)의 마지막 답사로 그리 멀지 않은 곳 압록강으로 향한다. 백두산 유역에 비가 많이 와서인지 강물이 넘쳐난다. 6인용 보트를 타고 강 한가운데로 접근하니 현지 중국인이 “DSLR 카메라 촬영금지”를 외친다.

손을 강물에 담그면 백두산 천지에 이를까? 발을 강물에 담그면 신의주에 맞닿을까? 강물은 그저 말없이 흐르고 무너져 내린 헐벗은 산비탈 황톳빛 속살만 드러낸다. 강둑을 말없이 지나가는 북한 주민에게 손을 흔들어 보지만, 그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너무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사진) 압록강 건너편 북한 모습, 사진) by 윤일원

아무리 열심히 등골이 휘도록 일해도 ‘자본’이 축적되지 않으면 ‘가난’하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겠지? 내가 “돈과 자본은 달라”를 소리 높혀 외쳐도 그들은 알까? 빤히 보이는 중국 집안(集安) 고층아파트와 즐비한 자가용을 보면 그들도 알 것이로다.

문제가 ‘나’가 아니라 ‘존엄’한 동지한테 있다는 것을. 그리고 풍요로 넘치는 남한에서도 ‘존엄’한 동지를 추종하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역사는 흥망성쇠를 거듭하지만, 압록강이야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무심히 흐를 뿐이다.

*내일은 제4부, ‘백두산 천지를 두 번 오르다’로 이어집니다.

글 사진: 윤일원 작가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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