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스토리 365] 아이스와인 – 추위에 살아남은 포도의 달콤한 부활

헉! 모든 게 얼어 버렸다!”

코로나바이러스로 겨울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채 슬그머니 봄이 찾아오고 있다.

생각해보니 요 몇 년 동안에 혹한으로 고생한 기억이 없다.

페이스북의 과거의 오늘 이야기를 돌아보다가 너무 추워서 모든 것이 얼어붙었던 9년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 추위로 인해 고생했던 기억은 정말 악몽 같았다.

영하 20도,30도까지 내려갔던, 남극보다도 더 추웠다던 그 해의 겨울에는 혹한으로 많은 이들이 고생했다. 내가 일하던 건물에선 화장실도, 배수구도, 수돗물도 모두모두 얼어버렸다.요리도 설거지도, 청소도, 심지어는 볼일을 볼 수조차도 없었다.

물을 약간 틀어 놓고 퇴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이런 초유의 사태에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몸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서 전화연결도 힘든 해빙전문 수리공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간절히 빌어서 방문수리를 요청했다. 말도 안되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해빙을 하고, 그 과정에서 아끼던 그릇들도 깨뜨리고 말았다. 깨져버린 그릇의 파편을 모아 갖다 버려야 했던 혹독했던 그 해 겨울의 기억은 좀처럼 잊기 힘든 ‘살인적인 혹한의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영원히 따뜻해 지지 않을 것만 같던, 날이 시퍼렇던 추위도 시간의 흐름에는 이기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살아남았다.

매년 추위 속에서 살아남는 것이 또 있다.

유난히 길다랗고 좁은,  우아한 병에 들어있는 아이스 와인.

모든 것이 얼어붙는 혹한과 서리, 눈 속에서 살아남은 포도는 아이스와인이 되어 우리의 입안을 달콤하게 적신다.
오늘은 달콤하게 부활한 아이스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이스와인은 얼려서 먹는 와인인가요?”

일반적인 와인과 달리 키 크고 날씬한 병에 든 황금빛깔의 농도 짙은 와인.

와인매니아가 아니더라도 한 번은 다 맛보았을 법한 것이 바로 아이스와인이다. 일반적인 데일리 와인에 비해 용량은 절반밖에 안 되는데 가격은 그다지 싸지도 않다.

왜지? 그냥 달콤한 화이트와인과 대체 뭐가 차이가 있는 거지?

실수로 만든 위대한 예술품

1794년 겨울 독일. 갑작스레 내린 예상 밖의 서리로 인해 포도송이가 꽁꽁 얼어버렸다.

하지만 얼었다고 다 내다버리기엔 너무나 소중히 키워온 포도였기에 프란코니아(Franconia)의 농부들은 얼어버린 포도로 와인을 빚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얼지 않았던 포도가 보여주지 못했던 꿀물 같은 단맛에 상큼한 산도가 어우러져 너무나 훌륭한 와인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눈 속에서 만들어진 와인이라 하여 ‘아이스와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는 일조량이 많고 따뜻한 나라에서 좋은 와인이 생산되지만 이 아이스와인만은 춥고 건조한 지역에서 잘 만들어진다.

아이스와인은 이르면 12월, 늦으면 이듬해 2월까지 포도송이를 들판에 방치한 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수분이 빠지고 마치 건포도처럼 쪼글쪼글해지면 얼어붙은 포도 알을 으깨어 얼음을 제거하고 양조하여 만들어지게 된다.

꽁꽁 언 포도를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하고, 수분이 빠져 양이 일반적인 포도 양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에 와인이 만들어지는 양 자체도 적을 수밖에 없어 값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 추운 지방의 아이스와인이 유명하다. 특히 독일은 리슬링, 캐나다는 비달이라는 품종으로 만들어진 아이스와인이 유명하다.

블루넌 아이스바인 실바너 375ml

독일은 전체 와인 생산량 중에 85%가 화이트 와인으로 고급 화이트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이다. 그 중에서도 랑구스(Langguth)사는 독일 내수판매 1위 에어벤(Erben) + 수출 1위 블루넌(Blue Nun)으로 독일 와인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회사이다.

블루넌은 문자 그대로 ‘푸른 옷을 입은 수녀’ 라는 뜻으로, 오래 전부터 와인은 성스러운 장소인 수도원이나 교회에서만 만들 수 있었기에, 그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수녀그림이 그려져 있다. 가격은 8만원선.

필리터리 에스테이트 비달 아이스와인 375ml

세계 아이스와인의 80%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생산하며 그 중 20%를 필리터리 사에서 생산한다. 필리터리 사는 아이스와인이라는 카테고리의 창시자인 와이너리이다.

레드와인품종인 카베르네 프랑 아이스와인과 캐나다산 세미용 아이스와인을 세계 최초로 시장에 내어놓았으며 가볍고 산뜻한 맛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가격은 9만원선.

아이스와인은 꿀물 같은 묵직한 농도에 달콤함과 적당한 산도가 더해져 달지만 질리지 않고 마실 수 있도록 해준다. 에피타이저 혹은 디저트 그 자체로도 훌륭하며 푸아그라, 호두 같은 견과류, 치즈, 케익류 등 다양한 디저트류와 과일에 잘 어울린다.

너무 차게 해서 먹는 것보다 8~12도 정도에 마시면 다양한 향과 맛을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혹한에서도 살아남아 깊은 아로마와 묵직한 바디감을 자랑하는 아이스와인. 겨울을 보내는 이 시점에서 다음 해의 추위를 다시 기약하며 왠지 달콤한 아이스와인 한잔을 마셔줘야 할 것만 같다.

글 사진: 오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