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북스는 윤동주 전 시집 출간했다고 13일 밝혔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윤동주 전체 작품 124편을 다 담다.
이제까지 발간된 윤동주 시집 및 작품집은 많지만, 윤동주의 작품 전체를 총 망라하여 온전히 한 권에 담은 책은 없었다.
이에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윤동주의 전체 작품을 담은 작품 전집을 발간했다. ‘윤동주 전 시집’에는 소실되지 않은 윤동주의 시와 수필 전체뿐만 아니라, 그동안 북한으로 갔다고 빠졌던 이들의 윤동주를 위해 쓰여진 서문과 후기와 발문 등도 모두 취합하여 실었다. 그리고 이번 증보판에는 일본 국어 교과서에 윤동주의 시가 실린 이바라기 노리코의 수필을 전문 번역하여 추가했다.
‘윤동주 전 시집’에 모두 살려 놓은 정지용, 유영, 강처중 등의 추모 글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학작품이다. 또한 이 시집은 서울시인협회 회장 민윤기 시인이 추천한 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 및 증보판과 마지막 증보판으로 발행된 정음사 최종판에서 8편을 더 찾아 수록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시와 수필 최종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독립운동 100주년, 윤동주의 잘못된 기록을 바로잡아야 한다.
국정교과서가 ‘한국인 시인’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 기술한 과정을 재외동포재단은 독립기념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논의하고 교육부가 수용해서 수록한 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중국은 윤동주 시인을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하고 옌볜의 조선족자치주에 ‘중국조선족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커다란 표지석을 세웠다. 그러나 조선족이라는 용어는 1952년에 만들어진 말로 윤동주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조선족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었을뿐더러 윤동주는 한 번도 중국어로 시를 쓴 적이 없고, ‘별 헤는 밤’ 시 내용 중 같은 반 친구인 폐, 경, 옥을 이국 소녀라고 분명히 기술했다.
-일본은 윤동주의 사인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용 주사를 맞고 숨졌는데 그의 친구 송몽규도 똑같은 주사를 맞고 윤동주가 숨지고 나서 20일 후 숨졌다. 일본 정부는 이들의 사인을 확실히 밝히고 죄인 신분도 해제해야 한다.
-한국은 올해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에 윤동주를 ‘재외동포 시인’으로 수록하였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제2의 독립운동을 온 국민이 외치고 있는 이 시점에 독립운동 100주년이 정말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윤동주는 광명중학교 학적부, 연희전문 학적부, 일본재판 판결문에 똑같이 함경북도 청진부 포항정 76번지로 기술하고 있으며 일본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한국인 시인 윤동주로 수록되어 있고, 90년 8.15에는 ‘건국훈장 독립장’까지 추서 받은 독립운동의 시인이 어떻게 재외동포 시인인가? 초등학교 6학년 도덕교과서를 폐기하고 윤동주의 국적을 신속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탄생 100년의 윤동주 하면 떠오른 단어, 하늘·별·성찰… 서정시인에서 저항시인으로 민족의 별이 된 시인 윤동주
인간 윤동주 시인을 정당하게 평가한 글과 작품을 모두 실었다. ‘윤동주 전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에는 1948년 초판본 전문을 실었고, 2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는 1948년 본에 실려 있는 시를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을 실었다. 3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79’ 역시 1948년 본과 1955년 본에 수록된 작품 외의 시 작품을 담았다. 4부 ‘나중에 발굴된 시’에는 기존 윤동주 시집에 실리지 않은 작품 8편을 실었다. 1부부터 3부까지의 시들은 당시 발간된 본문 순서대로 실었으며, 4부는 작품이 쓰인 해를 알 수 없는 경우 외에는 창작 연도에 따라 실었다.
이 책 1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에는 1948년 발간된 원본 그대로 정지용(鄭芝溶)의 서문과 유영(柳玲)의 추도 시 및 강처중(姜處重)의 발문을 살렸다. 2부에는 정병욱(鄭炳昱)의 후기와 윤일주(尹一柱)가 쓴 ‘선백(先伯)의 생애’가 실려 있으며, 3부에는 백철(白鐵), 박두진(朴斗鎭), 문익환(文益煥)의 후기가 실려 있다. 윤동주 연보는 편의를 위해 4부 뒤에 실었다.
초판본의 서문과 발문 등은 1955년부터의 인쇄본에는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인 정지용은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고, 경향신문 기자이던 강처중은 가족들에게 소련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1950년 9월 4일 집을 나간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당시 강처중이 남로당 지하당원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을 기다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였고, 서울에 입성한 인민군이 형무소를 개방하자 집에서 두 달 남짓 요양하다가 남한을 떠난 것이다.
정지용은 이후 평양에서 발간된 1993년 4월 24일, 5월 1일, 5월 7일자 통일신보 기사를 통해 그가 1950년 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전쟁 이후 남북한의 이념 대립이 첨예하던 시기를 겪으며 정지용과 강처중의 글은 사라진 것이다.
‘윤동주 전 시집’의 작품 표기는 가능한 현대어 표기법을 따르면서 읽기에 지장이 없는 한 당시의 표기법 그대로 표기해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자 했으며, ‘얼골/얼굴’, ‘코쓰모쓰/코스모스’ 등 발간 연도에 따라 다르게 실린 몇몇 단어는 그 변화가 와 닿을 수 있도록 당시에 발간된 대로 표기하였다. 그 외 ‘윤동주 연보’에 쓴 작품 제목은 현대어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