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장범석 기자) 유명 관광지이자 홋카이도 최대도시 삿포로(札幌)는 토쿄와 함께 일본의 라멘문화를 이끄는 양대 축의 하나다. 삿포로 라멘에는 ‘추위가 중요한 향신료’라는 표현이 따라 붙는다. 추운 지방에 최적화된 음식이라는 의미다. 삿포로에서 탄생한 것이 라멘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된 미소(된장 맛)라멘이다.
삿포로지역 라멘의 토핑은 소위 ‘삿포로류’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조리된다. 토핑을 따로 볶아 면 위에 올리는 다른 지역과 달리 토핑을 볶는 도중 스프를 붓고 푹 끓여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스프에 마늘과 야채 풍미가 배어 요리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추운 겨울 삿포로의 미소라멘은 온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 마지막까지 식지 않도록 스프에는 라드(돼지고기 식용지방)가 충분히 띄워져 있다.
삿포로에 라멘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22년이다. 홋카이도대학 앞 식당 중화요리점 타케야(竹家)의 산동성 출신 요리사 왕문채(王文彩)가 손으로 빚은 면을 중국풍 스프에 내놓으며 역사가 시작된다. 스프는 닭 뼈와 어패류를 섞어 우려낸 맑은 시오계열이었다. 당시 생소했던 이 요리가 인기를 끌자 주변 킷사텐(喫茶店, 차와 함께 간단한 요리를 파는 곳)에서도 제공하기 시작했다.
종전 후 1946년경 만주에서 귀향한 사람들이 번화가에 포장마차를 내고 돼지 뼈(톤코츠)를 이용해 새로운 스프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국물이 진해지고 류호(龍鳳) 같은 인기점이 나타난다. 스프 맛은 당시 토쿄에서 유행하던 쇼유(간장) 스타일이었다. 1951년에는 류호·다루마켄 등 인기업소들이 홋카이도 최대의 유흥가 스스키노에 ‘라멘 요코쵸(뒷골목)’를 형성한다. 처음 8곳이었던 것이 지금은 나중에 생긴 신요코쵸를 합쳐 20여 곳에 이른다.
일본 라멘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되어버린 미소라멘은 아지노산페(味の三平)의 점주 오미야(大宮)에 의해 개발되었다. 만주에서 철도기관사로 근무했던 그는 귀국 후 우동 포장마차를 시작한다. 그때 인근에서 라멘을 팔던 류호 점주의 권유로 라멘으로 업종을 변경했다고 한다. 평소 된장이 건강에 좋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1963년(1961년이라는 설도 있음) 미소라멘을 정식 메뉴로 내놓는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된장 맛을 베이스로 하는 라멘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미소라멘은 순식간에 삿포로를 대표하는 라멘이 된다. 백화점 시연행사 등을 통해 전국 지명도가 올라가자 인스턴트 버전도 나온다. 1968년 산요식품이 출시한 ‘삿포로 이치반 미소’는 50년 넘게 업계의 스테디셀러로 군림하고 있다. 미소라멘은 라멘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삿포로 라멘 사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삿포로 라멘은 숙성된 ‘지지레(꼬불대는)’면이어서 먹는 도중 퍼짐 현상이 거의 없다. 다른 지역 라면에 비해 면의 양이 많고, 굵기는 라멘의 표준이라 하는 직경 1.36mm(JIS 22번)을 사용한다. 고명으로는 챠슈·멘마·볶음야채·파가 올라간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점포에서는 가리비와 게 등 해산물이 추가되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아지노산페의 창업자는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이 대를 이어 원조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라멘에 마늘을 넣고 밥을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아지노산페로 알려졌다. 이로써 라멘은 간식이 아닌 한 끼의 식사로 대접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