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장범석기자)일본 동북지방의 후쿠시마(福島)현 서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인구 4만7천의 내륙도시 기타카타(喜多方). 도호쿠(東北)신칸센 코리야마(郡山)역에서 니카타방향으로 80여km 올라간 재래선 연변에 위치한다. 관문 중 하나인 기타카타역은 상・하행 전철이 시간당 한편 정도씩 운행되고 있는 한적한 역으로 2018년 기준 1일 승차인원이 844명에 불과하다.
이곳에 120개나 되는 라멘집이 몰려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타카타 라멘이 삿포로의 미소, 하카타의 톤코츠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3대 라멘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다른 두 라멘의 본거지가 대도시이자 교통의 요충인 데 비하면 이곳은 외딴 산골이나 다름없다. 기타카타 라멘에 특별한 경쟁력이 없다면 전국화를 꿈꾸기 어려운 입지조건이다.
기타카타 라멘은 면의 식감이 뛰어나고 스프가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고명도 간결하다. 스프는 연한 톤코츠 다시의 쇼유 스타일이 일반적이지만 시오와 미소 버전도 있다. 면이 굵고 넓은 히라우치(平打ち) 방식으로 우리나라 ‘짜파게티’와 비슷하다.
기타카타 라멘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사라(朝ラ-)’라는 아침 라멘이다. 아침부터 무슨 라멘이냐 하겠지만 이곳에서는 자연스런 일상이다. 이 라멘은 밤샘 근무나 새벽 농사일을 마친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특별메뉴에서 출발했다. 외지에서 돈을 벌고 추운 겨울 새벽열차로 귀향하는 자식의 몸을 녹여주기 위해 찾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전해진다. 요즘은 조기운동 후 아침식사로, 과음한 다음 날 속 풀이용으로 찾는 수요가 많다. 관광시즌이 되면 소문을 알고 찾아온 외지 여행객들이 아침부터 점포 앞에 행렬이 늘어선다. 키타카타 관광물산협회에 따르면 아침 7시부터 문을 여는 점포가 15곳이라고 한다.
기타카타에 라멘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6년이다. 중국에서 넘어온 반(藩)이라는 청년이 겐라이켄(源来軒)이라는 야타이에서 라멘을 팔기 시작하며 역사가 시작된다. 그의 조리법을 계승한 ‘마코토 식당’ ‘반나이(坂内) 식당’ 등이 뒤따라 오픈하고 이들이 기타카타 라멘의 주류를 이룬다. 다른 지역의 라멘 집은 대체로 중화요리집 분위기가 풍기는 상호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예외다. 상당수가 ○○식당이라는 기타카타식 간판을 내걸고 있다.
이곳 라멘이 주목을 끌게 된 것은 1975년 NHK가 기타카타시를 ‘구라(창고)의 고장’으로 소개하면서부터다. 방송이 나간 후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자 시에서는 이들의 체류시간을 늘려 지역경제에 도움을 될 방도를 찾았다. 이때 나온 아이디어가 지역특성을 살린 식사의 개발이었다. 처음에는 향토요리를 생각했지만 장소문제 등이 여의치 않자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라멘이었다.
이때부터 그동안 외부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라멘이 조명을 받는다. 독특한 면발에 깔끔한 국물, 부드럽고 고소한 챠슈 등이 여행객을 사로잡았다. 1983년에는 ‘루루부(るるぶ)’라는 여행전문지에 소개되며 지명도가 급상승한다. 루루부는 ‘보고, 먹고, 즐긴다’는 일본어 동사의 어미를 따서 만든 조어다.
기타카타에서 라멘은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이자 중요한 수입원이다. 연간 170만에 달하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라멘을 먹고 온천을 즐긴다. 시에서는 2014년 라멘 박물관과 부속신사(神社)를 세우고, ‘라멘버거’ ‘라멘돈부리’ ‘라멘피자’ 등도 개발해 관광객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