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하산케이프 박물관으로 간다
오스만 시대 다리를 건너 하산케이프로
날씨는 끝내주게 덥다. 이 더위를 뚫고 하산케이프 박물관으로 간다. 복원된 오스만 시대 다리를 건너 이동했다. 죄다 이동되고 새로 복원된 것들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 중 하나였던 하산케이프는 외침을 막기 위해 절벽 위에 건설됐다.
이 다리는 BC 10세기경 처음 만든 것을 이후 12세기에 크게 증축한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다리이다 이후 수메르, 로마, 오스만 제국 등의 각 시대별 유적들이 고스란히 축적돼 있어 고고학자들에겐 보물과도 같은 곳이다.
하지만, 이 찬란한 고대 문명의 유적은 터키가 ‘일리수 댐’ 건설을 세우면서 거의 수몰됐다. 터키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는 낙후된 지역 경제의 부흥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엔 다른 뜻이 숨어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수몰되는 지역이 바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쿠르드족의 거주지이기 때문이다. 댐 건설을 빙자해 쿠르드족의 생활권을 마비시킬 의도다.
더불어 수자원을 둘러싼 터키와 중동의 알력도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일리수 댐이 건설되는 티그리스 강은 이라크, 시리아와의 경계선에 걸쳐 있어서 터키가 수자원을 독점하려고 하고 있다는 비난이 이웃 중동 국가로부터 나오고 있는 등 지역 분쟁의 소지마저 안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함무라비 왕조는 B.C 1590년까지 지속되었으나, 히타이트족의 침입을 받아 약탈당했으며, 곧이어 카사이트 족의 침략으로 인해 패망하였다. 히타이트 족은 본래 현 앙카라 동쪽 150㎞ 지점인 할리스(Halys) 강변에 근거를 두었으나, 점차 세력이 강성하여 제국을 세웠다. 조각에 나타난 그들의 용모는 인도-유럽계 민족과 아르메니아 인의 혼혈로 나타난 것처럼 보이며, 언어는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그리스어, 및 라틴어 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문자는 바빌로니아의 설형 문자와 상형 문자를 혼용한 것으로 보인다.
B.C 1350년경에 히타이트 족은 북부 시리아를 점령하고 이어서 이집트로부터 북부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정복하여 서남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이 시기에 이집트는 이미 쇠퇴했고, 바빌로니아는 카사이트 족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히타이트 족은 말과 전차를 사용하여 이를 갖추지 못한 적군을 용이하게 격퇴할 수 있었다. 말은 카스피 해안에 정주(定住)한 인도-유럽계 민족이 처음으로 사육한 것으로 추정되며, 히타이트 족에게도 이미 그 방법이 전달된 것이다.
전차는 본래 수메르 족이 사용하였으나, 히타이트 족은 최초로 이를 철로 만들었다. 남부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은 당시 이집트의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히타이트 족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동부 지중해 연안을 석권하려는 이 두 세력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어느 편도 승리하지 못하고, 결국 B.C 1280년에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시리아의 북부는 히타이트, 남부는 이집트의 영토로 분할되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성문화된 국제 조약으로 알려졌고, 그 후 이러한 조약은 현대 조약문까지도 본보기가 되었다. 이 조약문서의 원본은 이집트와 소아시아 반도에서 각각 19세기 후반에 발견되어 고고학계의 지대한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유목민족이 오리엔트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오리엔트 외곽 지역 거주민들은 대부분 여전히 수렵과 채집으로 경제 활동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가 도입되면서 수렵과 채집의 경제 시대 끝나고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가 자리 잡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1000년 후인 B.C 2,000년에 중앙아시아의 기상 이변으로 인해 유목민들이 사방으로 이동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우선 중앙아시아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킴메르 인들이 스키타이와 사카의 세력에 밀려 서진하기 시작했고 중앙아시아는 스키타이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다.
스키타이가 부상하자 사카 계통에 속해 있던 아마르딘 종족이 카스피 해 북단으로 하여 카프카스에 이르렀고 이어 카프카스를 넘어 아나톨리아 고원 중부에 들어갔다. 이들을 역사에서는 하티 족이라 하였고 하티 족에게서 히타이트가 형성된다. 그리고 그보다 서쪽으로 이동한 아마르딘 종족들은 서부 아나톨리아에 정착하여 프리기아 왕국을 세운다. 그리고 흑해 북안에 남아 있던 아마르딘 종족은 후일 폰투스 종족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다른 히타이트의 일족들은 아나톨리아 남동쪽에 들어가 리디아인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에게 해 해안을 따라 이동하여 도시들을 짓고 도시 국가 개념의 원형으로 발달해 나가기 시작한다. 다른 사카의 일족들 중 중앙아시아 동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인더스 강과 힌두쿠시 산맥을 끼고 있는 지역, 오늘 날의 페샤와르 지역에 정착했는데 이들을 아리안 족이라 한다. 아리안 족은 비옥한 인더스 지대라 불리는 곡창 지대에서 문명이 시작되어 번성하던 모헨조다로와 하라파를 공격한다.
글 사진: 정길선 박사(Alexey Jung)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유라시아 고고인류학 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