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멘여행 4] 하코다테의 ‘시오라멘’

투명한 스프와 담백한 맛, 1932년 첫 등장 이래 초기 맛과 형태

(여행레저신문=장범석기자) 홋카이도의 3대 도시 삿포로, 아사히카, 하코다테(函館)는 일본을 대표하는 주요 라멘의 발상지다. 삿포로가 미소라멘, 아사히카와가 톤코츠 쇼유라멘을 개발했다면 하코다테는 시오(소금)라멘의 본고장이다. 어느 점포에서나 메뉴판 맨 위에 시오라멘이 올라가 있고, 주문할 때 특별히 종류를 말하지 않으면 당연히 시오라멘이 나온다.

시오라멘은 스프가 맑고 맛이 깔끔하다. 다레(양념장) 외 다른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아 스프가 곧 점포의 레벨을 말해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스프는 겉보기와 달리 깊은 맛을 내기까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라멘은 메이지 개항 때 조성된 차이나타운에서 화교들이 개발한 음식이다.

하코다테(函館)는 라멘을 파는 중화요리점이 많은데, 그곳에서 시오라멘은 단순히 ‘라멘’ 또는 옛 이름 ‘시나소바’로 통용된다. 전문점이나 체인점이 적은 것도 특징이다. 무릇 음식이란 세월이 지나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 형태로 진화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시오라멘은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일반적인 시오스프는 보통 닭 뼈・어패류・야채를 우려낸 다시를 사용한다. 그러나 하코다테에서는 돼지 뼈만으로 다시를 만든다. 다시를 낼 때 많이 사용하는 다시마도 넣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뼈를 끓일 때 속에서 젤라틴이 용해돼 나오지 않도록 약한 불로 오랫동안 가열하는 점이다. 젤라틴이 섞이면 일반 돈코츠 다시처럼 진한 유백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어지는 다시는 돼지 뼈 특유의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고, 닭 뼈를 우려낸 것보다 더 투명해 진다.

사진: 지요켄’의 시오라멘, 출처: travel-star.jp

하코다테에 라멘이 처음 등장한 것이 1932년이다. 다시마 등 수산물을 매집하기 위해 방문하는 화교를 대상으로 킷사텐(차와 함께 간단한 요리를 파는 곳)에서 ‘시나소바’를 판매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시나소바’는 중국 광동성에서 유행하던 탕면과 유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편, 지역사회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1884년 지역신문에 ‘난킨(南京)소바’라는 라멘의 초기 용어를 사용해 광고를 낸 요와켄(養和軒)이 효시라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구체적 레시피나 관련자의 증언 등이 뒷받침 되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만일 새로운 단서가 나온다면 1910년 토쿄 라이라이켄(来々軒)에서 시작 되었다는 라멘의 역사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하코다테의 시오라멘에 사용하는 면은 JIS(일본공업규격) 22~24호로 아사히카와와 같은 규격이고, 삿포로의 미소라멘보다 약간 가늘다. 면의 형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스트레이트(직선) 면이다. 면 위에 올리는 고명이 심플한 것도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대부분 챠슈・멘마(죽순)・파 세 가지로 한정되는데, 이러한 간결함이 스프와 일체감을 극대화 시켜준다. 다른 라멘에 비해 화려함은 덜 하지만 시오라멘을 최고로 치는 골수팬이 많다.

사진: 시오라멘 노포 ‘지요켄’의 외부모습, 출처 travel-star.jp

하코다테 전통의 시오라멘을 맛볼 수 있는 점포 하나를 소개한다. 역 앞 포장마차촌 다이몬(大門) 거리에 위치한 지요켄(滋養軒)이 그곳이다. 건물이 작고 허름해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역사 깊은 노포로 1947년 개업해 하코다테 시오라멘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 곳이다.

면은 점포 2층에서 뽑아내는 자가제를 사용하고, 사이드 메뉴로 교자(군만두)를 파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가격은 2019년 3월 기준 라멘¥500, 만두 6개 한 접시 ¥350으로 저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