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이란 — 찬란한 페르시아 문명의 땅

(이정찬 발행인 ㅣ여행레저신문 , 미디어원)

이란을 다녀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여행은 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또렷합니다.
시라즈의 공기, 이스파한의 돌빛, 테헤란의 겨울 하늘 같은 장면들이 지금도 천천히 떠오릅니다. 무엇보다도 그 나라가 품고 있는 시간의 두께가 그렇습니다. 페르시아는 인류 고대사에서 ‘중요한 한 페이지’가 아니라 여러 장을 통째로 써 내려간 문명권입니다.
제가 이란을 오래 동경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서 시작된 문명의 시간은 단순한 왕조의 흥망이 아니라 언어와 종교, 행정과 도시, 예술과 기술이 함께 만들어낸 축적의 역사였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문명권이 이어져 온 시간에 더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던 장면도 있었습니다. 1979년 혁명 직후 벌어진 이란 인질 사건(Iran Hostage Crisis)입니다. 미국 대사관이 점거되고 외교관들이 444일 동안 억류되었던 그 사건은 전 세계 뉴스로 보도되었습니다. 그 이후 이란은 ‘반미’라는 정치적 표어와 함께 국제 정치의 갈등 속에 놓이게 됩니다.

그럼에도 한국과 이란은 한때 매우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서울 강남에는 테헤란로가 있고,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습니다. 두 나라가 공유했던 시대의 기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름들입니다.
서로 다른 문명권이지만 어딘가 묘하게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이름들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란을 방문한 것은 2017년 말이었습니다. 터키의 이스탄불을 경유해 테헤란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스탄불에서 테헤란까지 비행 시간은 약 3시간 30분 정도였습니다. 테헤란 공항에서 다시 국내선을 갈아타고 남쪽 도시 시라즈로 이동했습니다. 이 구간은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시라즈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반쯤이었습니다. 공항이 거의 문을 닫을 시간에 가까웠지만 이란 측에서는 우리 일행을 위해 입국 절차를 매우 신속하게 처리해 주었습니다. 일반 줄이 아니라 별도의 통로를 통해 빠르게 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긴 여행 끝에 낯선 공항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긴장감이 그 순간 조금 풀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약간 걱정이 있었습니다. 그 여행 약 5개월 전 저는 이스라엘을 방문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권 기록 때문에 입국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공항 직원들은 매우 차분했고 놀라울 만큼 친절했습니다. 모든 절차는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게 진행되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함께 여행하던 여기자들에게는 ‘보자기’가 나눠졌습니다. 외국인에게도 히잡 규정이 적용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입국 순간부터 출국하는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머리를 가리는 규칙은 단순한 문화 체험이 아니라 실제 생활 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이란의 첫인상으로 기억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르면서도 동시에 “이 나라는 이 나라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현실을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약과는 별개로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따뜻했습니다. 시라즈든, 이스파한이든, 테헤란이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함께 찍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왔느냐”는 질문도 자주 들었습니다. 그때의 표정들은 대체로 밝았고, 호기심이 많았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친근함이 있었습니다.
그 친근함의 배경에는 당시 중동 지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한국 드라마의 영향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어떤 젊은이는 한국 배우 이름을 이야기하며 웃었고, 어떤 학생은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느끼는 그런 작은 환대는 여행자에게 오래 남는 기억이 됩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영어였습니다. 이란은 정치적으로는 반미 국가지만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과 학생들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교복과 차도르를 입은 학생들이 먼저 다가와 질문을 하고 농담을 건네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체제가 닫혀 있을수록 사람은 더 열려 보인다는 역설을 저는 그곳에서 처음 느꼈습니다.

그래서 더 착잡합니다. 지금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전쟁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뉴스 화면 속 이란은 제가 기억하는 이란과 계속 충돌합니다. 여행자는 7박 8일로 한 나라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제가 만난 이란 사람들은 한결같이 외국인에게 열려 있었고 낯선 사람에게도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란여행을 돌아볼 때면 “가난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함께 떠오릅니다.
이 나라는 그야말로 자원 부국입니다. 세계 석유 매장량 약 4위, 천연가스 매장량 약 2위를 가진 대표적인 에너지 강국입니다. 또한 구리와 철광석, 아연, 대리석 등 다양한 광물 자원도 풍부합니다. 국토 면적은 약 164만㎢, 인구는 약 8,800만 명에 이르는 중동의 거대한 국가입니다.
이 정도 자원과 규모라면 충분히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에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상업과 교역의 전통, 그리고 사람들의 뛰어난 언어 감각과 지적 역량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이란은 여전히 갈등과 제재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물론 그 나라 내부에는 안보와 체제, 지역 정치라는 복잡한 논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행자가 기억하는 것은 정치 구호가 아니라 그곳의 사람들입니다. 모스크에서 낯선 외국인에게 음식을 나누고, 거리에서 먼저 사진을 찍자고 웃던 사람들 말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이란은 어두운 옷차림의 사람들과 결코 풍요하다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였지만, 그 속의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따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전쟁 뉴스 속 이란을 바라보는 마음은 더욱 복잡합니다.

내가 기억하는 이란은
낯선 여행자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고
사진을 찍자며 웃던 따뜻한 사람들이 살아 있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
〈내가 만난 이란 ②〉
시라즈 — 페르시아 시인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