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디 호수, 물속에 남은 숲의 시간

오늘은 카인디 호수로 간다. 아침 6시 반, 식당은 문을 열었지만 아침은 생략했다. 배는 조금 고팠지만, 마음이 더 앞섰다. 오히려 이렇게 비워진 상태로 길을 나서는 것이 어울릴 것 같았다.

물 한 병과 초코바 하나만 챙기고 배낭을 멨다. 전날 밤, 기온은 영하 가까이 떨어졌고, 알마티의 골목마다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다. 여행은 이런 날 떠나는 게 맞다. 준비는 어설퍼도, 마음은 이상하게 단단해진다. 카인디는 쉽게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차로 몇 시간, 산길을 돌고 돌아야 비로소 그 호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알마티에서 동쪽으로 130킬로미터. 차를 타고 고불고불한 산길을 오르다 보면,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숲이 사라진 자리에 호수가 있고, 호수 안에 나무가 서 있다. ‘카인디 호수’. 이름조차 낯설고, 풍경은 더 낯설다. 하지만 이 낯섦이, 곧 이 호수의 아름다움이다.

처음 도착했을 땐 조금 얼떨떨하다. 맑고 깊은 호수 위로 검은 나무 기둥 수십 개가 물에서 솟아 있고, 그 너머엔 병풍처럼 둘러선 침엽수림과 회색의 산맥이 펼쳐진다. 풍경은 선명하지만, 정서는 흐릿하다. 차가운 호수와 말 없는 나무들은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숨겨진 이야기를 찾기 위해 호숫가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1900년대 초, 거대한 지진으로 골짜기가 침수되며 이 호수가 생겼다고 한다. 그때 물속으로 가라앉은 침엽수들이 지금도 그 자리에서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잎은 사라졌지만 줄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물속의 기온이 워낙 낮아 부패가 느리게 진행되면서, 이 ‘숲의 유령들’은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렇게 서 있다.

물은 아주 맑았다. 수면은 바람 따라 흔들렸고, 햇살은 호수를 따라 유영했다. 사진으로 볼 땐 신비로웠지만, 실제로는 묘한 슬픔이 감돌았다. 익숙한 산과 나무의 풍경이었지만, 이질적인 물이라는 매개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다. 호수 안에서 나무가 숨을 쉬는 모습은 어쩐지 아련하고도 기묘했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말없이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냥 이 풍경 앞에 잠시 멈추어 서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는 길이가 약 400미터, 너비는 100미터 남짓 되는 작은 규모였고,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좁은 숲길이 있어 그 주변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나무가 서 있는 반대편까지 걸어가는 데는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호수는 해발 약 2,000미터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 물이 유난히 차고 맑았다. 지하수가 솟거나 인근 빙하에서 녹아든 물이 계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고 있는 듯 보였고, 인근의 차른강(Chon-Kemin River)이나 케게티 계곡 쪽으로 다시 흘러나가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카인디 호수는 티엔산 산맥의 만년설에서 녹아든 물이 지하로 흘러 들어와 이루어졌으며 자연적인 증발과 호수바닥으로의 침수로 수위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 지역에서는 이 호수를 특별한 취수원으로 삼지는 않는다고 했다. 보호 목적이 크고, 호수 자체가 지극히 고요한 경관 그 자체로 간직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속에 고기가 있는지 궁금했지만, 실제로 물고기를 본 적은 없었다. 현지 기사에게 물어보니, 일부 민물고기가 살기는 하나 낚시는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물고기보다 이곳의 중심은 언제나 나무였다. 물속에 뿌리박은 채 수직으로 솟은 고목들. 잎이 없기에 계절이 없다. 그래서인지 이 호수는 언제 가도 풍경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얼굴로 서 있지만, 햇살과 안개의 양에 따라 그 인상이 매번 조금씩 다르다.

사진 몇 장을 남겼고, 짧은 영상을 찍기도 했다. 점심은 호수 위쪽 숲 가장자리, 작은 평지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간단한 샌드위치와 삶은 달걀, 사과 한 조각. 그조차도 풍경 안에서 먹으니 유난히 고요하고 특별했다. 이곳에 카페나 식당 같은 건 없다. 사람도, 소리도 드물다. 오로지 풍경과 내가 전부였다.

카인디 호수는 많은 걸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트레킹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를 타는 것도 없다. 그저 걷고 바라보고 멈추는 게 전부다. 그리고 그 전부는, 의외로 충분하다. 세상의 많은 아름다움은, 우리가 그것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 앞에 있었기 때문에’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카인디 호수는 그런 곳이다. 말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풍경. 그 풍경 앞에서 사람은 조금 더 조용해지고, 조금 더 느려지며, 조금 더 진실해진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비로소 진짜 ‘나’라는 여행자를 만나게 된다.

여행레저신문 ㅣ 이만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