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과 경험을 외면한 소비의 함정
여행 전문가이자 호텔 경영자였던 기자는 숙박지를 선택할 때 기준이 분명하다. 첫째는 시설의 깨끗함, 둘째는 접근성이다. 이 두 가지만 충족돼도 여행의 절반은 성공이라고 본다. 반대로 이 기본을 벗어난 화려함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인터컨티넨탈과 리츠칼튼 등 세계적인 호텔 체인에서 마케팅 디렉터로 일했고, 인터컨티넨탈의 인터내셔널 매니저로서 전 세계 여러 나라의 호텔을 두루 경험했다. 그만큼 ‘럭셔리 호텔’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팔리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자는 럭셔리라는 단어에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그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상술을 충분히 봐왔기 때문이다.
최근 여행 시장의 가장 두드러진 흐름은 이른바 ‘숙박 플렉스’다. 해외여행이든 국내여행이든,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디에 묵느냐가 여행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허니문 시장에서 그 경향은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일생에 한 번뿐이니까”라는 말과 함께, 수영을 즐기지도 못하고 풀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은 젊은 커플들이 무조건 풀빌라를 선택한다.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솔직히 헛웃음이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숙소에 돈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일정의 문제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부산·마산·진해를 사박오일 일정으로 자동차 여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아침 일곱이나 여덟 시부터 움직이며 지역을 오가는 일정 속에서 호텔에 머물며 야외 풀에서 태닝을 하고, 칵테일을 마시고, 마사지를 받는 시간을 과연 확보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정이 타이트한 단체 패키지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매일 눈을 뜨면 관광과 쇼핑으로 하루가 채워지는 구조에서 초특급 호텔 숙박은 과연 필요한 선택일까. 허니무너들은 어떤가? 한국 허니무너들의 여행을 보면, 아침부터 밤까지 이동과 일정으로 꽉 찬 상태에서 풀빌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풀이 있어야 사랑의 감정이 고조되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여행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숙박 플렉스는 상당 부분 사치에 가깝다. 방은 방일 뿐이고, 그 밤이 지나면 남는 것은 사진과 자랑거리 하나 추가 뿐인 경우가 많다. 호텔은 작은 과일 바구니 하나를 더 얹고 요금을 두 배로 받기도 하고, 실제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 풀을 앞세워 가격을 세 배로 책정하기도 한다. 공들이는 것은 거의 없지만, ‘특별함’이라는 이미지가 모든 것을 덮는다.
이 구조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더 있다. 이런 선택으로 가장 많은 수익을 남기는 주체는 호텔만이 아니다. 알선 여행사다. 고가 숙소일수록 커미션 구조가 유리하고, 일정과 무관한 숙박이 패키지에 포함될수록 수익성은 배가 된다. 여행자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믿지만, 그 선택은 종종 일정과 경험과는 무관한 유통 구조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좋은 숙소에서의 휴식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정 중 실제로 호텔에 머물며 시설을 즐기고, 휴식을 중심에 두는 여행이라면 좋은 숙소에 투자할 이유는 충분하다. 문제는 그 선택이 여행의 구조와 맞지 않을 때다. 이동과 일정이 중심인 여행에서 고가 숙소는 효율적이지 않다.
여행의 가치는 숙박비로 결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썼느냐가 아니라, 그 일정이 얼마나 합리적이었는지, 그리고 무엇이 남았는지다. 숙소는 여행의 목적이 아니라 일정을 보조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럭셔리라는 말보다 먼저 따져야 할 것은, 그 숙소가 나의 여행 방식에 정말 필요한 선택이었는지다.
여행은 소비가 아니라 경험이다. 숙박 플렉스가 유능한 선택처럼 소비되는 한, 여행은 점점 비싸지고 얕아진다.
여행레저신문 l 이정찬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