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머무는 밤, 빛을 따라 걷다』 ①
(여행레저신문=이진 기자) 해가 뜨지 않는 마을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를 시작할까.
새벽 세 시, 대낮처럼 밝은 북극광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시계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말해줄 뿐, 창밖은 여전히 어둡다. 여기가 바로 지구 최북단에 위치한 정착지, 노르웨이의 롱이어비엔(Longyearbyen)이다.
스발바르 제도의 중심에 위치한 이 마을은 10월 말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 ‘극야(極夜)’를 맞는다. 24시간 내내 태양이 뜨지 않는 이 기간 동안, 하늘은 늘 짙은 감청색을 머금은 채 있다.
사람들은 ‘하늘이 반쯤 닫힌 계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어두운 천장 위로, 간헐적이지만 강렬한 빛의 흔적이 유영한다. 북극광, 혹은 오로라라 불리는 빛의 커튼이다.
롱이어비엔을 찾는 여행자들은 대개 이 오로라를 보기 위해 이곳을 선택한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면, 대부분은 더 이상 북극광만을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이곳은 단지 하늘의 풍경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삶이 어떻게 유지되고 확장되는가’에 대한 하나의 실험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을은 작다. 인구는 2,400명 남짓. 하지만 작은 규모에 비해 이곳은 놀랍도록 자립적이다. 스노모빌을 타고 30분만 나가도 사람의 흔적은 사라지고 순록과 눈, 얼음의 세계가 펼쳐지지만, 중심지엔 카페, 박물관, 술집, 심지어 초콜릿 공방과 극지방 브루어리까지 갖춰져 있다. 여행자들은 극야의 고요함을 체험하는 동시에, 이곳 사람들의 **’어둠과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이 마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세계 유일의 ‘글로벌 시드 볼트(Global Seed Vault)’가 있다는 것. 이곳에는 전 세계의 야생 식물 종자가 냉동 보존되어 있다. 핵전쟁, 기후 재앙, 대멸종 사태 속에서도 지구 생물권의 일부를 지키기 위한 프로젝트다.
흥미롭게도, 롱이어비엔의 호텔 중 하나인 ‘스발바르 호텔 | 더 볼트(The Vault)’는 이 시드볼트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다. 호텔은 고요한 조명과 차가운 콘크리트 질감의 내벽, 따뜻한 조명이 뒤섞여 있는 라운지 공간을 통해 극지방 특유의 온기와 긴장감이 공존하는 인상을 전한다.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체험 중 하나는 ‘오로라 사파리’다. 개썰매를 타고 설원을 누비며 북극광을 추적하거나, 얼음 동굴을 탐험하며 고요한 빛의 반사를 마주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운이 좋으면, 오로라가 지평선 전체를 가로지르며 무지개처럼 휘어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 경험은 생애 한 번 뿐인 감동으로 남는다.
그러나 롱이어비엔은 단지 ‘경이로운 장면’을 보여주는 관광지가 아니다. 오히려 이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건, 고요한 밤을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성이다.
아이들은 반사 조끼를 입고 눈 위에서 썰매를 탄다. 학교는 오전 10시가 되어야 밝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서 문을 연다. 도서관과 극장은 여전히 운영 중이고, 작은 아트 갤러리에서는 북극을 주제로 한 수채화 전시가 이어진다. 매일이 밤이지만, 밤은 일상이 된다.
이런 마을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로비에선 벽난로 앞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노부부가 있다. 호텔 창밖으로는 간간히 초록빛이 하늘을 가르며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오로라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저 ‘밤의 풍경’일 뿐이다.
롱이어비엔의 밤은 단지 어두운 것이 아니다.
그 어둠 속엔 인류가 빛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증거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우리는 그 흔적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어쩌면 빛보다 더 확실한 무언가를 본다.
사진제공:부킹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