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감성 칼럼 ③ — 몰타의 밤, 오래된 바다의 향기

몰타의 밤은 갑자기 시작되지 않는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찾아온다.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하늘은 분홍에서 남색, 남색에서 어두운 청회색으로 넘어간다. 그 무채색의 경계에서, 도시의 등불이 하나둘씩 켜진다. 나는 발레타의 성벽을 따라 걷고 있었다. 바람은 해안을 따라 밀려왔고, 어느 순간, 그 바람에 이끌리듯 도시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몰타는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다운 섬이다. 낮에는 역사의 풍경 속을 걷고, 밤에는 그 풍경의 기억을 더듬는다. 고요한 골목, 대리석 바닥, 오래된 석회암 벽. 모두가 이야기를 걸어오는 듯했다.

특히 발레타의 성 요한 공동대성당(St. John’s Co-Cathedral)은 낮에 보는 것과 밤에 마주하는 것이 전혀 달랐다. 낮에는 금박과 바로크 장식, 화려한 카라바조의 작품들이 눈을 사로잡았다면, 밤의 대성당은 그 자체로 한 편의 기도처럼 느껴졌다. 문이 닫혀 있었지만, 나는 문 앞에 앉아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어퍼 바라카 가든(Upper Barrakka Gardens)에 닿는다. 낮에는 관광객으로 붐비던 그 정원이, 밤에는 빛과 바람만이 머무는 조용한 전망대가 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몰타 항구의 풍경은, 말 그대로 밤의 시(詩)다. 바다엔 여전히 유람선 몇 척이 정박해 있었고, 건너편 슬리에마의 불빛은 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빛을 ‘몰타의 눈물’이라 불렀다. 전쟁과 점령, 망명과 귀환의 시간들이 스며든 바다의 흔적. 나는 그 말이 과장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 좁은 골목에 있는 작은 와인바에 들어섰다. 유리창은 흐려져 있었고, 안에는 조용한 재즈가 흘렀다. 바텐더는 나에게 추천 와인을 한 잔 따라주었고,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목넘김은 부드러웠고, 약간의 나무향이 났다. 오래된 통에 담긴 시간의 맛. 벽에는 손으로 그린 듯한 몰타 지도와 기사단 문장이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Time doesn’t pass in Malta. It rests.”

나는 그 말에 괜히 웃음이 났다. 몰타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쉬고 있다. 모든 것이 조금 느리고, 조금 무겁고, 조금 더 오래 머문다. 그리고 그 ‘오래됨’은 낡음이 아니라 품음이다. 이 섬은 오래된 것들을 지우지 않고 품는다. 전쟁의 상처도, 황금의 찬란함도, 이별의 슬픔도, 순례자의 숨결도.

그날 밤, 숙소로 돌아가는 골목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보였다. 도시 안에서 별을 본다는 건 이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되었지만, 몰타에선 아직 가능했다. 별빛은 조용히 도심 위를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 별빛과 눈을 맞췄다.

몰타의 밤은 그 별빛처럼 스며든다. 화려하지 않다. 조용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다. 관광지 소개서에 없는 밤의 장면들이, 진짜 몰타의 표정 같았다.

“The sea breathes slower at night, and so does Malta.”

몰타의 밤은 그렇게, 지중해 바람을 타고 기억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지는 시간이다.

여행레저신문 l 이정찬 발행인 

Photo by Jungcha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