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티 국제공항. 아침 햇살이 유리벽을 투과해 마치 하늘이 바닥에 흩뿌려진 듯 환하다. 수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출장을 끝낸 듯 분주하게 노트북을 닫고, 어떤 이는 고향으로 향하는 것처럼 담담한 눈빛으로 가방을 바라본다. 슬리퍼를 신은 유럽 배낭여행자, 정갈한 정장을 입은 중앙아시아 비즈니스맨, 사리 입은 인도 여성… 공항은 언제나 이방인들의 마지막 표정이 머무는 곳이다.
그 사이에 나도 있다. 여권을 두 손에 꼭 쥐고, 다시 한번 확인한다. ‘Incheon’. 익숙한 이름. 그런데도, 이 이름은 지금 낯설다. 감정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탓이다. 몸은 비행편을 향하지만, 마음은 아직도 사막의 바람을 헤매고 있다.
이번 여행은 낯설고, 낯설어서 아름다웠다. 차른 캐니언의 거대한 침묵, 카인디 호수의 물속에 잠든 나무들, 콜사이에서의 숨가쁜 오르막, 알틴에멜의 바람이 만들어낸 모래의 노래… 그 풍경들은 어떤 문장보다 더 또렷했다. 그러나 지금 그 모든 장면은, 게이트 사이 대기석의 정적 속에서 점점 흐려져 간다. 공항에서는 감정이 고장난다. 또는 멈춘다.
옆자리에 앉은 러시아 할머니는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울음을 참는 표정이다. 노란 머리의 독일 청년은 피곤한 듯 눈을 감고, 그의 발 밑에는 낡은 캠핑백이 놓여 있다.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돌아가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간다. 공항은 그런 ‘이동’이 모든 삶의 조건이 되는 공간이다. 그 어떤 정착도, 그 어떤 결정도, 이곳에서는 미뤄진다.
나는 창밖 활주로를 바라본다. 하늘로 오르기 전의 비행기들이 줄지어 선 모습. 마치 기다림을 배우는 인간의 모습 같다. 그러고 보면, 여행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해가 뜨기를, 버스가 오기를, 길이 열리기를, 감정이 따라오기를. 하지만 귀국길의 공항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진짜 기다림은 돌아온 뒤 시작된다는 것을.
돌아가면 다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익숙한 노선, 반복되는 일과, 다정한 얼굴들. 그런데 그 속에서 나는 어쩌면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이 내 안에 뿌리내린 시간과 공간은, 내가 어떤 뉴스에도, 어떤 골목길에도,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들 것이다. 여행이 남긴 가장 큰 흔적은 바로 ‘다른 나’다.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니, 다시 와도 같은 곳일까? 아니, 같은 곳을 다시 봐도 같은 나일까?
비행기가 도착 게이트로 들어온다. 전광판에 숫자가 바뀌고, 어딘가에서 내 감정도 천천히 도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알마티에서 이륙했지만, 내 마음은 아직 알틴에멜의 모래 언덕 어디쯤을 걷고 있다.
공항. 사람은 떠나지만 감정은 남는다. 아니, 감정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로 나만 먼저 떠난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 여행을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가장 은밀한 이유가 된다.
여행레저신문 l 이만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