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본섬에서 페리를 타고 20여 분, 고조섬에 도착하면 풍경은 갑자기 고요해진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돌담과 들판, 그리고 시간조차 멈춘 듯한 고즈넉한 언덕마을 Xagħra(샤라). 이곳은 관광지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삶이 이어져 온 곳이다. 천천히 걷다 보면, 고조섬이 품고 있는 신화와 역사가 서서히 드러난다.
그 언덕 너머, 인류 문명의 시간을 되돌리는 장소가 있다. 바로 ‘지간티야(Ggantija)’ 신전이다. 고조섬의 작은 고원 위에 자리한 이 선사시대 석조 신전은, 기원전 3600년경에 세워졌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유석조 건축물’ 중 하나이며, 영국 스톤헨지보다 약 1000년 이상 앞선다. 단일 석재 무게가 수 톤에 이르고, 이를 운반해 탑처럼 쌓아올린 방식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놀라운 건 단지 구조만이 아니다. 신전의 입구는 춘분과 동지의 해돋이를 정확히 바라보게 설계되어 있다. 고대 몰타인들은 하늘과 별을 측정하고, 생명의 주기를 돌 속에 새겼다. 그들은 도구가 아닌 별자리와 손끝으로 신전을 완성했다. 이곳을 걸을 때면, 인간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우주와 연결되기를 바랐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Ggantija’라는 이름은 몰타어로 ‘거인의 탑’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신전은 한 명의 여성 거인이 하룻밤 만에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 거인은 인간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위해 이 신전을 세웠다고 한다. 돌 하나하나에 모성애의 서사와 신화가 얽혀 있다.
신전의 바닥을 밟는 순간, 그 돌에 깃든 시간이 발바닥으로 전해진다. 무너져 내린 벽 사이에서 새싹이 피어나고, 절벽 아래 들꽃은 바람을 타고 흔들린다. 고조섬을 여행하는 이들은 종종 이곳에서 ‘기억’이라는 단어가 시간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간티야에서 길을 따라 더 걸으면 저 멀리 바다가 반짝인다. 붉은 모래로 유명한 라마라 해변(Ramla Bay)과 그 뒤편 절벽 위에는 또 하나의 전설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칼립소 동굴(Calypso’s Cave)이다.
이 동굴은 고대 그리스 신화 속에서 님프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7년 동안 붙잡아 두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따르면,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불사의 삶을 약속하며 섬에 머물기를 권유했지만, 그는 결국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 전설의 무대가 바로 이 고조의 해안 절벽 위라는 것이다.
동굴 자체는 지금 붕괴 위험으로 입장할 수 없지만, 그 앞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라마라 해변은 설명이 필요 없는 장관이다. 붉은 해변, 푸른 바다, 그리고 곡선을 그리는 언덕이 겹겹이 시선을 감싼다. 그 순간, 오디세우스를 홀린 것이 칼립소의 마법이었는지, 아니면 이 풍경 자체였는지 혼란스러워질 만큼 압도적인 감정이 밀려든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는 때로 고대의 숨결처럼 들리고, 해변 위에 새겨진 발자국은 오래된 시처럼 반복된다. 붉은 모래의 결, 하늘의 높이,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담고 있는 바다가 말없이 존재한다. 이 섬은 말보다 오래된 이야기를 풍경으로 들려준다.
고조섬의 여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화다. 선사시대의 돌무더기와 고대 전설이 나란히 공존하는 이 작은 섬은, 기억과 전설, 그리고 붉은 모래가 겹쳐진 시간의 층위다. 우리는 그 첫 장면에 발을 디뎠다.
다음 편 예고: 붉은 해변, 라마라에서 보낸 오후– “산책, 독서, 그리고 고조산 와인 한 잔. 붉은 모래 위의 느린 오후.”
여행레저신문 l 이정찬 기자
Photo by Jungcha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