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고조섬 붉은 신화 ③ – 돌과 바다의 하루

칼립소의 전설을 뒤로하고, 고조섬의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낮게 이어지는 돌담과 투박한 창틀, 바람이 머무는 마당마다 삶의 시간이 조용히 쌓여 있었다. 이 섬의 리듬은 잔잔하면서도 깊었고, 오래된 악보처럼 선명했다. 노천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나눴다. 우리는 그 일상의 옆자리에서 잠시 숨을 고르듯 바람을 마셨다.

사구를 지나 염전으로 향했다. 고조의 염전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사람과 햇빛과 바다가 만든 생의 문장이었다. 일부는 17세기부터 가족 단위로 운영되어 왔고, 지금도 소규모 채염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몰타의 다른 선사 유적처럼 이 염전 역시 시간이 만든 유산이며, 그 문화적 가치는 깊다. 각진 웅덩이에는 물이 고이고, 시간이 증발한 자리엔 소금의 결정이 남는다. 흰 결정을 따라가면 바다의 숨소리가 들리고, 웅덩이마다 빛이 잦아든다. 이곳에서는 바다가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지를 배운다.

길 끝의 절벽은 말을 걸지 않아도 설명이 되는 풍경이었다. 아주르 윈도우(Azure Window)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거대한 아치와 물길은 여전히 경이로웠다. 절벽 아래, 검은 실루엣들이 물속으로 사라져갔다. 스쿠버 다이버들이다. 수면과 바위, 물살과 바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데도 모든 것이 조화롭게 이어졌다. 나는 그 위에 멈춘 듯 서 있었다.

점심은 Kċina Għawdxija에서 먹었다. 토마토와 바질, 짭조름한 올리브가 고조의 햇살을 품은 라비올리 위에 퍼졌다. 향신료보다 기억이 오래 남았고, 와인 한 잔은 섬의 대화처럼 부드러웠다. 식사 후 우리는 언덕을 따라 고조 성채(Cittadella)를 향해 올라갔다. 고조의 중심에서 가장 오래된 곳, 그리고 가장 깊은 이야기가 깃든 곳이다.

성채 입구, 요한 바오로 2세의 동상이 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피아짜 카티드랄(Pjazza Katidral)의 돌바닥은 오래된 기도처럼 단단했고, 성벽 위로는 고조의 밭과 집과 해변이 겹겹이 펼쳐졌다. Cathedral Museum과 탄약고, 피난처, 그리고 수공예 상점들까지 이 작은 도시국가의 역사와 예술이 응축돼 있었다. 몰타는 작지만, 발 닿는 모든 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이 섬 전체가 수천 년의 기억을 품은 열린 박물관이자, 시간과 자연, 인간이 함께 써 내려온 장대한 서사시의 연속된 장면이다.

성채를 나와 언덕을 굽이굽이 내려오는 동안, 차창 밖 풍경은 다시 바다로 기울었다. 해변의 주차지점까지는 약 15~20분, 마치 고조의 기억 속으로 되돌아가는 길 같았다. 항구 앞 카페의 2층 테라스에 앉아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바다는 조용했고, 파도는 마음 깊은 곳에 부드럽게 닿았다.

푸른 창틀 아래 작은 테이블이 놓인 돌담 앞에서, 나는 다시 고조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섬은 말을 걸지 않았고, 나는 더 이상 질문이 없었다. 붉은 해변과 검은 수면, 흰 석벽과 고요한 신전. 고조섬의 하루는 그렇게 천천히, 아름답게 저물어갔다.

여행레저신문 l 이정찬 기자

Photo by Jungcha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