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트래블가이드] 알틴에멜 – 모래가 부르는 노래

알틴에멜 – 모래가 부르는 노래

아침 7시, 이번 여정은 동쪽이 아닌 북서쪽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알틴에멜 국립공원’. 이름부터 생경하다. 카자흐스탄에 국립공원이 있다는 사실도 낯설지만, 이 공원이 품고 있는 사막과 노래하는 언덕 이야기는 더 낯설다. 오늘은 그 낯섦을 만나러 간다.

알마티에서 차로 네 시간, 거리는 약 250km. 평탄한 도로가 대부분이지만, 중간 중간 비포장 구간이 나오기도 했다. 이동 중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창밖 풍경이 말을 멈추게 만들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 낮게 깔린 초지, 가끔씩 마주치는 한 채의 집. 이 나라에서 풍경은 배경이 아니라 주연이다.

도착한 곳은 ‘싱잉 듄(Singing Dune)’. 해발 약 150미터, 길이 약 3킬로미터에 이르는 모래언덕이다. 이 거대한 사구는 일종의 모래산처럼 솟아 있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마치 악기처럼 낮고 묵직한 소리를 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언덕을 ‘노래하는 언덕’이라 불렀다. 실제로는 건조한 기후와 규사 성분의 모래가 특정 각도로 미끄러지며 마찰을 일으킬 때, 모래 입자들이 공명을 일으켜 공기의 떨림이 울음처럼 퍼지는 것이다. 그 소리는 1km 넘는 거리에서도 들릴 정도로 강하고 지속적이며, 마치 지구가 낮게 한숨을 쉬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나는 바람을 기다리며 언덕을 천천히 걸었다. 경사는 그리 가파르지 않았지만, 모래 위를 걷는 일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발이 푹푹 빠졌고, 숨은 얕아졌다. 올라가는 동안에는 특별한 소리가 없었다. 그저 바람만 불었고, 모래는 소리 없이 미끄러졌다.

정상에 오르자 세상이 넓어졌다. 저 멀리 일렁이는 지평선과 띠처럼 이어진 황금빛 사막. 그리고 언덕 반대편으로 펼쳐진 이리강 계곡이 언뜻 보였다. 모래 위에 나는 발자국이 쓸려가며 사라졌고, 그 순간 정말로 바람이 불었다. 처음엔 바람 소리 같았지만, 이내 땅속에서 울리는 듯한 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어렴풋하게, 낮고 길게 이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귀로 들린다기보다, 몸으로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확실히 ‘노래’였다. 누가 부르는 건지,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 소리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했다.

알틴에멜 국립공원은 단지 사막만 있는 곳이 아니다. 돌산과 들판, 고대 유적이 흩어져 있고, 특히 국립공원 북서쪽 베소라무(Besshatyr) 고분군 근처에는 기원전 유목민들이 남긴 신비로운 ‘사슴돌(Deer Stones)’이 서 있다. 사람 키만 한 돌기둥에는 사슴, 태양, 무기, 인간 형상 등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으며, 사슴의 길게 뻗은 목과 뿔은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이 석비들은 청동기 시대 유목민들이 제사나 무덤 표시를 위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도 침묵 속에 서서 지나간 시간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오직 하나의 언덕에만 머물렀다. 걷고, 멈추고, 바람을 기다리는 일만으로 하루가 저물었다.

사막은 늘 말이 없다. 대신 풍경이 말을 대신한다. 어떤 날은 침묵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날의 알틴에멜이 그랬다.

여행레저신문 l 이만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