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감성 칼럼 ① — 그 섬에 닿는 순간부터

비행이 끝났을 때, 나는 이미 꽤 지쳐 있었다. 인천에서 경유지까지 열 시간, 다시 몰타까지 다섯 시간 더. 눈꺼풀은 무겁고, 옆자리 청년의 이어폰 소리는 계속 새어 나왔다.

하지만 비행기 창밖으로 작은 섬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나는 피로를 잊었다. 고요하고 단단한 윤곽.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분명 수백 번 사진으로 보았는데도 낯설었다. 그 낯섦이 마음을 휘감았다.

몰타 국제공항 활주로는 작았고, 이국적인 햇살은 하강 중인 기체 안에서도 느껴졌다. 활주로 가장자리에 정렬된 와이너리 밭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는 말하길, 이 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의 표적이자, 지금은 평화의 포도를 키우는 땅이라고 했다. “이 섬을 찰스 왕세자가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곳이라고 회고했다지.” 그는 왕세자 시절, 젊은 부인과 몰타에 머물며 일상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빌라 구아르다망자. 그 평범한 이름의 저택이 지금은 박물관처럼 여겨진다. 몰타는 찰나의 평온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였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공기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찬란하지 않고, 눅눅하지도 않은 공기. 적당히 바다 냄새가 섞인 공기였다. 택시를 타고 슬리에마 쪽으로 향했다. 도로는 좁고 구불구불했다. 택시 기사의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았다. 섬의 언어는 몰타어였지만, 관광객은 대부분 영어로 소통한다.

창밖엔 노란 석조 건물들이 이어졌다. 옛 것 같지만, 그 낡음이 아니라 ‘오래됨’의 기품이었다. 시간은 여기를 비켜가지 않고 정면으로 통과한 느낌. 그래서 정직하고, 그래서 조금은 경건했다.

호텔 체크인 후, 곧장 밖으로 나왔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걸을 수 있는 도시. 작은 골목 끝에서 바다가 툭 튀어나오는 동네. 그게 몰타였다. 그리고 그 바다 위로 떠오르는 섬. 고조섬과 코미노섬이 저기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나는 아직 닿지 않은 감정들을 상상했다.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는 해안가까지 내려가니, 노을이 스르르 번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바다였지만 왠지 낯설지 않았다. 아마 이 섬의 기억이 먼저 나를 기억해준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길모퉁이에 앉은 노부부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손끝이 조금씩 닿았다 떨어졌다. 그 모습이 너무 조용해서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몰타의 첫인상이 사람보다 공간에서 온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람보다 길, 표지판보다 그림자, 그리고 말보다 냄새에서 오는 낯설고 오래된 친근감. 그런 것들이 이 섬의 진짜 언어 같았다.

몰타는 ‘지중해의 파라다이스’라 불린다. 유럽의 노년들은 이곳을 은퇴 후 낙원으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이라 적어 놓는다. 그러나 내가 마주한 몰타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검소했고, 덜 과장되어 있었다. 화려하지 않아 좋았고,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찰스가 그곳에서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싶어 했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첫 끼니를 시켰다. 바질내음이 향기롭고, 빵은 단단했다. 옆자리 외국인이 내게 물었다. “처음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말했다. “여긴 처음은 한 번 뿐이야. 근데 다들 두 번째 올 걸 미리 계획하고 가.” 나는 웃었고, 조용히 포크를 들었다. 그 순간은 마치 이 섬이 나를 위해 준비해둔 대사 같았다.

그러니까, 파라다이스는 때로 그렇게 오는지도 모른다. 공항 활주로를 내려, 햇살을 맞고, 아무 말 없이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Perhaps this is why they still call it the Paradise of the Mediterranean. Even Charles, before he was king, called it the only place he ever felt normal.

몰타는 그렇게, 도착하는 순간부터 여행을 시작하는 섬이다.

여행레저신문 l 이정찬발행인 

Photo by Jungchan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