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여행, 세계의 와인》
🍷 잔 속에서 열리는 길
여행은 꼭 길 위에서만 시작되지 않습니다.
한 잔의 와인을 기울이는 순간, 그 안에 담긴 햇살과 바람, 사람들의 이야기가 곧 여행이 됩니다.
보르도의 강가, 토스카나의 언덕, 케이프타운의 바다와 스텔렌보쉬의 포도밭.
우리는 잔 속 풍경을 통해 그곳을 걷게 됩니다.
《한 잔의 여행, 세계의 와인》은 와인을 통해 만나는 세계, 여행이 전해주는 또 다른 기록입니다.
① 남아프리카 – 뜨겁지만 시원한 와인 남아프리카 – 뜨겁지만 시원한 와인
🌍 두 바다가 빚은 균형
남아프리카 와인은 구세계와 신세계의 경계에 선 듯한 와인입니다.
프랑스처럼 깊은 전통을 자랑하지도 않고, 캘리포니아처럼 대담하게 과실미를 앞세우지도 않지만,
케이프의 햇살과 바람은 이 땅의 와인에만 존재하는 균형을 선물합니다.
한낮에는 아프리카의 태양이 포도를 단단히 익히고, 밤에는 두 바다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산미를 살려냅니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번갈아 안기는 그 땅에서, 와인은 역설처럼 피어납니다.
🍇 남아공의 얼굴, 피노타주와 슈냉 블랑
피노타주(Pinotage)
피노누아와 생소가 만나 태어난 남아공의 아이콘.
잘 익은 블랙베리와 자두, 스모키와 초콜릿 향, 때로는 모닥불 뒤에 남은 잿빛처럼 은은한 커피 뉘앙스까지.
첫 모금에 낯설지만, 곧 익숙해지는 맛.
마치 이 땅의 역사와도 닮아 있습니다.
슈냉 블랑(Chenin Blanc)
프랑스에서 건너왔지만 이제는 남아공이 세계 최대 생산국.
바다의 짠 내음, 햇살의 풍성함, 드라이에서 스위트까지 다양한 표정을 가진 와인.
입안에 머금으면 바람이 스치는 듯 청량하고, 뒷맛에는 햇살이 남아 따스합니다.
🍷 남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라벨들
Kanonkop Pinotage (카논콥) – 남아공 피노타주의 상징, 힘과 깊이의 조화.
Beyerskloof Pinotage (베이어스클루프) – 부드럽지만 개성 확실한 피노타주.
Ken Forrester “FMC” (켄 포레스터) – ‘슈냉의 제왕’, 열대과일과 벌꿀 향.
Meerlust Rubicon (미얼러스트 루비콘) – 보르도 스타일 블렌드, 남아공 프리미엄의 얼굴.
Boekenhoutskloof Syrah (부켄하우츠클루프 시라) – 진한 과실에 후추·스파이스 향이 살아 있는 시라.
📖 잔 속의 이야기
남아프리카 와인의 시작은 17세기, 네덜란드 정착민과 프랑스 위그노들이 포도를 심으며 열렸습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은 아파르트헤이트가 막을 내린 1990년대 이후였습니다.
짧은 역사, 그러나 강렬한 존재감.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는 ‘숨겨진 보석’ 같은 와인.
프랑스의 품격을 그리워하는 이에게도, 캘리포니아의 힘을 즐기는 이에게도, 남아공 와인은 또 다른 선택지를 건넵니다.
오늘 남아프리카의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바람, 그리고 사람들의 도전이 빚어낸 이야기를 잔 속에 담아 우리에게 전합니다.
여행레저신문 ㅣ 이정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