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문화체육관광부가 2026년도 제1회 추가경정 예산으로 4,614억 원을 확정하고 본격 집행에 들어갔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고유가, 내수 침체와 고물가가 동시에 덮친 상황에서 관광·문화 산업의 급격한 위축을 막기 위한 긴급 처방이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얼어붙은 소비를 되살리고 지역경제에 다시 숨을 불어넣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재정 투입만으로 무너진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느냐를 두고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이번 예산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관광, 콘텐츠, 스포츠, 예술인 지원에 이르기까지 문체부 소관 전반에 걸쳐 긴급 자금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문화·관광 방어선’ 성격이 짙다. 정부로서는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소비 위축이 산업 전반의 구조적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숙박·여행 할인권 154억… 소비 진작의 마중물, 그러나 부작용 관리가 관건
이번 추경의 최전선은 소비 현장이다. 문체부는 숙박 할인권 지원에 112억 원, 근로자 휴가 지원 사업에 42억 원을 추가 편성했다. 고물가 부담 속에서 가장 먼저 여행 지출을 줄이는 직장인과 서민층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제공해 국내 여행 수요를 되살리겠다는 계산이다.
취지는 분명하다. 여행을 미루던 사람들의 지갑을 다시 열게 하고, 그 소비가 지역 숙박업과 음식점, 소상공인 매출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늘 집행이다. 할인권이 업계의 가격 인상 명분으로 악용되거나, 혜택이 일부 인기 지역에만 집중될 경우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뿌리느냐가 아니라, 그 돈이 실제로 지역 현장의 매출과 체류 소비로 연결되느냐다.
관광업계의 위기감은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겉으로는 회복세처럼 보여도 실제 현장에서는 비용 부담과 소비 위축이 동시에 누적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할인 정책은 보여주기식 소비 진작이 아니라 가격 모니터링, 지역 분산 유도, 소상공인 연계 프로그램과 함께 가야 한다. 단순한 쿠폰 배포 행정으로는 지속 가능한 관광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K-콘텐츠 생태계 사수… 영화·공연 제작 지원 385억의 무게
관광 산업의 장기 경쟁력을 떠받치는 콘텐츠 분야에도 385억 원이 긴급 투입된다. 제작비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예산 영화 제작 지원에 260억 원, 첨단 제작 기반 확충에 80억 원이 배정됐다. 여기에 공연과 문화콘텐츠 현장까지 포함하면 이번 추경은 단순 지원을 넘어 산업 생태계 유지 비용에 가깝다.
콘텐츠는 오늘날 관광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다. 잘 만든 영화 한 편, 화제가 되는 공연 하나, 지역의 이야기를 품은 콘텐츠 한 편이 수십만 명의 발걸음을 움직인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한국을 방문할 이유가 되고, 국내 여행자에게는 지방 도시와 촬영지,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따라서 이번 지원은 단순히 예술인을 돕는 차원을 넘어선다. 콘텐츠 생산 기반이 흔들리면 관광의 미래 수요도 함께 약해진다. 숙박 할인권이 당장의 소비를 자극하는 정책이라면, 콘텐츠 지원은 미래 수요를 지키는 투자다. 이번 예산이 현장의 촬영 중단과 제작 포기를 막는 ‘산소호흡기’가 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성과가 실제 관광 수요 확대로 이어질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스포츠 예산 393억… ‘참여형 관광’ 인프라를 살리는 기초 체력
스포츠 분야에 배정된 393억 원은 공공체육시설 개보수와 스포츠산업 육성에 집중된다. 이는 단순히 노후 시설을 손보는 수준으로 볼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 대회가 열리고, 동호인과 관람객이 찾아오고, 숙박과 외식 소비가 함께 일어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스포츠는 그 자체로 강력한 관광 자산이 된다.
특히 지역 소도시 입장에서는 스포츠가 관광과 결합할 때 체류형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실물 인프라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시설만 고친다고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영 프로그램, 지역 연계 상품, 대회 유치 전략, 홍보까지 결합되어야 비로소 ‘스포츠 투어리즘’이 현실이 된다. 하드웨어에 예산을 투입해 놓고 소프트웨어를 비워두면, 결국 번듯한 건물만 남고 지역경제 파급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이번 추경이 현장에서 증명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스포츠는 지역의 체력을 키우고, 관광은 지역의 곳간을 채운다. 이 연결고리를 실제 성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예산의 명분도 약해진다.
기초예술과 청년 지원… 보이지 않는 토대를 붙드는 예산
주목할 대목은 청년 예술인과 기초예술 생태계 지원이다. ‘문화가 있는 날’ 수요일 개편에 따른 청년 예술인 지원 24억 원, 예술인 생활안정자금 융자 확대 327억 원이 반영됐다. 얼핏 관광과 직접 관련이 적어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지역의 이야기와 공간을 콘텐츠로 바꾸는 주체는 결국 현장의 창작자들이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가장 먼저 무너지는 곳도 이들이다. 예술인과 청년 창작자들이 생존 압박에 밀려 현장을 떠나면 지역 문화의 밀도도, 관광의 매력도 함께 약해진다. 이번 지원은 문화복지 차원을 넘어 관광의 미래 기반을 지키는 투자이기도 하다. 지역의 숨은 이야기, 골목의 기억, 소도시의 감성을 발굴해낼 창작 인력이 살아 있어야 한국 관광도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
예산보다 더 무서운 문제는 ‘서비스 실종’이다
다만 이번 추경이 성공하려면 정부 재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관광 현장의 고질병인 바가지요금, 불친절, 낮은 서비스 품질이 그대로 방치된다면 아무리 많은 할인권과 지원금도 효과를 오래 끌고 가지 못한다. 여행객이 현장에서 실망하는 순간, 정책은 숫자만 남긴 채 실패한다.
관광은 예산으로 시작할 수는 있어도, 예산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결국 여행의 만족도는 현장의 태도와 서비스, 가격의 신뢰, 콘텐츠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문체부가 이번 추경을 ‘긴급 수혈’로 끝내지 않으려면, 재정 집행과 함께 환대 서비스 개선, 가격 질서 확립, 지역별 품질 관리까지 함께 끌고 가야 한다.
추경은 출발선일 뿐… 관광 산업의 자생력 회복이 과제
문체부의 이번 4,614억 원 추경은 시의적절한 처방임에 틀림없다. 고유가와 고물가, 소비 위축이라는 복합 위기 속에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평가는 예산 편성이 아니라 집행 결과로 내려진다. 이 돈이 실제로 지역경제의 혈관을 다시 돌게 만들었는지, 관광·콘텐츠 산업의 붕괴를 막고 자생력 회복의 발판이 됐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을 썼다’는 행정적 성과가 아니다. 할인권이 실제 여행으로 이어졌는지, 콘텐츠 지원이 산업 생태계를 지켰는지, 스포츠 인프라가 지역 체류형 관광으로 연결됐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객이 현장에서 더 나은 한국 관광을 체감했는지가 중요하다.
이번 추경은 시작일 뿐이다. 관광과 문화 산업이 다시 설 수 있느냐는 이제부터의 문제다. 정부의 긴급 수혈이 진짜 심폐소생술이 되려면, 예산 집행의 속도만이 아니라 현장의 체질 개선까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4,614억 원이 단순한 ‘응급 처치’가 아니라 대한민국 관광과 문화 산업을 다시 살리는 전환점으로 기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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