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고객과 함께” 진에어, LCC 최초로 CCM 재인증 획득

(여행레저신문)진에어(www.jinair.com)가 저비용항공사 최초로 소비자중심경영 재인증을 획득했다.

진에어는 9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년 하반기 소비자중심경영 인증 수여식에서 CCM 인증서를 받았다. 2022년에 이어 재인증도 저비용항공사 중 가장 먼저 취득해,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자격을 유지하게 됐다.

소비자중심경영(CCM, Consumer Centered Management)은 기업의 모든 활동을 소비자 중심으로 구성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제도다. 한국소비자원에서 운영을 담당하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인증을 부여하며 유효 기간은 3년이다.

진에어는 ‘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딜라이트 항공사’라는 미션과 ‘늘 고객과 함께 JIN에어’라는 슬로건 아래, 전 임직원이 고객 편익 증진을 목표로 각자의 영역에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올해는 CCM의 전사적 운영 확립과 내재화를 위한 내부 추진 체계 고도화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진에어는 △서비스개선위원회를 통한 서비스 개선 활동 △각 조직별 CCM 담당자 지정 △서비스 심화 교육 실시 △고객서비스센터 콜상담 만족도 조사 △우수 직원 포상 제도 신설 등을 시행했으며, 고객 경험 관리 강화를 위해 ‘고객서비스팀’을 ‘CX(Customer Experience)팀’으로 개편했다.

웹∙모바일 홈페이지 개편을 통한 고객 편의성과 정보 접근성 향상도 주목할 만한 성과로 인정받았다. 항공권 예매 과정을 간소화한 새로운 UI를 도입했으며, FAQ 및 검색 기능을 개선해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신속하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고객의 소리(VOC)를 반영해 △온라인 탑승확인서 발급 △반려동물 동반승객 안내카드 제작 △기내 와이파이 서비스 도입 등 다양한 서비스를 개선했다.

진에어는 “앞으로도 다양하고 체계적인 서비스 품질 개선 활동을 지속하며 고객 중심 경영에 더욱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진에어는 지난해부터 소비자중심경영 실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전 항공기에 인증마크를 부착하고 전자항공권과 기내용품, 기내지 등에도 해당 마크를 인쇄했다. 또 SNS 이벤트 운영, 공식 홈페이지 내 전용 페이지 개설, 유튜브 채널 홍보 영상 게시 등 여러 소비자 접점을 기반으로 CCM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스타얼라이언스, 최고경영진 이사회 신임 의장 마이클 루소 선출

(여행레저신문)아시아나항공이 속한 세계 최대 항공사 동맹체인 스타얼라이언스가 최고경영진 이사회의 신임 의장으로 에어캐나다 사장 겸 CEO인 마이클 루소를 선출했다. 마이클 루소는 2020년 12월부터 의장직을 맡아온 유나이티드항공 CEO 스콧 커비의 뒤를 잇는다.

마이클 루소 신임 의장은 “스타얼라이언스의 비전인 최적화된 고객 경험 제공을 위해 앞으로 2년 동안 이사회와 함께 노력할 것이며, 빠른 시일 내에 비전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모든 회원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최고경영진 이사회 의장인 마이클 루소는 이사회 공식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며, 매년 두 차례 열리는 이사회를 주재하고 스타얼라이언스의 전략적 방향을 이끄는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된다.

스타얼라이언스 CEO 테오 파나지오툴리아스는 “이사회에서 가장 경험 많은 CEO 중 한 명인 마이클 루소가 신임 의장으로 선출된 것을 환영하며, 새로운 비전 실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을 기대한다. 아울러, 지난 4년간 성공적으로 의장직을 수행해 준 스콧 커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한편, 스타얼라이언스 최고경영진 이사회는 25개 회원사 CEO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맹체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전체적인 전략 방향을 수립한다.

“따뜻한 괌으로 가족여행” 진에어, 괌 노선 프로모션 진행

(여행레저신문)진에어(www.jinair.com)가 9일부터 괌 정부 관광청과 함께 괌 노선 대상 가족 단위 여행객들을 위한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대상 기간 및 노선은 12월 10일부터 내년 3월 29일 사이에 운항하는 인천~괌, 부산~괌 노선으로 진에어는 이번 프로모션을 위해 다양한 혜택을 마련했다.

우선 진에어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 웹·앱을 통해 항공권 예매 시 선착순 400명 대상 ▲인천~괌 노선 10% 항공 운임 할인 (‘25년 3월 출발) ▲부산~괌 노선 12월~‘25년 2월 출발 3만원, ‘25년 3월 출발 5만원 항공 운임 할인을 제공한다.

또한, 출발지와 관계없이 사전 구매 초과 수하물 1.5만원 할인 및 기내식 2천원 할인 혜택을 선착순 400명 대상으로 제공하며 프로모션 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해 이용하면 된다. 그 외 괌 노선 항공권 구매 후 프로모션 페이지 내 응모 시 추첨을 통해 부산 키자니아 2인 가족 이용권 30매를 증정한다.

이와 더불어 부산 출발(LJ921) 고객 대상으로는 제휴사 혜택도 추가 마련했다. PHR 그룹의 ▲PIC 괌 ▲힐튼 괌 리조트 앤 스파 ▲호텔 닛코 괌 ▲더 츠바키 타워 ▲리가로얄 라구나 괌 리조트 및 Dusit 그룹의 ▲두짓 비치 리조트 괌 ▲ 베이뷰 호텔 괌 등 총 7개 호텔에서 3박 이상 투숙 시 도착 첫날에 얼리 체크인 혜택을 제공한다. 프로모션 페이지에 안내한 제휴 링크를 통해 호텔 예약한 고객 대상이며 이용 방법은 체크인 시 진에어 탑승권을 제시하면 된다.

항공권 할인 및 제휴 혜택 이용 방법, 이벤트 응모 등 관련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프로모션 페이지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진에어는 “괌은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 여행에 안성맞춤인 여행지”라며 “프로모션을 통해 다양한 혜택을 마련한 만큼 이번 기회를 활용해 가족과 즐거운 추억을 만드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진에어, 삼성카드와 제휴 프로모션 진행

(여행레저신문)진에어(www.jinair.com)가 삼성카드와 제휴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운영 기간은 이달 말일인 12월 31일까지며 탑승 기간은 내년도 10월 25일까지다. 탑승 제외 일자는 없다.

대상 노선은 진에어 홈페이지에 오픈한 전 노선이며 진에어페이를 통해 삼성카드로 20만원 이상 항공권 결제 시 1만원 청구 할인 혜택을 선착순 제공한다.

혜택 적용 방법은 진에어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 웹·앱을 통해 항공권, 부가서비스 등을 선택 후 마지막 결제 단계에서 진에어페이 선택해 삼성카드로 결제하면 된다.

프로모션 기간 내 카드 명의당 청구 할인 혜택은 1회로 제한되며 즉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니쿠폰, 프로모션코드 등과 함께 사용은 가능하다.

제휴 프로모션 관련 자세한 사항은 진에어 프로모션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에어 관계자는 “이번 제휴 프로모션은 오픈 당일부터 25년 전체 하계 기간 대상이며 탑승 제외 일자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며 “이번 기회를 통해 알찬 여행 계획을 미리 세워보시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한편, 진에어는 2024년 12월 현재 총 55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선은 16개 노선을 운영중으로 국내 항공사 중 최다이며 국제선은 일본 기타큐슈, 미야코지마 등 단독 운항 중인 노선을 포함 총 39개 노선에 취항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제주노선에 마일리지 좌석1만석 더 푼다

(여행레저신문)아시아나항공(대표 원유석)이 김포/제주 노선에 마일리지 좌석 1만석을 추가 공급한다.

아시아나항공은 9일(월) 오전 9시부터 ‘제주 해피 마일리지 위크’ 2차 프로모션을 통해 이달 16일(월)부터 31일(화)까지 총 96편 항공편을 대상으로 마일리지 좌석을 공급한다. 매일 ▲김포→제주 3편 ▲제주→김포 3편으로, 하루 6편씩 총 96편 항공편이 대상이다. 해당 항공편 잔여석에 대해 모두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구매가 가능하며, 현재 잔여좌석은 약 10,500석이다.

2차 프로모션 항공편은 오전 출발편 3편, 오후 출발편 3편이 대상이며, 비즈니스클래스 또한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구매 가능하다. 해당 노선은 A321기종이 투입되며 174석(비즈니스/이코노미)과 195석(이코노미)으로 이뤄져 있다. 한편, 이달 2일부터 15일까지 진행하는 1차 프로모션 대상 56편 항공편은 대부분 만석으로 평균 98%의 높은 예약률을 기록했다.

국내선 마일리지 항공권은 편도 기준 이코노미클래스 5천마일, 비즈니스클래스 6천마일을 공제한다. 단, 이달 25일과 31일은 성수기 기간을 적용해 50% 추가 공제한다. 프로모션 대상 항공편은 유상 발권도 가능해 기호에 따라 마일리지 항공권과 유상항공권 각각 편도 발권이 가능하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더 많은 아시아나클럽 회원들이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마일리지 항공편 프로모션을 확대하기로 했다”며, “이번 추가 프로모션으로 12월 한달간 제주노선에 총 152편을 대상으로 최대 1만5천석의 마일리지 항공권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핀에어, 산타클로스와 ‘밋앤그릿(Meet & Greet)’ 행사 개최

(여행레저신문)유럽 대표 항공사 핀에어(한국지사장 김동환)는 핀란드 공인 산타클로스를 한국으로 초청해 에버랜드와 헤이스쿨스 클럽 남이섬에서 ‘밋앤그릿(Meet & Greet)’ 행사를 진행한다고 5일 밝혔다.

핀란드 공인 산타클로스는 오는 6일부터 8일까지 에버랜드 윈터토피아 축제에서 밋앤그릿 행사에 참여한다. 방문객들은 산타클로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현장에서는 핀에어 뉴스레터 구독자 중 추첨을 통해 산타클로스의 고향 핀란드 로바니에미(Rovaniemi)행 항공권 2매(이코노미 클래스)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또한 산타클로스는 핀란드의 유아 교육 및 디자인 전문가와 헬싱키 대학교가 공동 설립한 국제 교육 기관 헤이스쿨스 클럽 남이섬도 방문한다. 7일 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와 특별한 추억을 쌓을 예정이다.

핀에어는 올해로 41년째 산타클로스 공식 항공사로 활동하고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산타클로스는 핀란드 로바니에미발 노선을 이용해 서울을 비롯 도쿄, 델리, 상해, 싱가포르, 홍콩 등 전 세계 여러 도시를 방문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선사한다.

김동환 핀에어 한국 지사장은 “1983년부터 산타클로스 공식 항공사로 활동해 온 핀에어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전 세계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방법을 고민해 왔다. 특히 올해는 에버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더 많은 한국 승객들에게 산타클로스와 잊지 못할 시간을 선물할 수 있어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핀에어는 1년 내내 로바니에미까지의 항공편을 제공하는 유일한 항공사다. 주 7회 운항하는 인천-헬싱키 노선을 이용한 후 유럽의 허브 공항 헬싱키 공항에서 1회 환승해 로바니에미를 방문할 수 있다. 헬싱키에서 로바니에미는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관광세 도입, 과잉관광 해결의 만능 열쇠?

(여행레저신문=강정호 기자) 전 세계 여러 도시가 과잉관광over tourism)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광세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보복관광’ 현상이 나타나면서 주요 관광지에 몰리는 인파로 인해 현지 주민들의 일상이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올해 해외 관광객 수는 15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2019년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서는 수치다. 이러한 관광객 급증은 소음 공해와 환경오염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국가들은 관광세를 도입하거나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발리 지역 정부는 관광세를 5배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기존 15만 루피아에서 75만 루피아로의 인상 제안은 무질서한 관광객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스페인에서는 과잉관광 반대 시위가 발생했으며, 이들은 “관광객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부에 주택 임대료 안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스페인을 찾은 해외 관광객 수는 8510만 명에 달해 과잉관광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스 또한 관광객 수의 급증으로 인해 관광세를 크루즈 승객에게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그리스에는 36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는 1160만 명이 찾아왔다. 일본은 후지산을 보호하기 위해 입산객에게 관광세와 유사한 입산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러한 조치는 환경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관광세가 오버투어리즘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일부 관광당국자는 관광세의 도입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과잉관광의 문제는 세계적인 관광도시 베니스와 바르셀로나와 같은 일부 지역의 문제에 국한된다고 할 수 있다.두 도시는 모두 한계 수용치의 범위를 벗어난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이를 조절할 수 있는 뚜렷한 수단도 찾아보기 어려운 예외적인 상황에 놓여있으나 이를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관광세 도입이 과잉관광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국제 관광 교류를 위축시키고 여행자의 부담만 높이는 부정적인 결과에 그칠 수도 있다. 더욱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의 수립이 필요하며, 관광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과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모두 고려하는 접근이 중요하다.

Seoul Tourism Foundation Launches Space Cities Network

(Korea Travel News Jungchan Lee) The Seoul Tourism Foundation announced the official launch of the ‘Space Cities Network (SCN)’ on October 20 in Abu Dhabi, UAE, with participation from four cities, including Seoul. This network aims to foster international cooperation among major global cities in the fields of the space industry and MICE (Meetings, Incentives, Conferences, and Exhibitions).

The SCN includes Seoul, Lausanne in Switzerland, Christchurch in New Zealand, and Houston in the United States. The network seeks to enhance international collaboration in the space and MICE sectors through city marketing support organizations.

Seoul received the proposal to join the network in November 2023 and plans to begin active participation in January 2024.

During the launch event, the importance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through the convergence of the space industry and MICE was emphasized, along with the screening of promotional videos outlining the network’s goals and activities. Each city is ramping up efforts to promote the launch of the SCN through domestic and international media coverage.

Specific Activities of the SCN

The SCN aims to establish itself as a leading international cooperation body in the space sector by operating academic and advisory committees, hosting and attracting international conferences, and expanding member organizations. Seoul plans to actively involve domestic experts through these committees. Notably, Kim Min-seok, the Executive Vice President of the Korea Aerospace Industries Association, and Lee Dong-hoon, a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Space Science at Kyung Hee University, are expected to be appointed as advisors representing Seoul. Additionally, Kim Kang-san, the Asia-Pacific coordinator of the International Young Space Alliance, will participate in the Young Professionals Committee.

Economic Outlook for the Space Industry and the Importance of Collaboration

The global space industry is projected to grow from $397.3 billion in 2020 to $1.1 trillion by 2040. In particular, the satellite communications market is expected to reach $412 billion by 2040, accounting for 53% of the total market. The entry of private companies like SpaceX and OneWeb into the low Earth orbit satellite communications market, supported by small satellite technology, is expected to drive significant growth.

In this context, the SCN emphasizes that the convergence of the space industry and MICE will positively impact the global economy, asserting that collaboration between cities will create new opportunities. Experts predict that “the development of the space industry will contribute to technological innovation and job creation, ultimately boosting local economies.”

Future Plans and Expected Benefits

The SCN aims to grow into a global network for the space industry, leveraging the strengths of each city to promote cooperation and development. Seoul expects to enhance its status as a global MICE city through the integration of the space and MICE sectors.

In particular, government initiatives to bridge the digital divide, along with the adoption of AI, machine learning, and cloud technology, are expected to create new opportunities in the space internet market. As the 6G communication era approaches, the combination of terrestrial mobile communications and space internet is anticipated to significantly alter the communication service paradigm.

These innovative changes and collaborations are expected to contribute to Seoul’s positioning as a central hub in the global space industry.

“제1회 국제우주항공기술대전, 대한민국 우주강국 도약의 시작”

(여행레저신문=이정찬 기자) 대한민국이 글로벌 5대 우주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첫걸음인 ‘제1회 국제우주항공기술대전(AEROTEC 2024)’이 오는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창원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회에는 12개국 175개 기업이 참여하고, 312개 부스가 마련되어 약 2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상남도와 창원특례시가 공동 주최하며, 한국우주기술진흥협회 등 여러 기관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우주항공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될 예정이다. 부대행사로는 기술 컨퍼런스, 네트워킹 행사, 심포지엄 등이 포함되어, 참가자들은 우주항공 산업의 최신 동향을 폭넓게 논의할 수 있다.

특히 개막식에는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윤영빈 우주항공청장, 박완수 경상남도지사 등 주요 정부 인사들이 참석하여 대한민국 우주항공 산업의 발전을 축하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ANSYS, 테스코 등 다양한 주요 기업들이 참여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혁신적 위성 솔루션과 최신 항공기술을 선보이며, KAI는 누리호 발사체와 위성 관련 기술을 전시해 한국의 우주항공 역량을 과시할 계획이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는 소형 우주 발사체 관련 기술을 소개하며, ANSYS는 고성능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통해 우주항공 분야의 최신 동향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AEROTEC 2024는 대한민국이 우주항공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산업 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중요한 행사로, 참가자들은 다양한 투자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On an autumn day at Bulilam

On an autumn day at Bulilam
A place where the late Beopjeong Sunim, known for his philosophy of non-possession, practiced.
Suncheon, Jeollanam-do
By Jungchan Lee
Beautiful Korea

Elegance in Simplicity: The Timeless Beauty of Korean Aesthetic Restraint

The allure of Korea epitomizes a refined elegance, characterized by its unassuming simplicity and modesty that artfully unveils a profound inner beauty.
It is truly enlightening to reflect upon the sagacity of our ancestors, who pursued a sublime beauty through the art of restraint in their speech and attire.

육상 실크로드와 파미르회랑

육상 실크로드와 파미르 회랑

실크로드의 파미르 회랑 도로망은 중국 한당(漢唐) 시대의 수도였던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으로부터 시작하여 중앙아시아의 제티슈(Zhetysu)로 이어진 약 5,000km에 이르는 구간에 해당한다. 이 도로망은 B.C 2세기에서 서기 1세기 사이에 형태를 갖추어 16세기까지 이용되었다. 더불어 여러 문명을 서로 잇고, 무역과 종교, 과학 지식, 기술 혁신, 문화 관습, 예술 등 다양한 활동 분야에서 폭넓은 교류를 촉진시켰다. 도로망을 따라 여러 제국과 칸(汗)국의 수도와 궁궐, 교역마을, 석굴사원, 고대 통행로, 역참(驛站), 관문, 봉수대, 그리고 만리장성의 일부 구역과 성곽 및 묘역, 종교시설 등 총 33개소가 발견되며 이것들 모두가 세계유산에 포함되고 있다.

대륙을 횡단하는 광활한 교통망, 지극히 장기간에 걸친 이용 기간, 현전하는 유산의 다양성과 역동적인 상호 연계성, 실크로드가 촉진한 문화적 교류의 풍성함, 그리고 실크로드가 이어준 다양한 지리적 환경 등은 B.C 2세기부터 서기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유라시아 대륙에서 진행된 다채로운 문화 지역 내에서 이루어진 광범한 상호 작용, 특히 스텝 지역의 유목민과 정주민들의 농업과 오아시스, 목축 문명 사이의 상호 작용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타지키스탄 파미르 회랑의 상호작용은 실크로드를 따라 형성된 전 지역에서, 특히 건축과 도시 계획의 발달, 종교와 신앙, 도시 문화와 주거생활, 무역과 민족간의 상호 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파미르 회랑은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며 다양한 문명과 문화를 서로 이어주었던 역동적인 통로가 당해 문명과 문화 사이에서 아주 오랜 동안 지속된 상호교류를 어떻게 구현하였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세계사 속의 특별한 사례이다. 이처럼 파미르 회랑은 통신의 전통, 경제·문화적 교류, B.C 2세기부터 A.D 16세기에 이르는 동안 유라시아 대륙에서 있었던 사회적 발전에 대한 특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유목민 공동체와 정주 공동체를 하나로 이어주는 도시와 마을의 발달, 이러한 도시를 지탱하는 물 관리 체계, 여행자의 편의를 돕고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요새와 봉수대, 중간 기착지, 카라반 숙소 등을 이어주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일련의 불교 사찰과 석굴 사찰, 끝으로 고부가가치 교역을 통해서 큰 이익을 본, 범세계적, 다민족 공동체가 파생시킨 조로아스터교ㆍ마니교ㆍ네스토리우스교ㆍ이슬람교를 포함한 불교 외의 종교를 발현시킴으로써 교역은 이 지역의 도시 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파미르 회랑은 고부가가치 상품의 장거리 교역이, 주민과 여행자 그리고 작물에 물을 대기 위해 강으로부터 물을 끌어다 쓰는 정교한 물 관리 체계와 우물, 지하수를 기반으로 거대 규모의 마을과 도시의 발달을 촉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이다. 파미르 회랑을 따라 인도는 향신료와 면직물, 상아를 중국과 서방으로 수출했다.

실크로드 장사꾼들은 중가리아(준가르)에서 아스트라한 모피를 사다가 하서회랑(河西回廊)에 있는 양주(凉州, 오늘날의 우웨이)에 팔았다. 티베트 고원에서는 소금, 몽골의 알타이 산맥에서는 금을 사서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의 금세공 장인들에게 팔았다. 7세기 당 태종은 ‘호한융합’의 기치를 내걸고 유목민족들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오랑캐와 한족의 혼혈 귀족계급이 등장했고 역대 중국 왕조 중 가장 강력한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8세기와 9세기에 기마군단의 군사 강국 위구르는 무력을 앞세워 당나라와 불공정한 견마 무역을 했다.

원래 비단 한 필과 말 한 마리를 바꿨는데 위구르가 가격을 점점 올려 비단 40필을 요구했고 종종 50필을 요구하기도 했다. 위구르는 그 가격에 말을 사지 않으면 당나라를 침공하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773년 위구르가 말 1만 마리 값으로 요구한 액수가 당나라의 연간 세입을 넘어섰다. 당나라 태종은 위구르를 달래 말을 6,000마리만 사들였다. 825년에는 위구르의 새칸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당나라에서는 조랑말 값으로 비단을 무려 50만 필이나 가져왔다. 길이가 약 9m인 비단 한 필은 숙력된 직녀가 하루에 짤 수 있는 최대 분량이다.

따라서 비단 50만 필은 직녀 1만 명이 50일 동안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이 비단들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동·유럽 등에 수출되며 유라시아 무역의 추동력이 됐다. 파미르 회랑은 유라시아 대륙의 인류 문명·문화 교류에 있어 동아시아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불교가 고대 중국에 얼마나 깊은 충격을 주었는지 가시적으로 조명하며, 동방교회,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그리고 초기 이슬람교의 확산에 대한 근거를 담고 있다. 천산 회랑을 따라 발달한 여러 마을과 도시에는 또한 수자원의 이용, 건축, 도시 설계 등과 관련된 여러 사상이 실크로드를 따라 흘러들어와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영향이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이 ‘실크로드’는 아시아와 인도아대륙,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근동 아시아의 고대 사회를 이은 상호 교차되는 교통망으로서 세계 역사상 위대한 문명들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실크로드는 세계에서 길이가 독보적으로 긴, 교통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직선거리로는 약 7,500km이지만 특정 루트를 따라가면 35,000km가 넘기도 한다.

글 사진:정길선 박사

아낌없이 벗어주는 코르크나무

포도주는 8천 년 역사를 이어왔다. 한 해 수백 억 병이 소비된다. 그중에서 200억 병의 와인 마개로 쓰이는 코르크나무는 주로 지중해 연안에서 자란다. 아낌없이 벗어야 하는 나무, 코르크나무는 참나무의 일종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전세계 수요의 절반 이상을 생산한다. 북아프리카 알제리, 튀니지 그리고 이탈리아 등에서도 자라고 있다. 포르투갈은 정부에서 코르크나무를 집중 관리할 정도로 국가 재정에 중요한 자산이다.

그 나무의 수령은 기본 200년에서 길게는 500년까지 생존하며 매우 친환경적이다. 재활용이 되고 지구촌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코르크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먹고 크는 돼지가 바로 이베리코 돼지이다. 주로 하몽을 만드는데 뒷다리만 쓰기 때문에 머리 좋은 한국인들이 나머지 부분을 수입하였고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코르크나무는 포도주 마개 외에 안내문 표지판, 신발 깔창, 모자 등으로 변신한다. 태운 재로는 검은색 물감을 만들고 특히 우주선 제작에도 쓰인다. 더 놀라운 것은 인간이 세포를 발견하며 셀(Cell)이라는 표현을 쓰게 된 것도 코르크나무 덕분이다.

포르투갈의 알렌테호 지역에 위치한 코르크나무 중 휘슬러로 불리는 나무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종류이다. 그 나무는 1783년에 심어졌다. 다양한 용도의 코르크는 참나무의 해면피 (Quercus suber) 껍질에서 생산된다. 코르크나무의 첫 껍질을 벗기려면 직경 70cm(27인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최소 25년이 걸린다.

그 껍질은 자연적으로 재생되지만, 다음 수확까지 9-18년을 기다려야 한다. 채취를 반복할 때마다 외피의 두께와 질은 향상되기에 처음과 두 번째의 수확에서 나온 코르크는 품질이 좋지 않아 포도주병 마개에는 적합하지 않다. 세 번째 수확부터는 심은 지 50년이 넘는 나무에서 양질의 껍질을 생산한다.

나무 껍질은 도끼로 벗기는데, 나무 자체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작업한다. 한 그루 한 그루 산림당국의 보호를 받는 ‘귀하신 몸’이라 아무나 손을 댈 수가 없다. 실제로 코르크 채취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외과의의 정교함과 다년간의 경험이 요구된다.

벗긴 껍질은 6개월 이상을 야외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숙성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단계가 지나야 비로소 끓는 물에 삶거나 압력 스팀으로 찌는 첫 번째 처리에 들어간다. 고온으로 삶고, 말리고, 1차 성형을 한다. 특별 시스템으로 처리하고, 2차 성형해 멸균을 한다. 3,4차에 이르는 선별 작업하고 로고 인장을 찍은 후 마지막으로 윤활단계를 거친다. 그 후 병입을 기다리는 국내외 고객사에 배송한다.

휘슬러 나무는 일생 동안 20번 이상 수확을 할 수 있다. 1991년 수확은 지금까지 기록된 것 중 가장 유명하고 양도 많다. 한 나무에서 2,645파운드의 나무 껍질을 얻었다. 그 껍질로 10만 개 이상의 코르크 마개를 만들었다. 코르크나무의 평균적인 수확량은 대략 100파운드 정도인데, 4천 개 정도의 마개를 만들 수 있다.

방수성, 탄성, 내화성도 갖춘데다가 단열재로도 인기인 코르크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인간에게 내어준다. 17세기부터 포도주와 운명을 함께 해왔다. 그 전에는 포도주병 입구를 나무로 막고 올리브유를 바른 뒤 칭칭 동여매서 산소의 접촉을 차단했다. 코르크나무 덕분에 포도주를 잘 보관할 수 있었고 운송이 가능했다. 자연 건조를 막기 위해 포도주를 눕여서 보관하는 것도 지혜의 산물이다.

코르크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줘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한다. 나무껍질을 벗겨내도 다시 회복하며 푸르게 살아간다. 수백년 동안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그 나무는 가치있게 존재하며 더없이 아름답게 서 있다. 인간이 기다릴 줄 알고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영원한 자원이 된다. 점점 이기적으로 돌아가는 인간 세상을 보니 코르크나무가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글 사진: 체리 이연실/칼럼니스트

[체리의 세상이야기] 사우디에서 온 대학생들과 함께

사진) 사우디아라비아 명문대 학생들과 한국 여행사 대표, 패션 사업가, 우즈벡 출신의 디자이너가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우디에서 온 명문대 학생들

에쓰오일 과학문화재단에서 한ㆍ아랍 청년교류 사업을 하고 있다. 오일 회사이니 사우디와의 협력 등 문화 교류의 필요성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사우디의 3개 대학에서 왔다. 수도 리야드에서 에티하드 비행기를 타고 아부다비를 거쳐 인천공항에 왔다. 국적기 에티하드는 ‘Union’이라는 뜻이다. UAE가 7개의 토호국으로 이뤄진 나라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에티하드는 중동 사람들이 선호하는 항공사이다.

대학생들은 ‘프린스술탄대학교’, ‘킹 사우디대학교’, ‘프린세스누라대학교’의 학생들이다. 사우디는 원유 덕분에 부를 이룬 나라답게 초중고대학 학비가 모두 무료이다. 심지어 자국 출신이 해외로 유학을 가더라도 학비 전액을 지원해 준다. 사우디 최초의 대학교이자 왕립대학교로 수도 리야드에 있는 킹사우드대학교는 재학생이 7만 명도 넘는다. 물론 남녀공학이다.

사우디가 대표적인 왕정 국가이고 왕의 권한은 어떤 왕정국가보다도 절대적이다. 특히 수니파 무슬림의 종주국이자 메카가 있는 나라이다. 전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무슬림들에게 의미가 있고 특별하다. 대학교 이름도 왕이나 왕자, 공주가 들어갈 정도로 왕의 권력은 세다.
이번에 방문한 학생들은 사우디에서 명문 대학을 다니지만 국적은 다양하다. 사우디, 인도, 이집트 등 출신 국가는 다르다.

사진) 대추야자나무가 심어진 킹 사우드대학교 전경

그들은 모두 한국에 처음 왔고 많은 걸 보고 놀라워 하거나 신기해 했다. “서울 거리의 승용차가 대부분 세 개 회사 자동차이다. 신기하다”고 했다. “한국의 현대, 기아, 독일의 벤츠나 BMW만 보이는 것 같다”고 한다. 서울 거리의 깨끗함이나 푸르른 남산도 인상적이라고 극찬했다. 사막이 많은 중동 사람들은 한국의 산림녹화에 감탄하고 비가 내리면 기뻐하며 흥분한다.

“수도 서울이 모든 분야 시스템을 잘 갖춘 도시여서 마음에 든다”고 했다. 한식 중 불고기와 잡채를 맛있어 했고 여학생은 김치를 좋아한다. 경험상 중동 사람들은 김치 종류 중에서 총각김치나 나박김치를 좋아한다. 고춧가루를 약하게 풀어 빨간빛이 감도는 물김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양고기나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음식 문화 특성 때문이 아닐까? 개운한 느낌을 주는 한국의 물김치를 선호하는 게 이해된다.

한낮에 47도까지 올라가는 중동에서 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젊은이들이 이른 아침 산책을 하거나 밤에 운동을 한다니 역시 기후도 기온도한국과 차이가 크다. 대개의 사람들은 사막이 있고 낙타가 떠오르는 사우디에도 눈이 내린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낙타가 눈 내린 길을 걸어가거나 눈이 하얗게 덮인 도로를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대단히 특별하게 본다. 국토가 워낙 넓어서 기후대도 다채롭다.

사우디는 남한보다 국토 면적이 20배나 넓은 나라이다. 물론 사막이 대부분이다.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의외로 쉽게 독립을 이룬 것은 사막 때문이었다. 가도 가도 모래만 있으니 당시에는 별로 쓸모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독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석유가 발견돼 영국은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중동 중에서 특히 GCC 6개 나라는 여전히 석유와 천연가스로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학생들은 모두 석유 이후의 산업에도 관심이 많았다. 보수적인 나라 사우디에서 이제는 여성들도 운전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됐다. 예전보다 많은 부분 개방이 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 시대적 요청이 아닐까 싶다. 그들도 외부에 나갈 때는 국적이나 종교 등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옷을 입는다. 그러나 가정에서나 외국에 가서는 평상복을 즐겨 입는다.

사우디 학생들도 모디스트 패션에 관심이 컸다. 전세계 모디스트 패션 시장의 규모가 엄청난 것은 인구 덕분이다. 대략 20억 명의 시장이 있다. 그동안 한국은 할랄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외국에서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산업을 일으켰고 엄청난 수익도 내고 있다. 한국이 이제라도 할랄 분야 걸음마를 시작해서 다행이다. 이태원에서 사우디 학생들과 할랄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도 나눴다. 국적은 달라도 세상을 정확히 꿰고 있는 젊은이들, 우수한 학생들이라서 그런지 통찰력도 뛰어났다.

사진) 춘천 닭갈비는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다

‘서울클릭’ 대표와 우즈벡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사미아와도 패션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한국 방문단 학생들은 튀르키예(터키), 우즈벡, 인도, 네팔 레스트랑을 방문했다. 할랄 한식이 드물어 그들은 이태원에서나 한식을 먹었다. 그러나 체류기간 내내 한식만 먹어도 다 먹지 못할 만큼 맛있고 다채로운 한식이 있지 않은가? 골고루 할랄 한식을 먹지 못하고 돌아가게 돼 안타깝다.

사진) 에쓰오일이 사우디 학생들과의 교류를 중시하고 있다

중동 사람들은 할랄 닭갈비나 생선튀김, 참치찌개, 미역국 등을 좋아한다. 사우디 출신들에게 할랄 음식이 아닌 게 문제이다. 앞으로 양국 유학생들이 자주 교류하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모른다. 대기업은 대기업답게 시스템이 움직일 것이다. 한국이 관광 만년 적자 국가를 벗어나고 수출도 더 많이 하려거든 중동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

글 사진: 체리 이연실 작가 칼럼니스트 
여행레저신문 

[박철민작가] 백두산 산행기

하나, 프롤로그

[장백산 서파로 올라 뱩두산을 바라보다]

장백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세 코스가 있다. 이것을 중극측 용어로 북파(北坡) 서파 남파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북서남 등산 루트다. 동파는 북한측 등산로인데 사실 등산이랄 것도 없다.

한반도 최고 높이의 산인 백두산 중국측 정상 직전까지 거의 차로 올라가니까. 4일 이상 길게 여로를 택한 여행객은 북파 루트와 같이 서파 루트를 이용하여 두 번 장백산 정상을 오른다지만, 2박 3일 짧은 여로를 선택한 일행은 서파 루트 1,442 계단을 밟는 등정을 택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장백산)과 천지(天池)의 감격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높고 낮음을 개의치 않고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산을 찾아 일반적인 산행기에는 맞지 않는 산행의 기록을 남기고 있는 나의 경우에 백두산은 아마도 오르고 싶었던 마지막 산으로 남았을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품에 넣게 되는 형언하기 어려운 감흥을 감히 내 알량한 글쓰기로 어떻게 표현하랴. ‘백두산은 백 번와서 두 번 정도 오를 수 있다는 산이고, 삼대가 복을 쌓아야만 오를 수 있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제주로부터 시작된 장마 전선이 한반도의 고기압을 누르고 북상하는 시간에 눈이 부시도록 청량한 백두산의 시계(視界)는, 장마와 무슨 관계가 있냐는 듯 유려하게 맑고 푸르름의 교과서 같은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백두산의 원시림은 눈이 부셨다.

그러나 백두산으로 가는 좁은 일차선 도로는 무척이나 협소하고 위태로웠다. 아닌게 아니라 돌아올 때는 대형 인사 사고가 나서 한 시간 가량 발이 묶이는 일도 있었으니까. 안전벨트를 꼭 매야 한다는 가이드의 당부가 무색하지 않았다. 협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길림성의 농촌은 아직도 하방(下房)된 지식분자의 촛점 잃은 눈빛을 닮았다. 옥수수는 강냉이가 될 때까지 제멋대로 자라겠지만, 비닐을 적당히 덮은 인삼이 자랄 시간은 더딜 것 같고 길목마다 짓다만 건축물들과 대단지 아파트는 오히려 폐허가 된 마을보다 더 을씨년스러웠다. 우주선 캡슐을 닮은 숙박시설이 밀집한 대규모 위락타운을 지나면서부터 시계는 넓어지고 작은 버스로 갈아 탈 준비를 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도로가 도로 넓어지고 길가 양쪽으로 자작나무 군락이 밀집된 것을 보니 바야흐로 창바이산(백두산)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시간은 이곳 시간으로 9시, 중국의 입장에서는 작은 도시라지만 그래도 우리의 특례시에 해당되는 인구 130만 통화시의 체류 호텔을 출발한 지 어언 세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백두산(장백산)에 오르다 ~ 백두산(장백산) 가는 길
장백산 산문 안내소 겸 매표소에 도착하여 백두산 산행 전용 버스로 갈아탄다. 이곳에서 30여 분을 올라 중간 기착지에서 다시 소형 승합차로 갈아타고 올라야 장백산의 정상에 닿는다. 하늘은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숲의 밀도는 순차적으로 밀림의 풍경을 낳는다. 목이 말라서 정말 맛없고 플라스틱도 얇고 허술한 중국의 생수를 한 모금 마신다. 오를수록 빽빽하던 자작나무와 가문비나무 군락지가 분포된 산림은 점차 희미해지고, 화산암 돌무더기와 회색 화산암이 보이는 사이 초지에는 백두산 야생화 군락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체류 호텔이 있는 통화(通化)시에서 3시간, 다시 장백산 안내소에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전용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내린 서파(西坡) 루트 장백산 산장 옆으로 1,442개의 열린 계단이 보인다.

부정기적으로 계단오르기 대회를 개최하는 여의도 63빌딩의 계단 수가 총 1,251계단이다. 말하자면 서파 루트의 창바이산(長白山) 산정에서 백두산 정상까지 1,442 계단을 한 번도 쉬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사람은 63빌딩 계단오르기 대회의 단골 우승자인 현직 소방관을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계단은 기존에 있던 돌계단 옆에 나무계단이 같은 갯수로 설치되어 있다. 계단 오르기는 돌보다는 나무 계단이 수월하다. 특히 나무 계단쪽 하단부에 계단의 갯수가 붉은 색으로 표기되어 단계별로 오르는 재미가 배가된다. 물론 돌계단에도 표식은 있다.

계단을 오르며 백 단위 숫자가 나올 때마다 카메라에 담았다. 숫자에 연연한 것이 아니라 과연 얼마나 쉬지 않고 올라가느냐 체력도 확인하고 백두산에 왔다는 감흥도 가슴에 담고 싶어서였다. 300번 계단쯤에서는 다리도 풀려 비교적 수월하게 올라갈 듯했으나, 결국 몇 번 쉬고나서야 마지막 계단인 1,442번을 찍을 수 있었다.

해발 2,560m 중국과 조선의 경계비가 있는 장백산 정상인 청석봉에 펼쳐진 전경은 뭐라고 해야 하나? 흔히 표현 한다는 일반적인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대한민국 최고봉인 제주 한라산의 정상 백록담(白鹿潭)과 일본의 억지가 지속적으로 국제적 분쟁을 야기하는 동해의 독도(獨島), 황해도 장산곶을 바라보며 통일을 생각하는 백령도(百領島)를 탐방했을 때의 감격과는 차원이 다른 벅찬 울컥임 때문이었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삼대가 착한 일을 해야만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정상의 속살을, 단 한 번의 등정만으로 가장 완벽한 카메라 렌즈인 눈에 담고 있었다.

둘레가 14.4km에 달하고 평균 수심 213m, 가장 깊은 곳은 무려 384m에 달한다는 천지(天池)의 푸른 물과 아시아에서 가장 큰 담수 칼데라호의 규모는, 비가 많이 오면 조금 고이는 백록담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사장 단군이 민족 최초의 주군으로 우뚝 서 3,000의 백성을 거느리고 태백의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하나의 전설로만 남지 않음을 반증하듯이, 해발 2,774m(일제 관측) 최고봉인 병사봉(兵使峰:북측 장군봉)이 정면 북한측 영토에서 시위하듯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행은 한동안 그저 서로의 상기된 얼굴을 바라보며 눈짓 언어로 가슴의 불길을 확인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天池)와 북녁의 하늘을 생각하다
그랬다. 하얀 부석토가 쌓여 있는 모습이 흰머리 같다 하여 [白頭산]으로 부른다는 韓민족의 영산 백두산, 중국명 장백산에 오른 것이다. 장백산 침엽수림 군락과 동행한다는 남파(南坡) 루트든, 장백폭포와 힘께한다는 북파 루트든, 1,442 계단 중국령 인기 코스로 금강대협곡의 장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서파 루트를 경유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슬기로운 마음으로 인생 최대의 기념일에 ‘민족의 뿌리찾기’를 선택한 임원진의 혜안에, 백두산의 계단을 오르며 감동한 백두산 야생화 군락의 마중은 극진한 것이었다. 관광객은 넘쳐나 2,664m 청석봉에 위치한 전망대가 차고도 넘쳤으나, 비교적 좋은 지점에 자리 잡고 기념 사진과 촬영을 마친 동지들은 백두산 탐방객 최초로 졸업한 학교의 교가(敎歌)를 불렀다.

순간 전망대에서 각각 감성의 늪을 유영하던 관광객들의 눈이 일제히 우리를 향했고, 정상을 지키던 중국 공안(公安)들이 다가오기도 했으나, 우리는 굳건하게 교가를 불렀고 그 소리는 제1봉인 북한 지역 병사봉(장군봉)을 울리고 천지(天池) 물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검푸른 서해 바다 파도 헤치고 우뚝이 솟은 전당 우리 상아탑 ~중략~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어 거룩히 빛을 쏟는 善仁 대 선인’. 합창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 갈채가 터졌고 그 호응에 공안도 그저 희미한 미소로 응답할 뿐이었다. 그런 다음 [37도 조중 경계비]로 가 기념 사진을 찍고 비문 뒤 조선의 지명도 목책 뒤로 몸을 뽑아 부분부분 담았다.

그렇게 다시 선 전망대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선명한 프리즘인 눈에 백두산과 천지의 구석구석을 찬찬히 담았다. 고요하다 못해 오히려 바라보는 것도 미안한 천지의 광활함과, 어서오라 손짓하는 고마운 마음에 그저 흐뭇하게 눈길을 줄 뿐이었다. 아쉬운 것은 가이드의 설명대로 한국 어느 요란한 예능 프로의 경박함이 부른 참사였든, 좀처럼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한중 관계의 영향이든 직접 내려가 천지 물에 손과 발을 담그지 못하는 현지의 실정이었다. 아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많은 자식처럼 욕심껏 마셔도 배앓이를 하지 않을 것 같은 천지의 물을 마셔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련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괜찮았다. 그저 티 없이 맑은 날 눈이라는 초광각 렌즈로 백두산의 구석구석을 모두 담고,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산다는 괴물이 나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천지의 우아하고 거대한 위용을 만끽하고, 부족한 글로나마 채록하며 헌사(獻辭)를 남기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고마운 것이었다. 이제 비로소 너무 어려서 경험하여 장산곶의 풍경과 인당수의 비극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백령도 탐방과 날씨 관계로 접안을 못해 아숴웠던 독도의 시간도 회복될 수 있다. 이로써 한라산에서 구해 낸 민족의 남방 신화를 성인봉에서 찾은 조화의 열쇠를 안고 이곳 백두산 천지의 신비함 속에서 건져 낸 북방 민족 자긍심의 불꽃을 결합하여 지구촌의 진정한 평화를 구현할 에너지를 발견한 것 같았다.

오래오래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본 북녁 산하는 결코 타인의 것이 이니었고, 내가 선 자리 또한 중국의 그것은 아니었다. 우리 민족이든 중국인이든 만주족이든 모두가 경외하고 떠받들며 환호하던 신령스러운 산 백두산에서, 고구려 고토의 자쥬성과 천하를 호령하던 그들의 호연지기를 느끼면 된 것이었다. 가족과 오랜동안 이별할 때의 마음처럼 아쉬움을 뒤로한 체 내려오는 길에 비로소 백두산의 야생화 군락이 웃고 있었다. 두메양귀비 바위구절초 담자리꽃나무 가솔송 하늘메발톱꽃 등의 여름 계절꽃이 천지와 백두산의 하늘을 향해 웃고 있었다. 이순간 대륙해양국가 한반도의 시간은 온전히 우리 것이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금강대협곡과 양지 야생화 단지의 안부를 묻는다
지난 1989년 어느 농부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장백산의 그랜드 케년인 금강대협곡이 서파 루트의 장관이며 자랑임을 잘 알고 있다. 길이가 7km에 달하고 너비가 100~200m에 이르는 협곡은 고구려인의 웅혼이 묻혀 있을 지 모르는 신비의 공간이다. 사실 1989년 우연히 발견됐다는 발표를 그렇게 신뢰하지는 않는다. 진 시황의 무덤이나 병마용 갱도 아니고 일부러 감추려고 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백산 금강대협곡의 지질학적 가치도 잘 안다. 하여 일정상 가지 못한 아쉬움을 적는다. 청나라의 시조(始祖)인 누루하치가 전쟁의 상처를 씻었다는 양지(陽池) 강변 장백산 야생화 단지와 천지 근처 야생화의 신비도 사진으로나마 안부를 묻는다.

둘, 에필로그
건국 신화와 전설의 역사적 의미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묶어주는 구심점이기도 하고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확인해 주는 스토리 텔링이기도 하다. 고조선에는 환웅과 웅녀가 낳은 단군 설화가, 부여에는 금와왕, 고구려에는 주몽 설화가 있고 신라는 박혁거세와 석탈해, 가야에는 김수로의 탄생 설화가 있다. 백제는 고구려 유민인 소서노와 그녀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가 세웠다고 했으니 설화가 아니다.
중국은 삼황오제의 전설이, 일본은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창조신 설화가 있다. 인류의 창작 의지가 일군 창조신과 건국 신화의 의미는 내 민족에 대한 정체성이고 가치에 대한 자긍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군이 3,000 백성을 거느리고 태백산(백두산으로 추정)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전설은, 존재의 가치에 대한 긍지와 더불어 책임과 의무를 물어준다.

장백산 서파 루트 1,442 계단을 밟고 올라 청석봉에서 천하제일봉인 병사봉(兵使峰장군봉)과 천지 칼데라호의 장관을 보며, 지나온 삶의 궤적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결코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잔잔하고 여유로운 천지(天池)의 푸른 호수에서 민족의 이상을 확인했다. 나는 천부경 삼성기 환단고기 태백일사 등의 주체적(?) 민족사학이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인용하지도 않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이병도 선생의 식민사관의 논점에 동행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민족사학과 식민사학의 경계 지점에 서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계연수가 1911년에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을 참조하여 묶었다는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정사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민족적 주체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민족을 우선하여 자국의 역사를 마구잡이로 신격화하는 우(愚)를 범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같은 관점으로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백두산부터 조선 산맥의 줄기를 엮어 백두대간(白頭大幹)을 줄기로 14정간과 정맥으로 나눈 <산경표(山經表)>의 한국쪽 산맥도인 ‘설악산~지리산 구간’을 반드시 걷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일행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진실은 있다. 국뽕도 필요 없고 민족적 자각마저 패대기치고 사는 개인주의적 시각의 삶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외세인 당나라를 등에 업고 열국시대와 삼국시대를 마감한 통일신라의 부끄러운 시각이 아니라, 베이징까지 점령할 수 있었으나 백성을 위한 마음이 하늘에 닿아 돌아왔던 국광상광개토태왕과 장수왕, 그리고 고구려의 웅혼을 마음 깊이 간직한 배달환국의 후손이라는 신념이다.
이유는? 그 어떤 위대한 개인이고 인간이 곧 소우주라고 해도 나를 존재하게 한 국가를 부정하는 일은 결단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 사진: 박철민 작가

[삼선 이야기] 심양, 청태종의 묘 “소릉”

심양 홍타이지 청태종의 묘

2024년 6월 28일, 우리 국방동우회는 마지막 일정으로 심양 홍타이지 청태종능을 답사했다. 소릉(昭陵)이라 불리며, 서울 잠실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인조에게 항복을 받은 이다.
삼배구고두는 한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땅에 찢는 방식으로 세 번 절한다. 이제 조선은 청의 번국(蕃國, 중국에 조공한 나라)이 됨을 의미한다. 이는 구한말에 이르러 조선이 청의 속국이나 아니냐의 다툼으로 번지게 된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진) 청 소릉 앞에서

소릉(昭陵)은 능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궁궐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로 지었지만, 문화재 등급은 ‘AAAA’로 우리가 답사했던 광개토대왕릉과 장수왕릉과 비교하여 ‘A’가 하나 모자란다.

소릉은 인위적으로 만든 내(川)를 건너면 솔밭 사이로 커다란 궐 안에 분묘가 있다. 분묘꼭대기에는 큰 비술나무 한 그루가 자란다. 비술나무는 경복궁 경내에도 4그루나 있으니 이 무슨 조화인가? 비술나무에 까마귀가 앉으면 복이 온다는 풍습도 있다고 하니,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를 연상케 한다. 그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다. 우연의 일치지만 한문을 해석하면 “신라를 사랑하여 깨우친다.”라는 뜻이 되니 이 또한 신기할 뿐이다.

사진) 봉분 위 비술나무

1780년 8월 1일(음력), 연암 박지원은 압록강을 건넌지 37일 만에 북경 자금성 조양문에 이르러 21 왕조 3,000여 년 중국 흥망성쇠를 논한다.
“그가 조회하는 궁전을 정전(正殿)이라 하고, 그가 살고 있는 궁전을 태화전(太和殿)이라 하고, 그의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이며, 종족은 여진족이다. 직위는 천자이고, 호칭은 황제이고, 직분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일이고, 자신을 짐(朕)이라 부르고, 남들은 폐하(陛下)라 부르고, 말은 조(詔)라 하고, 명령은 칙(勅)이라 한다.” (<열하일기> 관내정사)

그가 누구인가?
만주족을 통일한 누르하치의 8번째 아들 홍타이지며, 몽골과 조선을 평정하고, 여진족을 만주족이라 명명하고, 국호를 청(淸)이라 하면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1636년 12월, 홍타이지는 압록강을 건넌지 5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인조를 남한산성에 가둔다.
왜, 삼남(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 있는 군사들, 북방에 있는 군사들은 인조를 구하려 후방작전을 수행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경기도 광주 쌍령(雙領)전투에서 몰살했기 때문이다. 40000 대 30*, 보병 4만 대 기병 30명의 전투,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몰살당하고 인조는 전의(戰意)를 상실한 채 남한산성에서 걸어나 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남한산성 내에서 벌어진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현의 치열한 논리 다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왜 그런가?
그들이 논한 명분론과 실리론의 거대 담론이 얼마나 허망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성안에 갇힌 왕과 신하, 비빈들, 그리고 1만 3천의 병사에게 날아든 군사 전황(戰況) 보고서 ‘명나라 구원병 불가, 삼한 구원병 몰살, 북방 구원병 무소식, 식량 바닥, 식수 바닥, 무기 바닥’이다.
이 상황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대안은 없다. 주화파가 이겨서가 아니라 굶주려서 나왔다.

사진) 황제문양. 용발톱이 5개. 경복궁은 3개

나는 명분론과 실리론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식량을 어떻게 구하고, 식수는 어디서 구하고, 삼남 군대와 북쪽 군대와의 군사적 연계성은 어떻게 가지고, 청나라 군대의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글로 사가(史架)를 뒤덮었다면 후세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되었는지 인과라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저절로 이가 빠진다. 이를 막은 것은 거대 담론이 아니라 그저 불소치약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40~50이면 죽었던 기대수명을 8~90세로 늘린 것이 거대 담론이 아니라 상하수도의 분리와 백신이다.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 더욱더 명분론에 집착하여 이미 망한 명나라를 숭배하기 위해 숙종은 창덕궁 후궁에 대보단(大報壇)을 쌓고 명의 큰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제사를 지내고, 선비들은 송시열의 유훈에 따라 괴산 화양계곡에 만동묘(萬東廟)를 지어 조선 선비들은 충절을 잊지 않겠다고 또 제사를 지냈다.
만동묘는 만절필동(萬折必東)에서 따온 말로 황하는 만 번을 굽이쳐도 결국 동쪽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조선의 충절은 변치 않겠다는 뜻이니 이 얼마나 허망한가?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 (<손자병법> 모공 3-5)

조선이 강화도로 피신을 할 것을 미리 알고 쳐들어온 홍타이지와 청의 팔기군 기동성과 전략을 모르고 막은 인조와의 전쟁은 이미 청이 심양을 출발할 때 결정되었다.

*쌍령전투의 군사 규모는 논란이 많으면 아군 최대치 4만에서 최소치 2~3,000명이며, 청의 기마병 척후병 30명 본대 3,000명이라는 주장도 있음.

글 사진: 윤일원 작가 All Rights Reserved.

[삼선 이야기] 아, 백두산이여

아, 백두산이여. 백두산은 한라산도 아니며, 설악산도 아닌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오직 하나의 산 ‘the 백두산’이다.

일찍이 고려 승 일연은 <삼국유사>를 지으면서,“옛날 하늘의 임금 환인은 아들 환웅(桓雄)이 하늘의 일보다 인간의 일에 뜻을 두니, 아비는 아들의 뜻을 알아 ‘삼위태백(三危太白)’을 굽어보시고, 이곳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만한 땅이니, 내 ‘하늘과 땅, 사람’을 상징하는 인장을 너에게 주어 가서 다스리도록 했다. 환웅은 무리 3,000을 이끌고 백두산(太伯山)으로 내려와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머무니, 이곳은 신들의 마을이며 환웅은 하늘의 대왕이라 불렀다.”

백두산은 예로부터 不咸山(불함산), 單單大嶺(단단대령), 蓋馬大山(개마대산), 徒太山(도태산), 太伯山(태백산), 白山(백산), 長白山(장백산), 白頭山(백두산)으로 불리며,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여진족, 거란족도 자신의 발원지라 여겨 신성시하니, 동북아 모든 민족은 이곳이 한 구멍인 셈이다.

1809년, 한 사내(徐淇修, 1771~1834)가 조정의 당파싸움에 밀려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유배를 오니, 일찍이 손님 한 분이 찾아와, “예로부터 이 땅에 유배 온 정승판서 중 백두산에 오른 이가 많았는데, 그대도 대택(大澤, 천지)을 바라보면서 사마천처럼 호쾌한 유람을 떠나지 않으렵니까?” 하니 벌떡 일어나 행장을 꾸렸다.
마침내 갑산을 출발한 지 7일 만에 남쪽 분수령(백두산 북한지역)에 다다라 정계비의 비문을 읽는다.

“오랄총관 목극등이 변경을 조사하라는 황명을 받들어 살펴보니 서쪽으로는 압록, 동쪽으로는 토문(土門)이라 그런 까닭으로 분수령에 바위를 깎아 기록한다.*
이때가 1712년 5월(康熙 51년 5월15일)이며, 비석 말미에 정계비를 세운 정황을 읽고 눈물짓는다. 국경을 정하여 경계를 지을 때 조선은 불과 역관 몇 명을 보내니 청의 관리 목극등이 제멋대로 획정했다고 강희제를 나무라기보다는 숙종의 무능을 개탄했다.

우리 일행 국방 동우회는 그 날랜 미니밴을 타고 굽이굽이 휘몰아치는 커프길에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듯 날아다니는 묘기에 한숨 반 기쁨 반 가쁜 숨을 몰아쉬고 곧바로 천문봉을 향한다.
백두산 북파(북쪽 낭떠러지)의 정상이 천문봉(天文峰)이다. 벌써 발 디딜 틈도 없이 중국인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중국 측 안내요원이 붉은 두꺼운 파카를 입고 허리에 안전 밧줄을 쇠줄에 걸고 경계면 너머에 서서 내가 조금이라도 사진을 찍으라 치면 “빨리빨리” 하면서 얼른 비키라고 소리친다. 어찌 내가 그 소리를 듣고 움찔할쏜가? 그들은 여기서 유튜버 찍으면서 생방송 하기에 여념이 없고, 가족사진을 돌아가면서 찍느라 좋은 자리는 결코 비켜 주지 않는데, 내가 맞받아치면서 “얼른얼른”하고 응수하니 저들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기는 매한가지다.

저 멀리 북녘땅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이 보인다. 장군봉은 그 옛날 함경도절도사 윤광신(尹光莘, 1701~1745)이 이 봉우리에 올라 천지를 바라본 기쁨에 겨워 ‘술을 마시고 칼을 뽑아 창 춤을 추면서’ 자신의 벼슬 이름인 ‘병마절도사’로 봉우리 이름을 지으니 병사봉(兵使峰)이 되었다. 하지만 1963년 북한 존엄 김정일 위원장이 오른 후 이 봉우리 이름을 ‘장군봉으로 하시오’ 개명하니 장군봉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장엄하다.

아직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 발길 가는 데로 바위 틈새로 천지를 쬐금 보지만 그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넋이 빠진 듯 홀황(惚恍)하다. 갑자기 찬 바람이 휭하니 분다. 아뿔싸 그렇구나. 잠시 머물렀다고 벌써 한기를 느낀다. 그 좁은 틈 사이를 빠져나와, 가져온 패딩을 꺼내입고 다시 바늘 틈조차 없는 중국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니, 드디어 천문봉에서 가장 온전하게 천지가 보이는 곳에 이른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들이댄다. 조심조심 캐논 D90 DSLR 15-55mm 렌즈의 셔터를 누르지만, 한 화면에 다 담을 수가 없다. 천지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내 가슴에 다 담을 수 없듯이 카메라 앵글을 아무리 눌러봐도 다 담을 수 없다.

세상에나!
거대한 연꽃이 피어오른 듯 수많은 봉우리가 쉴 새 없이 높고 낮은 듯 낮은 듯 높은 듯 가지런히 빙 둘러 움푹 천지를 만드니 한 손아귀에 다 담아 일만 이랑이 손안에서 너울너울 춤을 춘다.
먼 하늘에 흰 구름이 지나간다. 천지는 놀란 듯 금세 짙은 감람색으로 바뀌고 내 마음도 덩달아 어둡고 무서워진다. 바로 눈앞에 있는 푸석푸석한 황갈색 돌 사이로 타다만 검은 돌들이 천지 아래에서 물기둥을 뿜어 불기둥과 함께 날아들 것만 같다.

천지를 감싸는 수호신인 철벽봉, 용문봉, 금병봉, 제운봉, 와호봉이 땅의 어미 천지의 성질에 따라 거꾸로 모습을 담아 주었다가도 금세 삐치면 일렁이는 파도를 보내 사라지게 하니 천군만마 전쟁터 같기도 하고 한 폭의 사랑싸움 같기도 하여 움직이는 그림을 만든다.
백두산 봉우리와 천지 사이에는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온갖 기묘한 동물들이 가득하다. 어떤 것은 두꺼비이고, 어떤 것은 원숭이고, 어떤 호랑이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위로 날아오르고 아래로 처지면서 저마다 하늘로 승천할 때를 기다리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가 오른 백두산 이틀 동안 날이 맑아 하늘에 뭉게구름만 가득하니, 백번 올라야 두 번 천지를 본다는 것을, 이틀 동안 만끽하니 이날의 전설은 영원히 기억되리라.
“크면 흐르고, 흐르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돌아온다(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노자> 제25장)
그러하노라.

대간의 종산인 백두산은 그렇게 한반도로 흘러 두류(지리산)까지 이어져 온전함을 유지하였으나, 유득공이 <발해고서(渤海考書)>에 제기한 의문 “어째서 우리에게 발해 땅을 돌려주지 않는가? 발해 땅은 고구려 땅이다.”라고 여진에게 따지지 않은 죄를 어찌할거나? 그랬다면 “토문강(土門江) 북쪽을 다 차지할 수 있었는데” 하는 그의 한숨 소리가 천문봉 아래 끝없이 펼쳐진 원시림을 뚫고 달려드는 듯하다.

*백두산정계비 원문: 烏喇摠管穆克登 奉旨査邊 至此審視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

*내일은 마지막 ‘삼전도의 굴욕, 홍타이지 청 태종 묘에 들다 ’입니다.

글 사진:윤일원 작가 All Rights Reserved

[삼선 이야기] 동방의 피라미드 장수왕릉

‘동방의 피라미드’, 내가 지은 별칭이 아니다.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명명한 안내문 글귀다. 무언가 뻐개기, 허장성세를 좋아하는 중국측에서도 공식 인정한 인물이 장수왕이다. 그런 장수왕릉을 경건한 맘으로 참배하려는 나에게 김 박사가 뜬금없이 질문을 한다.
“윤박, 자네 쪼다를 아는가?”
“쪼다?”
쪼다 알지. 어리석고 모자라 제구실 못하는 사람으로 어릴 때 “야, 이 바보 같은 놈” 하기보다는 “쪼다야” 하기를 더 좋아했으니까.
“근데 왜?”
장수왕의 아들 이름이 ‘고조다(高助多)’다. 아버지 장수왕이 그야말로 ‘98세’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면서 장수(長壽)하였으니, 친아들 조다는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로 오르지 못하는 불행(?)으로 ‘쪼다’가 되었다네. 참으로 잘 지어낸 꾼들의 이야기다.

사진) 새끼무덤. 봉분은 사라지고 석관만 남은 모습 by 윤일원

왜, 중국이 타민족을 무시하면서 유독 장수왕과 광개토대왕을 존중할까?
징크스 때문이다. 중국이 한반도에 개입하면 망한다는 징크스의 주인공이 그들이다.
장수왕이 그런 역할을 했다. 아버지 광개토대왕이 확장한 영토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여 동북아에서 절대강자로 만들어 놓았다. 손자 문자명왕(文咨明王)에 이르기까지, 128년 동안 동북아 절대강자로 군림한다.
이로써 고구려는 서쪽으로는 요하(遼河), 동쪽으로는 북간도 혼춘(琿春, 두만강 위쪽), 북쪽으로는 개원(開原, 심양 북쪽), 남쪽으로는 아산만·남양만에서 죽령에 이르는 넓은 국토를 차지했다.
중국의 징크스다.

고구려는 중원을 통일한 수(隨)와 전면전(612)을 한다.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첩을 거두면서 수를 망하게 한다. 중원을 통일한 당(唐)과 전면전(645)을 한다. 양만춘이 안시성 전투에서 이세민(태종)의 눈에 화살을 맞추고 애꾸로 만들자, 당 태종은 “다시는 고구려를 침략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4년 후 죽는다.

조선 땅에 일본이 침공하여 임진왜란(1592)을 일으킨다. 명나라는 이여송으로 하여금 5만 명을 파병하여 도왔지만, 참전 후 60년 만에 망한다. 조선 땅에 일본이 주둔하고 청일전쟁(1894)이 일어난다. 청나라는 그 이후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18년 만에 망한다.

한반도에 6·25전쟁(1950)이 발생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은 항미원조를 외치면서 참전한다. 그 이후 8년 만에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인류역사상 최악의 기록 6,000만 명이 굶어 죽는 혹독한 과정을 겪는다.

이러니 중국도 무려 A를 다섯 개나 주면서 ‘高句麗’라는 명칭을 공식 사용하고 장군총을 안내하면서 “절세의 작품”이라 소개하지만, 그들이 이룬 위대한 업적 영토에 대한 지도는 없다.

“장수왕릉은 일명 장군총이라고 불린다. 기원 5세기에 세워진 장수왕릉은 기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석구조 능묘로 고구려 제20대 왕인 장수왕의 능표이기도 하다. (중략) 무덤 주변에는 10여 톤이나 되는 큰 바위가 11개나 된다. (중략) 장수왕릉 능원은 디자인이 완벽하고 석조공예가 정교하여 고구려 석구조 능묘의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절세의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 압록강 by 윤일원

우리 일행은 집안(集安)의 마지막 답사로 그리 멀지 않은 곳 압록강으로 향한다. 백두산 유역에 비가 많이 와서인지 강물이 넘쳐난다. 6인용 보트를 타고 강 한가운데로 접근하니 현지 중국인이 “DSLR 카메라 촬영금지”를 외친다.

손을 강물에 담그면 백두산 천지에 이를까? 발을 강물에 담그면 신의주에 맞닿을까? 강물은 그저 말없이 흐르고 무너져 내린 헐벗은 산비탈 황톳빛 속살만 드러낸다. 강둑을 말없이 지나가는 북한 주민에게 손을 흔들어 보지만, 그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너무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사진) 압록강 건너편 북한 모습, 사진) by 윤일원

아무리 열심히 등골이 휘도록 일해도 ‘자본’이 축적되지 않으면 ‘가난’하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겠지? 내가 “돈과 자본은 달라”를 소리 높혀 외쳐도 그들은 알까? 빤히 보이는 중국 집안(集安) 고층아파트와 즐비한 자가용을 보면 그들도 알 것이로다.

문제가 ‘나’가 아니라 ‘존엄’한 동지한테 있다는 것을. 그리고 풍요로 넘치는 남한에서도 ‘존엄’한 동지를 추종하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역사는 흥망성쇠를 거듭하지만, 압록강이야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저 무심히 흐를 뿐이다.

*내일은 제4부, ‘백두산 천지를 두 번 오르다’로 이어집니다.

글 사진: 윤일원 작가 All Rights Reserved

[삼선 이야기] 38살에 죽은 이 사내, 광개토대왕

옛 고구려의 변방 요동 심양(瀋陽)에서 4시간 동안 달려오니 저 멀리 백두산에서 발원한 압록강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제법 너른 분지를 형성하니 이곳이 바로 고구려가 424년 동안 수도로 보낸 국내성(國內城)이다.

우리를 태운 리무진은 시내를 벗어나 산기슭으로 향한다. 저 멀리에 ‘好太王碑(호태왕비)’라는 황금색 글씨가 큼지막하게 보인다.
“오호라, 내 여태껏 전쟁기념관 한 귀퉁이에서 모형으로만 봤던 진품을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
가쁜 호흡만큼이나 발걸음도 빨라진다. 중국이 자랑하는 방탄용 비각(碑閣) 안에 대충 다듬은 듯한 거대한 검은빛 비석이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가두어도 가둘 수는 없노라.” 하는 듯 검은 용 한 마리가 꿈틀거린다.

인간의 척도가 있다. 자신의 키 높이라면 친밀감이 들지만, 자신의 키보다 너무 높으면 아예 무시한다. 비석으로 가장 경외감을 주는 높이, 고개를 뒤로 활짝 젖어도 다 읽을 수 없는 높이, 바로 광개토대왕릉비다.
“총글자 수 1,775자, 그중 140여 자 자연 마모나 인위적 파손으로 추정”
어마어마한 내용들, “왕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지금의 요서(遼西, 요동강 서쪽) 지역인 시라무렌강 유역 패려(稗麗)를 공략하였으며, 러시아 극동 연해주 일대의 숙신(肅愼)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신라를 침입한 왜를 격파하기 위해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보냈고, 백제성을 공략하기 위해 아리수(阿利水, 지금의 한강)를 건넜다.”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역사에 미스터리가 없다면 이 또한 역사가 아니다.
“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羅以爲臣民(이왜이신묘년래도□파백잔□□□라이위신민)”으로,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서 백제를 파하고 신라를 ㅇㅇ하여 신민(臣民)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언빌리버블!

서기 391년 신묘년 한반도 상황, 일본에서는 환호할 내용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기절할 내용이다. □에 ChatGPT AI를 사용하여 무수히 많은 글자를 대입해봐도 대략의 그 뜻은 달라지지 않는다.
첫 □에 들어갈 단어로는 “海” (바다), “江” (강), “兵” (군대), “軍” (군사)이며, 두 번째 □□□ 에 들어갈 단어가 “國” (국), “城” (성), “地” (땅), “邑” (읍), “攻” (공격), “侵” (침략), “征” (정벌), “制”(제압)이다.

역설에 역설이다. 비문이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은 청이 자신의 나라 발원지라 여겨 “봉금(封禁)”으로 묶어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켰고, 조선에서도 여진족 금나라 유물이라 여겨 방치했고, 일본이 만주 진출을 앞두고 청일전쟁(1894~1895)의 야욕을 드러내면서 이 비문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자 세간의 관심이 폭발하게 된다.

“왜, 중국이 광개토대왕릉을 이토록 방치하지?”
우리 일행 중 한 분의 질문이다. 딱히 누구에게 질문을 던졌다기보다는 첫인상이 주는 느낌이 그렇다. 무엇이라도 있으면 크기에 콤플렉스가 있는 중국이 거대한 성을 쌓듯 복구할 텐데, 여전히 돌무더기로만 존재한 데 대한 자존심 상한 목소리다.

너른 터에 왕릉을 호위하는 무인석은 찾아 볼 수도 없고 개망초만 무성한 가운데 다 무너진 돌무지가 덩그러니 남아 있으니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지금이라면 강가에 쓰다만 자갈 몇 트럭을 싣고 와 잘 다듬은 돌 몇 개를 얹혀 놓으면 하룻밤 사이에 뚝딱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왕릉을 만든 공력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은 이 무덤이 광개토대왕릉이라니? 나의 의심을 달래줄 하나의 유물이 있다면 영국 스톤헨지의 거대한 돌을 가져다 능에 기댄 거대한 자연석, “너희들 나를 깔보지 마, 이놈들이 내 호위무사야”하는 외침뿐이다. 다듬지 않은 자연이 주는 거대한 힘, 이것이 광개토대왕릉의 본질이다.

“저기가 북한입니다”
우리 일행을 여기로 안내 한 가이드가 능의 정상에 올라 한 말이다. 중국과 북한을 가르는 기준은 단 하나 산이다. 산이 민둥산으로 무너져 내려있으면 북한, 산이 짙푸르러 기름져 보이면 중국, 이러한 경계는 한강 자유로를 타고 임진강으로 들어서면 늘 바라보는 풍경과 같다.
차별적 극명한 대비, 중국과 북한은 똑같은 정치체제지만 ‘자본주의’만은 달리 수용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유’라는 ‘민주주의’다. 부국강병의 첫 시작이 인간을 그물같이 옥죄는 ‘생각의 틀’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우리가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섰다가 하지 말며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더 말하지 말라. 그렇다면 이러한 극명한 대비도 없어야 한다.
“전쟁의 정세는 신속함이니, 적이 아직 이르지 않은 틈을 타고, 적이 아직 생각하지 못한 길로 나오며, 적이 아직 경계하지 못한 곳으로 공격한다(兵之情主速 乘人之不及 由不虞之道 攻其所不戒也).” (<손자병법> 구지 11-2)

 

그렇다. 38살에 죽은 이 사내. 재위 22년 동안 해마다 정복 전쟁을 한 이 사내의 후손 고구려가 만주벌판에서 물러난 이후 고려의 윤관장군이 동북 9성을 쌓아 백두산 넘어 700리까지 뻗친 이래로 우리 민족은 다시 이 땅을 밟지 못했다.

*내일은 제3부 “동방의 피라미드 장수왕릉”으로 이어집니다.

글 사진: 윤일원 작가 All Rights Reserved

[삼선 이야기] 광개토대왕을 만나러 가는 길

한국 인천국제공항에서 1시간 55분 비행하면 중화인민공화국 선양 타오셴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그 보다 한발 앞서 외교부에서 환영 인사 겸 주의가 날아드니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다.

“[Web발신] <외교부> 2023.7.1.부로 중국의 반간첩법이 강화 시행된바, 우리와의 제도‧개념 등 차이로 예상치 못한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유의 바람”

2024년 6월 25일 06:00 인천국제공항, 우리식 이름 6‧25전쟁, 중국식 이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 발발한 지 74년이 되던 날, 우리 국방부 퇴직자 모임인 국방동우회 24명은 고구려 유적 광개토대왕릉과 장수왕릉을 답사한 후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보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A조 8명, B조 8명, C조 8명, 이렇게 각각 선두 대장과 후미 대장을 정하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앞뒤가 누구인지를 식별한 후 줄을 서기 시작한다. 6‧25전쟁 74주년을 맞이한 인천국제공항 기념 퍼레이드가 아니다. 이 행열은 중국으로 출국하기 위한 단체 비자(VISA)의 오와 열이다.

1780년 7월 10일(음력), 또 한 사내가 압록강을 도강한 지 보름 만에 요양을 거쳐 선양에 이르러 그 날 첫 소회를 남긴다.

“아하! 여기가 바로 영웅들이 수없이 싸웠던 전쟁터로구나. 옛말에 ‘범이 달리고 용이 날아오른 것 같은 영웅이어서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는 말처럼 천자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천하가 편안한가 위태로운가는 항상 요동 들판에 달려 있었다.” (<열하일기> 성경잡지)

왜 그런가?

선양(沈阳)은 심양(瀋陽), 성경(盛京), 봉천(奉天)으로 불리는 도시다. 도시에 이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얽히고설킨 역사가 많다는 뜻이다.

컴퓨터를 켜고 구글 지도를 보라. 지도의 레이어를 행정단위가 아닌 지형으로 설정한 후 이 지역을 보면 랴오둥반도-선양-장춘-하얼빈을 경계로 거대한 산악지대가 일망무제 광대한 평원과 대충돌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평원을 지배한 종족과 산악을 지배한 종족의 거대한 경계점, 그 경계점의 전략적 요충지, 산악을 벗어나 외롭게 건설된 도시, 중국 본토 군대가 요동 벌판을 지나 혼하(渾河) 강을 건너야 들어올 수 있는 요새가 바로 심양이다.

“심양은 본래 조선의 땅이었다.”

연암 박지원의 일갈이다. 그러하다. 이곳을 들어온 우리 민족(韓民族)이 이 생각을 갖지 않는다면 이 또한 우리 민족이 아니다. 수나라와 당나라 때 고구려 영토라 고구려가 중원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이곳에서 군마를 가다듬고 천 리 일망무제, 대문도 없고 마당도 없는 곳으로 출격해야 하는 전초기지다.

이곳에서 국방동우회는 고구려의 옛 수도 국내성이 있었던 집안(集安)으로 향한다. 왜 지명을 ‘집안’으로 했는지 나는 그 어원을 모른다.

그저 순수 우리말 ‘집 안의 편안함’, 집안이 생각날 뿐이다. 마치 이두식으로 이름을 지은 일본 아스카(飛鳥, 날 비 새 조의 이두식 표현, 날(日)이 새(出)는 고을, 해가 뜨는 고을)로 백제인이 최초로 건립한 고대 국가가 연상될 뿐이다.

그러하지 않은가?

우리의 강역이 만주벌판에서 일본 아스카까지 그 강역을 꿈꾸었던 그때 그 시절을 상상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부국강병의 글을 쓴다고 말하지 못 하리라.

우리를 태운 리무진 고속버스는 거대한 옥수수밭 사이 낮은 구릉지대를 말(馬)이 밀려들 듯이 달린다. 높은 산이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사는 부여에서 강경 가는 길이나, 경주에서 영천 가는 길에 만나는 산이며 들판이다. 조금 다른 것이 있다면 이 길의 사진을 포토샵으로 좌우 위아래 마우스로 확대하여 원본을 잡아 늘인 형국이다.

이 길은 나라가 만들어지는 공장이다.

요동 벌판 끝자락 심양(瀋陽)에서 압록강 중류 집안(集安)으로 가는 길 한 가운데에 청나라 시조 누르하치가 태어난 곳 영릉진(永陵鎭)이 있다. 그는 1598년 이곳에 조부와 부친의 묘를 쓰면서 나라 세울 결심을 한다. 1598년은 임진왜란이 끝나는 연도라 역사는 모순과 역설의 씨줄과 날줄이 뒤섞인 시공임에 틀림이 없다.

그도 그 옛날 부여에서 탈출한 고주몽이 졸본부여를 설립했던 환인현(현재 桓仁縣으로 추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에 최초의 수도 영릉진에 혁도아랍성(赫圖阿拉城)을 건설한다.

오호라, 그렇구나. 1616년 누르하치가 자신의 말(言語)이 통하는 5개 부족을 통일하고 자신의 종족이 최초로 세운 금나라를 이었다고 후금(後金)으로 정하면서, 자신의 조상 금나라를 멸한 칭기즈칸의 후예 몽골을 팔기군으로 최초로 편입한다.

무릇, 작은 나라가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첫 단계가 포용이라는 사실을 그도 단번에 알았다.

팔기군은 군사행정 조직이다. 평시에는 행정 조직이지만 전시에는 군대 편제가 된다. 이는 독일 통일과정의 작은 공국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만든 국민 29명당 1명의 군국화 조직과 다름없다.

이제 항미원조, 미국을 대항하여 조선을 도운 전쟁이라고 외친 중국은 1단계의 국가에서 벗어나 중간단계의 국가에 이르렀다. 싸구려 중국산은 옛말이라 할 만큼 첨단 제품이 쏟아진다.

그런 중국의 동북부 지역이 온통 옥수수밭이라니, 옥수수는 임진왜란 때 들어온 작물이 아니던가? 이 옥수수가 없었던 그 옛날 누르하치 시절, 고구려 시절 백성들은 무엇을 먹고살았는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논’이 있고 ‘구들’이 있고 ‘돌’로 만든 성이 있다면 위대한 정복자 광개토대왕의 말발굽이 지나간 자리임에 틀림이 없다.

“최고의 권력자는 아랫사람이 그가 있는 것만 겨우 안다(太上下知有之).” (<노자> 제17장)

나는 그가 억센 힘만이 아닌 부드러운 통치를 하였기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태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여긴다.

*내일은 제2부 ‘광개토대왕릉의 거친 기댄 돌(長大石)’로 이어집니다.

글 사진:윤일원 작가

[삼선 이야기] 백두산으로

벌써 2번째다. 백두산을 오른 것이. 이번에는 북파와 서파로만 올랐다. 민족의 영산이라 신성시 된 곳. 아마도 만주족(여진족)도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을 보면 예맥족이 전신인 고구려도 당근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곳. 하늘이 도와 천지 위 뭉게구름을 볼 수 있었다.

언제나 경계면을 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 중국과 북한의 경계면, 스텝 지역과 산림의 경계면, 땅과 하늘의 경계면, 물과 하늘의 경계면. 경계면에 서면 생각의 충돌이 일어난다.

*사진:백두산 & 광개토대왕 릉(6.25.~6.28.)

글 사진: 윤일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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