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 진영의 산, 정도전의 바위 위에서

바위 위를 걷는 숨, 그리고 이야기

[이야기로 걷는 한국의 산] ① 관악산 

서울대 후문 앞. 오르기 전부터 바위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정문에서 후문을 향해 걷다 보면 숲보다 먼저 돌이 말을 건다.

“이박사, 오늘은 연주대까지. 막걸리 한 잔 하고 내려오죠.”

관악산은 서울의 남쪽, 조선을 지키기 위한 바위였다. 불의 기운을 막는 진영산(鎭影山), 정도전이 설계한 도성의 남쪽 수호산이었다.

북악산(수), 낙산(木), 인왕산(金), 관악산(火). 음양오행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고, 그 기운을 우리는 발로 디디고 오르고 있었다.


연주대를 향하여, 바위에 깃든 숨을 딛고 오르다

길은 거칠어졌다. 흙은 사라지고 바위가 나타났다. 손으로 짚어야 오를 수 있는 구간, 돌계단은 제멋대로고 땀은 눈가로 흘렀다.

숨이 거칠고 말이 사라질 무렵, 돌 너머로 기와지붕이 보였다. 연주암이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그곳.

절집 앞 바위에 앉아 물을 마셨다. 그늘 속, 바람이 잠깐 스쳤다. 우리는 무언가 정리되어 가는 기분을 느꼈다.



연주대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연주암을 지나 바위계단 몇 굽이를 돌자 연주대에 도착했다.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그 바위 위, 모두가 잠시 조용했다.

막걸리를 한 병 사서 바위에 앉았다. 나는 수첩을 꺼내 시조를 읊었다.

불꽃같은 남녘 기운 바위 아래 눌렀으니
도읍의 불안마저 이 자리에 감췄구나
한양을 지킨 바위, 지금도 말을 하누나

저 아래 펼친 도시 흰 연기마냥 흐르고
천년의 땀과 한숨 구름 되어 넘나드네
오늘을 사는 나도 잠시 그 틈에 앉았다

다리는 떨려 와도 입술에 술은 달고
흘린 땀, 쉬는 숨에 한 모금이 들어온다
산이 내어준 위로, 이보다 더 클쏘냐

이박사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걸리 한 잔이, 서울의 그림자를 눌러주는 것 같았다.


하산길, 그리고 야담 하나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더 조용했다. 우리는 서로 말을 아꼈다. 그런데 이박사가 한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표님, 저기선 옛날에 피리 소리가 났대요.”

“옛날 한 스님이 매일 저 바위에 앉아 피리를 불었다죠.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스님이 보이지 않았는데도
밤이면 그 바위에서 피리 소리가 흘러나왔다고 해요.
바람이 부는 날이면 지금도 들릴지 몰라요.”

나는 웃었지만, 그 바위 옆을 지날 땐 슬쩍 귀를 기울였다.
그날 따라, 바람이 조금은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남기는 것이다

사당역으로 내려오는 길, 나는 다시 뒤돌아 관악산을 바라봤다.

가끔은, 올라야 내려다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내려와야, 진짜로 기억하게 된다.

관악산은 도시의 불을 막는 산이 아니라,
사람 안의 불을 식혀주는 산이었다.

다음 화: ② 청계산 – 바람은 천천히, 마음은 가볍게


🧭 관악산 산행 가이드

⏱ 산행 소요 시간:
서울대 후문 ~ 연주대 왕복 평균 2시간 30분~3시간, 휴식 포함 3시간 30분 이상

🚌 교통편:
•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 → 마을버스 02번
• 승용차: ‘서울대 정문’ 또는 ‘관악산공원 주차장’ 검색

🅿 주차장 안내:
• 서울대 정문 주차장 – 1시간 1,000원 / 10분당 300원 / 최대 5,000원
• 주말 혼잡, 오전 9시 이전 진입 권장

⏰ 입산 가능 시간:
별도 제한은 없지만, 동절기 17시 / 하절기 18시 전 하산 권장

⚠️ 주의사항:
• 바위길 많고 미끄럼 주의
• 암릉 구간 및 급경사 존재 – 초보자도 등산화 필수
• 야간산행·음주산행 위험

🎒 준비물 체크리스트:
등산화 / 장갑 / 물 1L 이상 / 간단 간식 / 방석 / 우비 / 선크림

🔥 취사 금지:
• 모든 구간 화기 사용 금지 (버너·취사 도구 단속 대상)
• 연주대 인근에서 막걸리 및 음료 구입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