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3월은 이미 봄이었다.
차창 밖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남쪽의 겨울을 지나온 여행자에게 그 햇살은 거의 사치처럼 느껴졌다. 도로 가장자리에는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낮게 피어 있었고, 들판은 막 깨어난 풀빛으로 번지고 있었다. 창문을 조금 내리자 흙냄새와 풀냄새가 섞인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겨울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믿게 만드는 냄새였다.
스페인을 달린다는 것은 늘 그런 식이었다. 태양은 넉넉했고, 하늘은 넓었고, 길은 사람을 들뜨게 했다. 도시를 벗어나면 풍경은 금세 단순해졌다. 낮은 언덕, 돌담, 들판, 멀리 보이는 마을의 붉은 지붕.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봄빛이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데 멀리 시선을 던지면 풍경의 끝은 전혀 달랐다.
지평선 너머로 피레네 산맥이 서 있었다. 봉우리들은 아직도 두꺼운 눈을 쓰고 있었다. 아래쪽은 봄인데, 위쪽은 겨울이었다. 산은 가까워질수록 더 말이 없어졌다. 하얀 능선은 부드럽다기보다 단단했고, 산줄기는 길을 막아선 거대한 벽처럼 보였다. 그 너머 어딘가에 발 다르란이 있었다.
봄길 끝에 서 있던 피레네의 흰 산
발 다르란.
그 이름부터 낯설었다. 스페인 안에 있으면서도 스페인의 다른 얼굴을 품고 있는 곳. 카탈루냐 북서쪽, 피레네 깊숙한 산악 지대. 겨울이면 스키어들이 몰려들고, 여름이면 하이커들이 계곡과 숲을 따라 걷는다는 곳. 그러나 그때의 내게 발 다르란은 지명이라기보다 하나의 예감이었다. 봄의 길 끝에서 갑자기 다른 계절을 만날 것 같은 예감.

길은 점점 산속으로 들어갔다. 도로의 곡선은 부드럽지 않았다. 차는 산허리를 감아 돌았고, 햇살은 때때로 바위 절벽에 가려졌다. 봄의 온기는 조금씩 약해졌다. 대신 산에서 내려오는 찬 기운이 차창에 스며들었다. 길가의 꽃들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들판도, 낮은 언덕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회색 바위와 검은 나무, 그리고 멀리서 번쩍이는 눈뿐이었다.
마침내 터널 입구가 나타났다.
그것은 단순한 도로 시설처럼 보이지 않았다. 산이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터널은 피레네의 속으로 곧장 들어갔다. 입구 앞에서 잠시 속도를 줄였을 때,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용해졌다. 터널을 지나면 그저 산 반대편으로 나오는 것일 뿐인데, 이상하게도 무언가가 바뀔 것 같았다.
산이 삼킨 봄, 터널 속의 축축한 어둠
차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봄빛이 사라졌다. 눈앞은 축축한 회색과 검은 그림자로 바뀌었다. 터널 벽은 말끔한 현대식 콘크리트라기보다 오래된 산의 속살 같았다. 벽면 곳곳에는 물기가 배어 있었고, 천장에서는 녹은 눈이 차가운 물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와이퍼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리창에는 가느다란 습기가 맺혔다.
타이어는 젖은 노면을 밟으며 낮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터널 안에서 몇 번이고 되돌아왔다. 바깥의 햇살, 노란 꽃, 흙냄새가 모두 거짓말처럼 멀어졌다. 차 안의 공기도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는 창문을 열고 달리고 싶었는데, 이제는 창문을 닫고도 목덜미가 서늘했다.
터널은 생각보다 길었다.
처음에는 곧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둠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라이트가 비추는 앞길은 늘 비슷했다. 젖은 벽, 낮은 조명, 물방울, 다시 젖은 벽. 운전대 위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봄에서 겨울로 들어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계절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삼켰다가 다른 세계로 내보낼 것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작은 빛이 보였다. 처음에는 바늘구멍처럼 작았다. 그러나 차가 가까워질수록 빛은 빠르게 커졌다. 그 빛은 단순한 출구가 아니었다. 터널 속의 습기와 어둠을 견디게 하는 하나의 약속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속도를 조금 높였다.
터널을 빠져나온 순간, 세상의 색이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 나는 거의 소리를 질렀다.
봄은 없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차창 밖에 있던 스페인의 봄은 터널 반대편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세상의 색이 바뀌어 있었다. 도로 양옆에는 눈이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70센티미터인지, 80센티미터인지, 정확한 높이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차 안에서 바라본 그 설벽은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눈은 그냥 길가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겨울이 길을 점령하고 있었다.
순백의 벽이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햇살은 있었지만 따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 위에서 튕겨 나온 빛이 눈을 찔렀다. 파란 하늘과 흰 산, 검은 바위와 은빛 도로가 한꺼번에 눈앞으로 밀려왔다. 스페인에서 이런 겨울을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몇 분 전까지 봄의 꽃과 흙냄새 속을 달렸던 뒤라 그 충격은 더 컸다.
마치 키다리 아저씨의 집 담벼락을 몰래 넘겨다보는 아이가 된 듯했다. 어른의 키를 훌쩍 넘는 하얀 눈벽은 길 양옆에서 묵묵히 서 있었고, 그 너머에는 내가 아직 들어가 보지 못한 비밀의 겨울 마을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여행자는 때로 풍경 앞에서 다시 아이가 된다. 그날의 나는 정확히 그랬다. 눈앞의 설벽을 보며, 내가 알고 있던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좁은 상상 속에 갇혀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터널 하나였다.
그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 계절이 바뀌었다. 풍경이 바뀌었고, 공기가 바뀌었고, 마음의 속도까지 바뀌었다. 여행에서 이런 순간은 오래 남는다. 유명한 성당이나 미술관, 잘 알려진 전망대보다도 오래 남는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몸을 통과하는 순간.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먼저 숨이 멎는 순간. 발 다르란은 내게 그렇게 시작되었다.
설벽 사이로 들어선 피레네의 겨울
차는 천천히 설벽 사이를 달렸다.
도로는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양옆의 눈은 여전히 산악 지대의 겨울이 얼마나 깊은지 말해주고 있었다. 산비탈에는 눈이 두껍게 붙어 있었고, 높은 봉우리들은 거의 빛나는 금속처럼 차갑게 보였다. 그 위를 바람이 지나갔다. 눈가루가 날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산 전체가 얼음처럼 팽팽했다.
가까이 갈수록 피레네는 더 거칠어졌다. 낮은 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사람에게 쉽게 길을 내주지 않는 산의 위압감이 있었다. 어느 능선은 수직에 가까웠고, 어느 골짜기는 햇빛이 닿지 않아 푸른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그 사이로 스키 슬로프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산 위에 길게 그어진 코스들. 어떤 것은 완만했지만, 어떤 것은 거의 벼랑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블랙 다이아몬드 코스라는 말을 그때 비로소 몸으로 이해했다.
멀리서 스키어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작은 점처럼 보이던 사람들이 순간순간 방향을 틀며 눈 위에 날카로운 선을 남겼다. 그 움직임은 우아했지만, 동시에 위험했다. 엣지를 잘못 세우면 곧장 아래로 미끄러질 것 같은 경사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눈 위를 가르며 내려오는 몸짓은 산과 싸우는 듯했고, 동시에 산의 규칙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발 다르란이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이곳은 겨울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었다. 겨울 안으로 들어가는 곳이었다. 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따뜻한 카페에서 풍경을 바라보는 정도로 끝나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의 겨울은 사람에게 몸을 쓰게 만들고, 속도를 조절하게 만들고, 겁과 환희를 동시에 느끼게 했다.
눈 속에 묻힌 돌집, 다시 가고 싶은 마을
마을이 가까워지자 풍경은 다시 달라졌다.
거친 산악 지대 한가운데, 돌로 지은 집들이 나타났다. 회색 돌벽과 검은 슬레이트 지붕. 화려한 리조트 건물이 아니라 산속에 오래 버텨온 마을의 얼굴이었다. 숙박시설들도 마찬가지였다. 결코 호화롭지는 않았다. 그러나 눈 덮인 지붕과 낮은 창문, 돌벽 사이로 새어 나오는 노란 불빛이 산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그곳은 고급 리조트라기보다 피레네 산속의 작은 동화 마을 같았다. 눈은 지붕을 덮고, 골목을 낮추고, 돌집의 절반을 조용히 감싸고 있었다. 마을은 겨울에 맞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겨울 속으로 낮게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산을 이기려 하지 않는 집들, 풍경을 해치지 않는 불빛,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조용한 숙소들.
나는 많은 곳을 다녔다. 그러나 발 다르란은 지금도 내가 가본 곳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가장 다시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곳이 완벽해서가 아니다. 너무 화려해서도 아니다. 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짧은 통로, 눈벽처럼 솟은 설경, 산속에 묻힌 돌집,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감탄이 한꺼번에 내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스키 장비를 든 사람들이 오갔다. 어떤 이들은 막 슬로프에서 내려온 듯 얼굴이 붉었고, 어떤 이들은 장비를 빌리러 가는 길인지 부츠를 어색하게 끌며 걸었다. 스키 숍 앞에서는 금속 장비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왁스 냄새와 젖은 장갑 냄새, 차가운 공기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여행은 지도를 따라 이동하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계절을 건너는 일이다. 조금 전까지 봄을 달리던 사람이 터널 하나를 지나 겨울의 한복판에 서게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뜻밖의 전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쉽게 한 계절에 익숙해져 있었는지를 깨닫는 일이다.
해가 기울자 산의 색이 바뀌었다. 흰 눈은 푸른빛을 띠기 시작했고, 마을의 불빛은 더 또렷해졌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더 크게 웃었다. 바깥은 겨울이었지만, 창문 안쪽은 따뜻했다. 식당에서는 뜨거운 스튜 냄새가 흘러나왔고, 바에서는 스키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맥주잔을 부딪쳤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흥분이 더 많았다. 하루 동안 산과 겨루고 내려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표정이었다.
발 다르란의 첫인상은 그렇게 남았다.
봄의 스페인에서 출발해, 터널의 어둠을 지나, 피레네의 은빛 겨울로 들어간 날. 그날 나는 한 장소를 방문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계를 넘었다. 계절의 경계, 풍경의 경계, 그리고 여행자가 익숙하게 품고 있던 상상의 경계.
터널은 짧았지만, 그 너머의 세계는 오래 남았다.
발 다르란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들어왔다. 봄을 삼킨 터널 너머, 겨울이 가장 눈부신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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