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청 K-헤리티지정원, 서울숲에 펼친 경주 최부자댁 후원

국가유산청 K-헤리티지정원이 서울숲 서울국제정원박람회 현장에서 공개됐다. 경주 최부자댁 후원에서 출발한 전통정원 요소를 도시공원에 옮긴 이번 사례는 전통조경 연구를 관람형 콘텐츠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고유 수종, 누마루, 민관 협력까지 더해 정원관광과 국가유산 활용의 방향을 보여준다.

서울숲에 조성된 K-헤리티지정원 전경과 전통 담장, 누마루가 어우러진 모습
서울숲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 조성된 국가유산청 K-헤리티지정원.

서울숲에 옮겨온 한국 민가정원의 시간

K-헤리티지정원이 서울숲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유산청은 5월 4일 서울숲에서 기관정원인 K-헤리티지정원 공개 기념행사를 열고, 전통정원 모듈 개발 연구 성과를 실제 관람 공간으로 선보였다.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5월 1일부터 10월 27일까지 서울숲 일대에서 진행된다.

이번 정원은 단순한 전시 정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례다. 국가유산청이 전통조경의 기초 자료를 축적하고 보급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추진해 온 연구 결과가 도심 속 공원에 적용됐기 때문이다. 전통정원 연구가 시민이 직접 걷고 머무는 공간으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K-헤리티지정원은 국가유산 활용의 실험장이 됐다.

K-헤리티지정원 중심부에 놓인 전통 누마루와 수목 식재 공간
K-헤리티지정원의 누마루는 전통정원 관람 경험을 머무름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K-헤리티지정원의 출발점은 경북 경주의 국가민속문화유산인 경주 최부자댁이다. 경주 최부자댁은 조선 후기 이후 지역 사회와 함께해 온 고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 정원은 그중에서도 후원의 배치와 분위기를 가져왔다. 정원에는 미선나무, 말발도리, 병아리꽃나무, 조팝나무, 히어리 등이 주요 수종으로 활용됐고, 마루와 협문, 전통담장이 주요 시설로 배치됐다.

정원에는 화계, 담장, 협문, 누마루와 마당이 배치됐다. 화계는 경사진 지형을 따라 단을 만들고 꽃과 나무를 심는 전통정원의 대표 요소다. 궁궐이나 사대부가 후원에서 익숙한 방식이지만, 이번 정원에서는 도시공원의 동선과 결합해 관람객이 천천히 걸으며 공간의 높낮이와 식재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전통정원을 박물관 안 유물처럼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 생활 속에서 쉬고 머물 수 있는 장소로 풀어낸 시도다.

정원 조성에는 경기 남양주 사릉 전통수목양묘장에서 길러낸 고유 수종이 활용됐다. 국가유산청 산하 궁능유적본부 직영조경단이 식재에 참여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전통정원은 건축물이나 장식 요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떤 나무를 심고, 어느 계절에 꽃과 잎이 변하며, 담장과 길이 식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고유 수종을 활용한 이번 조성 방식은 전통조경을 형태가 아니라 생태와 관리의 기술로 이해하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누마루 조성에는 민간 기업과의 협력이 더해졌다. 국가유산청은 클리오와 협력해 기획한 제품 판매 수익금 일부를 누마루 조성에 활용했다. 또 인근 기업정원에는 2025년 3월 안동 지역 산불 피해 목재가 전시 소재로 쓰일 수 있도록 지원했다. 전통정원과 뷰티 기업, 산불 피해목이라는 조합은 다소 낯설지만, 공공기관의 문화유산 정책이 기업 후원과 환경 메시지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K-헤리티지정원의 오솔길과 협문, 전통 담장이 이어지는 장면
협문과 오솔길은 한국 민가정원의 안팎을 잇는 경관 변화를 보여준다.

여행·레저 관점에서 보면 K-헤리티지정원은 서울숲 방문 경험을 바꾸는 콘텐츠이기도 하다. 서울숲은 성수동 상권, 한강, 갤러리, 카페 문화와 연결되며 이미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찾는 장소다. 여기에 전통정원이 더해지면 관람객은 단순히 산책로를 걷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적 정원 문화를 가까운 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궁궐이나 고택 방문 전후에 한국 전통조경을 이해하는 입문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전통정원은 그동안 궁궐, 사찰, 고택, 별서정원과 같은 특정 장소에 묶여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보존 대상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일상적 이용과 관광 콘텐츠화 사이에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다. K-헤리티지정원은 이 지점을 실험한다. 원형을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핵심 요소를 추려 도시공원의 조건에 맞게 옮기고, 관람객이 그 안에서 쉬며 전통정원의 정서를 체감하도록 했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전통정원 모듈이 확산되려면 단발성 전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식재 유지관리, 계절별 경관 변화, 해설 프로그램, 접근성, 야간 관람 가능성, 외국어 안내 등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전통정원은 조성 직후보다 시간이 지나며 완성도가 드러나는 공간이다.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지는 과정까지 관리되지 않으면, 연구 성과가 장기적인 문화관광 자산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번 시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국가유산 활용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은 더 이상 보호구역 안에서만 설명되는 대상이 아니다. 도시공원, 민간 브랜드, 지역 재난의 기억, 관광 동선과 만나면서 새로운 접점을 만들고 있다. K-헤리티지정원은 그 접점 위에 놓인 정원이다. 서울숲을 찾은 시민이 무심코 담장과 협문 사이를 걷고, 누마루 옆에서 잠시 쉬는 경험은 전통문화를 멀리 있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의 생활공간 안으로 끌어오는 일이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10월 말까지 이어지는 만큼 K-헤리티지정원의 진짜 평가는 앞으로 몇 달간의 관람 경험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며 수종이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지, 관람객이 정원을 얼마나 오래 머무는 공간으로 받아들이는지, 관련 해설과 콘텐츠가 얼마나 보강되는지가 중요하다. 서울숲의 한 구역에 조성된 작은 전통정원이 한국 정원관광의 실험장으로 읽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