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백련항과 노도

35년전 수련 마치고 남해읍 소재 신설 병원에서 군복무 대신 3년간 특례로 근무했다. 차가 있어 3년 있는 동안 남해 여기저기를 다녔고 가는 곳마다 단골 환자 한 두명을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곤 했다. 당시 남해 모든 면에서 내과에 진료 받고 입원하는 환자들이 꽤 많았다.

35년전에 백련항은 드라이브하며 지나다 잠시 주차하여 경치를 보던 아름다운 곳이다,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35년전처럼 차를 세우고 보니 전에 없던 사진용 그림액자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66살도 포즈를 취해 본다,

백련항에서 보이는 삿갓처럼 생긴 섬이 노도라는 섬으로 과거 수군통제사 산하 배젖는 노를 만들던 곳이다, 노를 만들기에 좋은 소나무가 자란다. 이 섬을 문학의 섬이라고 하여 관광객이 많이 온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와서 56세까지 살다 여기서 사망했는데 유배기간 3년동안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집필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8년 일본 천리대 도서관에서 서포의 일대기를 담은 “서포연보”가 발견됨으로 “구운몽”은 선천의 귀양지에서 씌였다는 설이 거의 확실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노도에서 김만중의 책이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 글의 정서로 보아 김만중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심정으로 쓴 글이라 귀양 갔을 때 적은 글이 확실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구운몽은 서포가 이 세상에 나서 목적했던 모든 것이 이제는 희망이 없다는 시기에 제작되었고 용문사 등 남해의 지명이 등장하니 남해 유배지 집필 설이 유력했다. 용문사 인근은 토종닭 요리가 유명하여 나도 자주 갔던 곳이다,

김만중이 두번 귀양을 갔다, 숙종이 장희빈을 총애할 때 조사석과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는 내연관계였다. 이런 사실을 발설한 언관들에게 탄압이 가해지자, 김만중은 경연장에서 숙종의 면전에서 “조사석이 정승이 된 것은 희빈 장씨의 베겠머리 송사 때문이 아니냐고“ 항의했다. 그리하여 숙종의 진노를 얻어 파직되어 바로 유배 갔다. 이후 다시 복권 되었다가 기사환국 이후 1689년 남인 박진규·이윤수 등의 탄핵으로 다시 남해에 유배되어 3년만에 병사하였다.

노도로 들어가는 유람선을 타면 서포가 유배되었던 초옥이 나오고 사용하던 우물도 그대로 있었다, 현충일 휴일에 남해로 차를 몰아 35년 전처럼 주차하고 백련항을 보며 내가 삼십대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글 사진: 김홍식/배산메디컹 내과 원장 

 

여행레저신문 Copyrights ⓒ The Travel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Story

名古屋の都市スカイラインを背景に望む名古屋城

【特別寄稿・デスクコラム】外国人宿泊者200万超の名古屋が抱く慢心――歴史的遺産を有しながら、なぜ「退屈な街」に甘んじるのか

【여행레저신문】 名古屋市の2024年観光統計では外国人宿泊客の実人数が約203万人、延べ宿泊者数が約369万人に達した。熱田神宮、名古屋城、国宝犬山城、ジブリパーク、名古屋めしまで揃う一方、アジア大会開幕を目前にした韓国市場向けPRは1000円クーポン中心にとどまる。豊富な観光資源を都市ブランドへ転換できない名古屋の観光マーケティングとメディア戦略を検証する。

Latest News

푸른 녹지의 아카렌가 붉은 벽돌 청사 뒤편으로 우뚝 솟은 하얏트 센트릭 삿포로 고층 빌딩 전경

개척의 역사 위에 띄운 로컬 호스피탈리티… 하얏트 센트릭, 홋카이도...

하얏트 센트릭 삿포로가 홋카이도 최초의 센트릭 브랜드로 삿포로 도심에 공식 개관했다. 붉은 벽돌 아카렌가 청사와 맞닿은 뛰어난 입지 속에서 탐험가 정신을 담은 객실과 장작불 로컬 미식을 선보이며 홋카이도 사계절 체류형 여행의 새 거점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