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래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애니메이션과 코믹 콘텐츠가 일본 여행의 실제 수요를 움직이고 있다. 과거 일부 팬덤의 취미로 여겨졌던 ‘성지순례 여행’이 항공권, 호텔, 행사 티켓, 테마파크 예약으로 이어지며 아시아 여행시장의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트립닷컴 그룹이 공개한 자체 데이터에 따르면, 플랫폼 내 애니메이션·코믹 관련 여행 검색량은 전년 대비 195% 증가했다. 이용자들은 ‘애니메이션’, ‘코믹’, ‘애니메이션 투어’, ‘코믹콘 행사’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행 정보를 찾았다. 지역별로는 홍콩 368%, 타이완 266%, 인도네시아 223%, 필리핀 155%, 한국 143%, 일본 136% 순으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한국 이용자의 검색량이 전년보다 143% 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본 여행 수요가 단순 쇼핑, 미식, 온천, 벚꽃 여행을 넘어 특정 콘텐츠를 따라 움직이는 단계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이제 “도쿄에 간다”보다 “어느 작품의 배경지, 어느 행사장, 어느 캐릭터 숍, 어느 테마형 공간을 방문할 것인가”를 먼저 정한다.

애니메 재팬 2026, 해외 티켓 판매 697% 증가

가장 뚜렷한 지표는 애니메 재팬 2026이다. 트립닷컴이 판매 파트너로 참여한 애니메 재팬 2026 해외 티켓 판매량은 전년 대비 697% 급증했다. 티켓은 총 82개 국가 및 지역에서 예매됐고, 중국 본토와 홍콩, 싱가포르 이용자의 구매 비중이 높았다.

애니메 재팬은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리는 일본 대표 애니메이션 행사다. 제작사, 플랫폼, 캐릭터 상품, 무대 행사, 팬 이벤트가 한 공간에 모이는 만큼 단순 전시회라기보다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재를 보여주는 쇼케이스에 가깝다. 해외 티켓 판매가 크게 늘었다는 것은 애니메이션 팬덤이 온라인 소비를 넘어 현장 방문형 여행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 흐름은 행사장 주변 호텔 예약에도 반영된다. 올해 8월 개최 예정인 코믹마켓 영향으로 오다이바 지역 행사 기간 호텔 예약은 전년 대비 78.2% 증가했다. 한국은 오다이바 호텔 예약 상위 7위 국가로 집계됐다. 도쿄 빅사이트와 가까운 오다이바는 대형 전시·이벤트 수요가 숙박 수요로 직접 이어지는 대표 지역이다.

이케부쿠로, ‘보는 여행’에서 ‘찾아가는 여행’으로

이케부쿠로도 흐름의 중심에 있다. 도쿄 내 애니메이션·피규어·코믹 문화의 주요 거점으로 알려진 이케부쿠로 지역 호텔 예약은 행사 기간 전년 대비 20.7% 증가했다. 한국은 주요 예약 국가 4위를 기록했다.

이케부쿠로의 강점은 오토메로드를 비롯한 서브컬처 소비 공간이 밀집돼 있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전문점, 만화·동인지 매장, 캐릭터 상품점, 콘셉트 카페가 도보권 안에 모여 있다. 아키하바라가 전자상가와 남성 팬덤 중심의 이미지로 알려졌다면, 이케부쿠로는 여성 팬덤과 캐릭터 소비, 만화·애니메이션 상품 구매가 결합된 거리로 성장했다.

이런 지역은 일반 관광지와 작동 방식이 다르다. 여행자는 유명 건축물이나 자연 경관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과 캐릭터가 만들어낸 분위기를 체험하러 간다. 특정 매장, 특정 행사, 한정판 굿즈, 콜라보 카페, 팝업 스토어가 여행 동선의 중심이 된다.

콘텐츠가 항공·호텔·테마파크 수요를 만든다

일본을 찾는 한국 여행객 사이에서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시부야 스카이, 도쿄 디즈니씨 같은 테마형 관광지도 높은 선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은 인기 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한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하며 애니메이션 팬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 대목은 여행업계가 주목해야 할 변화다. 콘텐츠 관광은 기존 패키지 여행처럼 정해진 명소를 순서대로 방문하는 방식과 다르다. 여행 목적이 먼저 생기고, 그 목적에 맞춰 항공권과 호텔, 교통, 티켓, 굿즈 구매가 뒤따른다. 작품을 본 사람이 여행자가 되고, 팬덤이 숙박 수요가 되며, 행사가 도시 방문 이유가 된다.

트립닷컴 한국 지사장은 “한국 여행객 사이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문화와 연계된 몰입형 여행 경험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며 “공연뿐 아니라 전시, 행사 등 다양한 콘텐츠와 연계한 상품을 지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여행의 경쟁력, 이제는 ‘장소’보다 ‘이야기’

일본은 이미 애니메이션과 서브컬처를 관광 자산으로 전환하는 데 강한 기반을 갖고 있다. 도쿄의 아키하바라와 이케부쿠로, 오다이바, 오사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교토와 가마쿠라, 기후와 돗토리 등 각 지역은 작품 배경, 행사, 캐릭터, 테마형 공간을 통해 여행 동기를 만든다.

성지순례 여행의 핵심은 장소 그 자체보다 이야기다. 같은 거리라도 어떤 작품을 통해 기억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의미가 달라진다. 팬들은 화면 속 장면을 실제 거리에서 확인하고, 작품 속 분위기를 사진과 구매 경험으로 남긴다. 여행은 소비이면서 동시에 팬덤의 기록이 된다.

한국 여행업계에도 시사점이 있다. K팝, 드라마, 웹툰, 게임, 영화 콘텐츠를 보유한 한국 역시 성지순례형 관광을 더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다. 문제는 콘텐츠의 인기를 실제 여행 동선, 예약 상품, 지역 체류, 전시·행사, 굿즈 소비로 연결하는 구조다. 일본은 이 연결을 이미 여행상품과 도시 브랜드 안에 넣고 있다.

애니메이션 성지순례는 더 이상 일부 팬의 특별한 여행이 아니다. 데이터는 이미 변화를 보여준다. 검색량은 늘고, 행사 티켓은 팔리고, 호텔 예약은 움직인다. 일본 여행은 이제 풍경과 음식뿐 아니라 캐릭터, 장면, 세계관을 따라 이동하는 여행으로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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