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이라고 하면 먼저 바다를 떠올리지만 왕산면 대기리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해발 약 1,100m 고원에 고랭지 밭이 넓게 펼쳐지고, 밭 사이로 난 농로와 풍력발전기가 산의 굴곡을 따라 이어진다.

이곳이 안반데기다. ‘안반’은 떡이나 반죽을 치는 넓고 우묵한 나무판을 뜻하고, ‘데기’는 평평한 땅을 가리키는 말에서 왔다. 산 정상부에 넓게 펼쳐진 지형이 안반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바다에서 한참 떨어진 강릉의 또 다른 얼굴

안반데기는 1960년대 중반부터 화전민들이 들어와 개간한 고랭지 농업지역이다. 약 200만㎡ 규모의 산비탈과 고원에 밭이 이어져 있다. 지금도 이곳은 관광지가기 전에 농민들이 실제로 농사를 짓는 생활과 생산의 공간이다.

여름이면 산비탈 전체가 초록빛으로 덮인다. 밭의 경계를 따라 휘어지는 길과 능선 위 풍력발전기가 겹치면서 다른 고랭지 농촌에서는 보기 어려운 큰 스케일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강릉 안반데기 해발 1,100m 고랭지 배추밭과 풍력발전기
해발 약 1,100m 안반데기 고원에 고랭지 밭과 농로가 이어지고 능선 위로 풍력발전기가 서 있다. 사진=서영오 기자/여행레저신문

해가 기울자 구름이 내려왔다

안반데기의 풍경은 오후 늦게부터 빠르게 달라진다. 해가 산 너머로 기울면 고원 가까이 내려온 구름이 능선을 덮고, 구름 사이로 들어온 빛이 밭과 길 위에 길게 번진다.

사진 속에서도 해는 거의 넘어갔지만 짙은 구름은 고원 위에 오래 머물러 있다. 어두워진 구름 아래 수평선 가까운 하늘만 붉게 열리고, 초록 배추밭과 굽은 농로가 마지막 빛을 받는다.

밤이 내려온 강릉 안반데기 농가와 농로의 불빛
어둠이 내려오자 초록빛 밭은 사라지고 농가와 농로 주변의 작은 불빛이 고원에 남았다. 사진=서영오 기자/여행레저신문

초록색이 사라진 자리에 불빛이 들어왔다

해가 완전히 지면 넓던 밭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대신 농가와 농로 주변의 작은 불빛이 하나씩 나타난다. 낮에는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던 밭과 길이 밤에는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더 또렷해진다.

해 질 무렵의 붉은 하늘과 밤의 불빛을 함께 보려면 오후 늦게 올라가 시간을 두고 머무는 편이 좋다. 고원이라 날씨 변화가 빠르고 여름에도 해가 진 뒤에는 체감온도가 크게 내려갈 수 있다.

별과 흐르는 구름이 보이는 강릉 안반데기 밤하늘과 풍력발전기
깊어진 밤, 능선 위 풍력발전기 뒤로 별이 나타나고 구름은 밤하늘을 가로질러 흐른다. 사진=서영오 기자/여행레저신문

조금 더 기다리면 별이 나온다

안반데기는 별과 은하수를 촬영하려는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주변에 대도시의 강한 불빛이 적고 시야가 넓어 맑은 날에는 능선 위로 밤하늘이 크게 열린다.

구름이 걷히는 밤에는 풍력발전기와 산 능선 위로 별이 나타난다. 낮의 배추밭, 저녁의 구름과 노을, 밤의 불빛과 별이 같은 자리에서 시간차를 두고 이어진다.

농사짓는 땅이라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

안반데기는 실제 농경지다. 사진을 찍기 위해 밭 안으로 들어가거나 농작물을 밟아서는 안 된다. 농로에 차량을 세워 농기계와 주민 차량의 통행을 막는 일도 피해야 한다.

산길은 폭이 좁고 경사가 있는 구간이 많다. 특히 해가 진 뒤에는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지므로 야간 운전과 차량 교행에 주의해야 한다. 일몰과 밤하늘을 함께 볼 계획이라면 출발 전에 기상과 현장 도로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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