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29일 저녁, 화성행궁의 어둠 속에서 마주한 ‘제63회 수원화성문화제’ 프레스데이는 한마디로 충격이자 경탄이었다.35년 넘게 세계 각국의 수많은 축제와 글로벌 공연 현장을 누벼왔지만, 이 정도로 숨이 멎을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 무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신풍루의 거둥행렬로 시작해 우화관, 화령전, 낙남헌을 지나 봉수당 월대에서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가 복사꽃비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까지, 40여 분간 전각을 걸으며 목격한 장면들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다.
5,000원의 관람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미안하게 느껴질 만큼, 연출의 스케일과 미디어아트의 기술적 정밀도는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전례 없는 거대한 시도… 감독단은 역대급 ‘명작’을 뽑아냈다
이번 수원화성문화제는 국내 어떤 지자체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영역에 과감하게 깃발을 꽂았다.
기존 축제들이 무대 위에 연예인을 세우고 관객을 객석에 가둬두는 천편일률적인 잔치에 머물렀다면, 조형제·오제열·이원준 3인의 총감독단은 230년 전 정조가 걸었던 화성행궁의 전각 전체를 통째로 무대로 뒤바꿔버렸다. 관객이 어둠 속 행궁의 돌바닥을 직접 밟으며 역사 속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 야간 몰입형 실경극은 대한민국 축제사(史)에 기록될 만한 위대한 진일보다.
4년여간 축제를 다듬어온 감독단의 집념과 수원시의 전폭적인 뒷받침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화서문과 장안문을 캔버스 삼아 펼쳐지는 최첨단 미디어아트와 연무대의 웅장한 야조(夜操)까지, 그들이 빚어낸 콘텐츠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독보적인 ‘명품’이다.
연출진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명을 완벽하게 초과 달성했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박수받을 만한 위대한 볼거리와 이야기의 뼈대를 완성해 낸 것이다.

“명작을 만드는 것과 파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제 질문의 방향은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경이로운 작품을 눈앞에 두고도, 일선 지자체의 상투적인 행정과 홍보 방식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직무유기다. 좋은 상품을 만드는 것(Product)과 그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파는 것(Marketing & Sales)은 완전히 다른 전장(戰場)이다.
외국인에게 정조라는 이름이 생소하고 역사적 서사의 문턱이 높다는 점은 축제의 한계가 아니라, 마케팅이 풀어내야 할 지극히 당연한 과제다. 훌륭한 예술품을 만들어낸 감독단에게 “왜 외국인이 정조를 모르느냐”거나 “왜 해외 마케팅이 폭발하지 않느냐”며 판로 개척의 짐까지 떠넘겨서는 안 된다. 장인은 최고의 칼을 벼렸고, 그 칼을 쥐고 전장에 나가 영토를 넓히는 것은 전문 마케터와 행정의 몫이다.
수원화성문화제는 이미 문체부 지정 국가대표 ‘글로벌 축제’로서의 정당성과 체급을 증명했다. 1회성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정부와 경기도, 수원시가 지속적으로 국비를 투입하며 글로벌 축제의 지위를 지켜내야 마땅하다.

수원이 들썩이고, 대한민국이 찾아와야 할 축제
축제의 개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이 위대한 시도가 빈 객석 앞에서 헛되이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강력한 홍보 드라이브다.
수원 시민들부터 자부심을 품고 성곽으로 쏟아져 나와야 한다. 인근 수도권과 전국의 여행자들, 나아가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올가을 수원에 가지 않으면 당대 최고의 역사·문화적 헤리티지를 놓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만들어야 한다.
이 놀라운 축제는 더 많은 조명을 받아야 하고, 더 들썩들썩한 인파로 보답받아야 한다. 230년 전 정조가 백성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그 빛은 이미 화성행궁의 밤하늘 아래 완벽하게 켜졌다.
공은 이제 감독들의 손을 떠나 수원시와 전문 마케팅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이 위대한 무대를 어떻게 대한민국과 세계인의 가슴속에 각인시킬 것인가. 수원의 진짜 도전은 바로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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