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산은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고행을 견뎌내고 꼭대기에 올라서야 비로소 가슴 벅찬 풍경을 내어준다.

하지만 전북 완주 대둔산(878m)은 문법이 다르다. 최고봉 마천대 표지석에 닿기 전, 케이블카에서 내려 정상으로 향하는 0.8km 남짓의 바윗길 한가운데에 이 산이 가진 가장 극적인 풍경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다.

바닥에서 80m 높이의 허공을 잇는 붉은 금강구름다리를 건너고, 곧이어 깎아지른 바위벽에 51도 각도로 기대어 선 삼선계단을 딛고 올라서는 길. 발밑으로는 아득한 협곡이 펼쳐지고 머리 위로는 잿빛 기암괴석 사이로 붉은 단풍이 타오른다. 정상을 밟았다는 안도감보다 그곳으로 다가가는 길목의 긴장과 장관이 훨씬 더 깊게 남는 이유다.

가을 단풍으로 물든 대둔산 암봉 사이에 걸린 금강구름다리
대둔산 금강구름다리는 암봉 사이 협곡을 가로질러 놓여 있어 가을이면 기암괴석과 단풍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협곡 위 80m에 걸린 붉은 다리… 금강구름다리

케이블카 상부 역사에서 돌길을 10여 분 오르면 임금바위와 입석대 사이를 가로지르는 금강구름다리가 나타난다.

2021년 완주군이 전면 재설치한 이 다리는 길이 48m, 폭 1.2m로 협곡 바닥에서 약 80m 높이에 걸려 있다. 평지에서 48m는 가벼운 걸음으로 몇 초면 지나칠 거리지만, 사방이 허공으로 트인 벼랑 위에서는 체감이 완전히 달라진다.

다리 한가운데 멈춰 서면 거센 산바람과 함께 대둔산의 거친 골격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날카롭게 솟구친 화강암 암봉들과 깊게 파인 골짜기, 그리고 그 바위틈을 비집고 물든 오색 단풍이 발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붉은 현수교 난간을 잡고 내려다보는 풍경만으로도 가을 대둔산을 찾은 이유가 분명해진다.

대둔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겹겹의 산줄기와 운해
대둔산 정상부에서는 날씨 조건에 따라 겹겹의 산줄기와 운해, 저녁빛이 어우러진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바위 절벽에 기댄 51도 수직 통로… 삼선계단

구름다리를 지나 정상을 향해 바윗길을 더 치고 오르면 대둔산의 또 다른 명물인 삼선계단이 마주 선다.

경사도는 무려 51도. 계단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암벽 틈에 기대어 세운 철제 사다리에 가깝다. 127개의 발판을 디디며 오르는 동안 자연스럽게 몸을 앞으로 숙이고 난간을 꽉 쥐게 된다.

구름다리가 허공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길이라면, 삼선계단은 깎아지른 바위벽을 타고 고도를 수직으로 끌어올린다.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등 뒤로 펼쳐지는 암봉과 숲의 높이가 달라지며 묵직한 고도감을 선사한다.

이 구간은 안전을 위해 올라가는 방향으로만 통행할 수 있는 일방통행로다. 중간에 멈춰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높은 곳에 부담을 느끼거나 다리 힘이 부치는 탐방객은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 계단 옆으로 바위 숲을 완만하게 돌아가는 우회 등산로를 이용하면 편안하게 능선에 합류할 수 있다.

단풍으로 물든 대둔산 능선을 오르는 케이블카
대둔산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이 있는 핵심 암릉 구간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케이블카 타고 올라도 남은 0.8km는 만만치 않은 암릉

대둔산은 1990년부터 운행해 온 케이블카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비교적 쉽게 찾는 산으로 꼽힌다. 927m 길이의 선로를 5분 만에 오르내리며 탐방객의 발품을 크게 덜어준다.

그러나 케이블카에서 내렸다고 해서 산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케이블카 상부역에서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을 거쳐 정상 마천대까지는 약 0.8km의 등산로가 남아 있다. 소요 시간은 40분 안팎으로 거리는 짧지만, 거친 바윗길과 가파른 돌계단이 쉼 없이 이어져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다. 케이블카는 힘겨운 산행을 면제해 주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대둔산의 핵심 바윗길이 시작되는 들머리까지 고도를 단숨에 올려주는 장치에 가깝다.

대둔산 암벽에 설치된 경사 51도의 삼선계단
경사 51도의 삼선계단은 대둔산을 대표하는 고공 산행 구간이다. 높은 곳에 부담을 느낀다면 우회 등산로를 이용할 수 있다. 

첩첩산중을 굽어보는 해발 878m 마천대

케이블카 대신 주차장에서 동심바위를 지나 정상까지 온전히 걸어 오른다면 편도 2.3km, 1시간 40분 이상의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야 한다.

어떤 경로를 택하든 해발 878m 최고봉 마천대 개척탑에 서면 호남의 명산다운 품세가 드러난다. 완주와 금산, 논산으로 끝없이 뻗어나가는 산줄기들이 가을 햇살 아래 파도처럼 굽이친다.

완만한 육산의 단풍이 부드러운 수채화라면, 대둔산의 단풍은 단단한 화강암과 강렬하게 부딪치는 유화다. 잿빛 바위의 뼈대 사이로 붉은 활엽수가 핏줄처럼 엉겨 붙어 산세의 굴곡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도드라지게 만든다.

가을 산행 안내와 안전 요령

대둔산도립공원은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10월에는 아침저녁과 낮의 일교차가 크고, 해발 800m를 넘어서는 능선부에는 바람이 매섭다. 땀을 흘리고 멈춰 서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으므로 바람막이 겉옷과 장갑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화강암 바윗길과 철제 계단은 이슬이나 서리를 맞으면 미끄러울 수 있어 바닥 접지력이 우수한 등산화를 신는 것이 안전하다.

단풍이 무르익는 주말에는 케이블카 탑승장에 긴 줄이 늘어선다. 조금 더 여유롭게 가을 정취를 즐기려면 이른 아침 첫 운행 시간을 노리거나, 탐방객이 빠져나가는 오후 시간대를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대둔산은 정상을 밟았다는 결과보다, 80m 허공 다리와 51도 암벽 계단을 차례로 통과하며 온몸으로 풍경을 맞닥뜨리는 과정 그 자체가 더 매력적인 산이다. 거친 바위와 붉은 숲이 어우러진 그 길목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가을 산행의 묘미는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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