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쌍계사 단풍 여행, 붉은 숲길에서 최치원의 천년 비문을 만나다

하동 쌍계사의 가을 풍경은 전각 사이를 옮겨 다닐 때마다 달라진다. 기와지붕 위로 붉은 단풍이 걸리고, 마당 건너 나무에는 노란 잎이 남아 있다. 돌계단을 올라 뒤돌아보면 조금 전 지나온 지붕과 산자락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나무 한 그루보다 건물과 숲이 겹치는 장면을 찾아 걷게 되는 사찰이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에 자리한 쌍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다. 봄에는 벚꽃길로 익숙하지만 가을에는 경내의 전각과 석조 유산을 찬찬히 살펴보는 여행지로 눈길을 돌릴 만하다. 꽃길을 따라 들어왔던 봄 여행과는 다른 속도로 산사의 안쪽을 만나게 된다.

쌍계사 전각과 처마 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나무
하동 쌍계사 전각 주변 단풍.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기와와 단풍이 겹치는 경내 산책

들머리에서는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과 천왕문, 팔영루와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살펴볼 수 있다. 문을 통과하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음 마당이 나타난다. 대웅전 앞에 이르면 건물의 정면뿐 아니라 뒤편 숲과 옆 전각까지 함께 바라볼 만하다.

쌍계사 공식 안내는 경내를 금당 영역과 대웅전 영역, 문화예술관 영역으로 나눈다. 청학루·팔상전·금당으로 이어지는 축과 일주문·팔영루·대웅전으로 이어지는 축이 교차하는 배치다. 전각들이 모두 한 줄로 놓여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안내도를 보며 갈림길을 확인하면 이동이 수월하다.

이 배치는 사진을 찍는 재미와도 이어진다. 건물 한 채를 정면에서 담은 뒤 옆길로 이동하면 단풍나무 가지 사이로 처마가 보인다. 계곡 주변에서는 붉고 노란 잎과 푸른 대나무가 대비된다.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무르기보다 전각과 나무 사이의 간격을 바꿔 보며 풍경을 찾는 편이 좋다.

낙엽이 쌓인 돌계단과 물가에서는 걸음을 늦출 필요가 있다. 경내를 평탄한 순환 산책로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금당 방향에는 경사가 있어 부모님이나 어린아이와 동행한다면 모든 영역을 한 번에 돌아보기보다 대웅전 주변부터 살펴보는 일정이 적절하다.

쌍계사 경내 구층석탑과 뒤편 전각
하동 쌍계사 구층석탑과 전각.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국보 탑비 앞에서 읽는 산사의 시간

쌍계사를 대표하는 국가유산은 국보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다. 진감선사 혜소의 행적을 기록한 비로, 최치원이 글을 짓고 썼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금석문 자료와 국사편찬위원회 고대 사료 데이터베이스는 건립 연대를 887년으로 안내한다.

비석 앞에서는 조각과 글씨가 함께 남아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사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일신라 승려의 생애가 당대 문인의 문장으로 어떻게 전해졌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안내판의 설명을 먼저 읽으면 돌에 새겨진 글자가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도 주요 관람 대상이다. 단청과 목조 구조, 지붕의 선을 주변 나무와 함께 살펴볼 만하다. 사찰의 지정 유산에는 불상과 불화 등 실내 유물도 포함되므로, 목록에 있는 유물을 모두 현장에서 가까이 볼 수 있다고 기대하기보다 공개 범위와 관람 안내를 따르는 편이 좋다.

낙엽이 쌓인 쌍계사 돌다리와 단풍에 둘러싸인 전각
하동 쌍계사 돌다리와 가을 전각.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HISTORY & CULTURE|개산 전승과 진감선사의 창건

쌍계사는 공식 누리집에서 삼법과 대비 두 화상의 개산 이야기를 723년으로 소개한다. 육조 혜능의 정상을 모시고 작은 움막을 세운 것이 시초라는 전승이다. 눈 덮인 지리산에서 꽃이 핀 터를 찾았다는 이야기도 이 개산의 유래에 담겨 있다.

이어 사찰은 진감선사 혜소를 창건조사로 소개한다. 귀국한 진감선사가 삼법화상의 옛 절터에 가람을 조성하고 옥천사라 이름 붙였다는 내용이다. 사찰의 역사를 한 해의 창건 연도로만 압축하기보다 수행처의 시작과 가람의 형성 과정을 나눠 이해하면 전승과 역사의 결을 함께 볼 수 있다.

화개골의 차 문화도 쌍계사 여행과 이어진다. 한국관광공사는 신라 흥덕왕 때 당에서 들여온 차 씨를 지리산 남쪽 쌍계사 일원에 심었다는 내력을 소개한다. 인근 하동야생차문화박물관 등을 함께 둘러보면 사찰 주변에 차밭과 차를 다루는 공간이 많은 이유를 살펴볼 수 있다.

쌍계사 계류를 가로지르는 돌다리와 대나무 숲
하동 쌍계사 계곡 주변 대나무.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TRAVEL GUIDE|무료입장, 주차는 별도 확인

한국관광공사 안내상 쌍계사의 관람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이며 연중무휴다. 사찰 입장료는 무료다. 템플스테이와 별도 체험 프로그램은 일반 관람과 신청·비용 조건이 다르므로 구분해야 한다. 종무소 문의는 055-883-1901이다.

차량 이용자는 무료입장을 무료 주차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올해 3월에는 쌍계사 국립공원 주차장이 무료 운영에서 유료로 전환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주차장별 운영 주체와 조건이 다를 수 있으므로, 도착한 주차장의 요금표와 감면 안내를 확인해야 한다.

경내 관람은 들머리에서 주요 전각과 탑비를 둘러본 뒤 되돌아오는 방식으로 여유를 두면 된다. 금당 방향이나 주변 암자, 불일폭포까지 더하면 이동 거리와 오르막 부담이 달라진다. 사찰 구경과 별도의 산길 탐방을 하나의 짧고 쉬운 코스로 묶지 않는 편이 좋다.

단풍은 기온과 비바람, 나무의 위치에 따라 물드는 속도가 다르다. 11월의 특정 날짜를 절정으로 단정하기보다 방문 직전 현장 소식을 살펴보면 좋다. 붉은 잎이 남은 가지와 낙엽이 내려앉은 마당, 계곡의 대나무를 함께 보는 것이 쌍계사 가을 여행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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