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찬 | 티칭프로·여행레저신문 발행인

골프에서 첫 티샷은 단순한 출발이 아니다. 18홀 라운드의 첫 장면이자, 그날 골퍼의 몸 상태와 마음가짐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순간이다.

1번 홀 티박스에 서면 누구나 평소와 다른 압박을 느낀다. 연습장에서는 잘 맞던 드라이버도 갑자기 낯설어진다. 페어웨이는 실제보다 좁아 보이고, 오른쪽 OB 말뚝은 유난히 가까워 보인다. 동반자들은 조용히 지켜보고, 캐디는 공 방향을 기다린다. 그 몇 초 사이에 마음은 이미 여러 번 흔들린다.

첫 홀 티박스에서 티샷 후 피니시 자세를 취한 골퍼
첫 티샷은 멋진 출발보다 살아 있는 공을 남기는 일이 먼저다.

이 긴장은 아마추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골퍼들도 첫 티샷 앞에서는 긴장한다. 차이는 긴장을 없애느냐가 아니라, 그 긴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오래 친 사람은 안 떠는 사람이 아니다. 떨리는 마음을 스윙 안으로 집어넣는 법을 조금 더 아는 사람이다.

흥미로운 점은 골프공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구처럼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것도 아니고, 축구처럼 상대가 달려드는 것도 아니다. 공은 잔디 위에 조용히 놓여 있다. 그런데도 사람은 흔들린다. 골프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자기 마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첫 티샷의 많은 실수는 과욕에서 나온다. 멀리 보내고 싶고, 멋지게 보이고 싶고, 오늘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진다. 그 순간 그립에는 힘이 들어가고, 어깨는 올라가며, 머리는 공보다 먼저 날아가는 방향을 보려 한다. 공을 치기도 전에 결과를 보려는 마음이 스윙을 무너뜨린다.

첫 티샷의 핵심은 멋진 샷이 아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출발이다. 아직 몸은 충분히 풀리지 않았고, 골프와의 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첫 홀부터 냅다 달려들면 안 된다. 골프는 언제나 나보다 강하다. 빈틈을 보이는 순간, 그날의 흐름은 기울기 시작한다.

라운드 초반은 탐색전이다. 권투로 치면 초반 3라운드는 잽을 던지는 시간이다. 잽이 잘 들어가면 스트레이트를 준비하고, 짧은 훅이 먹히면 그때 훅으로 승부를 걸면 된다. 처음부터 큰 스윙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려 들면 먼저 무너지는 쪽은 대개 나 자신이다.

그래서 첫 티샷은 가장 자신 있는 클럽으로 해야 한다. 반드시 드라이버일 필요는 없다. 드라이버로 위세를 보이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러나 그 공이 삼천포로 빠질 확률은 높다. 첫 홀에서 필요한 것은 과시가 아니라 생존이다.

“A smart bogey on the first hole is better than a heroic triple.”
첫 홀의 영리한 보기가 영웅 같은 트리플보다 낫다.

눈감고도 칠 수 있는 클럽으로, 편안하게 목표 지점에 보내면 된다. 페어웨이 우드도 좋고, 하이브리드도 좋다. 미들아이언도 좋다. 홀 레이아웃에 따라서는 숏아이언을 잡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여주는 클럽이 아니라, 내 몸이 가장 믿는 클럽이다.

고수는 첫 홀에서 죽으면 안 되는 곳을 먼저 본다. 오른쪽이 위험하면 왼쪽을 넓게 쓰고, 몸이 덜 풀렸으면 드라이버를 내려놓는다. 그것은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다. 라운드를 관리하는 판단이다.

골프는 자존심으로 치는 운동이 아니다. 판단으로 치는 운동이다. 잘 치겠다는 욕심은 현실에서는 OB가 된다.

첫 공이 마음처럼 가지 않아도 라운드는 끝나지 않는다. 파4라면 아직 네 번의 기회가 있다. 티샷이 흔들렸다면 세컨드샷으로 수습하고, 어프로치로 붙이고, 퍼팅으로 막을 수 있다. 골프는 한 번의 실패로 끝나는 운동이 아니라, 실패 뒤에 다시 서는 법을 배우는 운동이다.

결국 골프는 한 방의 스포츠가 아니다. 살아남는 스포츠다.

“The first hole isn’t about winning. It’s about surviving.”
첫 홀은 이기는 홀이 아니라, 살아남는 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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