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예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천여리(박은빈)와 마강욱(양세종)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나란히 걷는다. 별다른 이벤트도 없이, 그저 함께 걷는다. 그 뒤로 긴 다리와 잔잔한 물, 어둠 속에서 빛나는 정자가 펼쳐진다. 경북 안동 월영교다.
tvN 토일드라마 ‘오싹한 연애’에서 박은빈과 양세종이 걸었던 이 다리가 방송 뒤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5일 방송된 9회에서는 천여리와 마강욱이 진짜 연인이 된 뒤 데이트를 즐기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데 이 다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드라마 밖으로 훨씬 멀리 뻗어간다. 월영교는 한 부부의 사랑을 기리는 뜻을 담아 지어진 다리다. 440년 전 안동에 살았던 실제 부부가 남긴 편지와 미투리 한 켤레가 그 시작점이다.
“당신 없이 나 어찌 살라 하고”
1586년, 조선 선조 때 안동에 살던 이응태(1556~1586)가 서른한 살의 나이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장례를 앞두고 아내는 집에서 한지를 펼치고 붓을 들었다.
“자네 늘 나더러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편지는 원망 같지 않은 원망으로 이어진다. 죽은 남편에게 여전히 ‘자네’라고 말을 거는 아내의 목소리, 둘이 머리가 셀 때까지 함께 살자던 약속, 그 약속이 지켜지지 못한 데 대한 서러움이 한 장의 한글 편지에 빼곡히 남았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이 편지를 이응태의 묘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한글편지로 소개한다. 400년도 더 지난 글인데 지금 읽어도 마음이 저릿한 이유는 단순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느끼는 막막함은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원이 엄마는 그 막막함을 종이에 눌러 담았다. 그 편지는 남편과 함께 무덤에 묻혔다.

412년을 기다린 편지,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삼은 미투리
편지가 다시 세상 빛을 본 것은 1998년이다. 안동 정상동 일대 택지 개발 과정에서 이응태의 묘가 발굴되면서 편지와 여러 유물이 412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가운데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은 것이 작은 미투리 한 켤레였다. 삼으로 짠 신발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삼 사이에 가늘고 검은 재료가 섞여 있었다.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원이 엄마가 병든 남편이 낫기를 바라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삼과 함께 엮어 미투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병든 남편이 다시 일어나 걷기를 바라며 아내는 자기 몸의 일부를 내어놓았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그것을 삼과 섞어 한 올 한 올 엮었다. 손끝에서 미투리 모양이 조금씩 잡혀갔을 것이다.
남편의 완쾌를 바라며 만든 미투리는 결국 남편의 무덤에 함께 들어갔다. 다시 걸어주기를 바라며 삼았던 신발이었다.
그리고 412년 동안 그 미투리는 편지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어둠 속에 머물렀다.

신지 못한 신발이, 걸을 수 있는 다리가 되다
지금 안동댐 보조호수 위에 놓인 월영교는 길이 387m, 폭 3.6m의 목책 인도교다. 안동시는 월영교를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교로 소개한다.
월영교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리는 물길을 곧게 가르기보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건너간다. 안동시는 이 다리의 모습에 원이 엄마가 머리카락으로 만든 한 켤레 미투리의 형상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387m라는 숫자가 다르게 다가온다. 한 여인이 사랑하는 사람 한 명에게 신겨주고 싶었던 신발 한 켤레가 400여 년 뒤 수많은 사람이 걸어가는 다리의 형상으로 되살아났다.
남편이 다시 걷기를 바라며 만든 미투리는 무덤 속에 남았지만, 오늘의 월영교에서는 연인과 가족, 여행객이 계속해서 발걸음을 이어간다.

달이 비치는 다리에 밤이 내려앉을 때
이름도 그냥 지어진 게 아니다. 안동관광에 따르면 안동댐 건설로 수몰된 월영대가 이곳으로 옮겨온 인연과 옛 지명인 월곡면·음달골 등을 참고하고 시민 의견을 모아 ‘월영교(月映橋)’라는 이름을 정했다. 말 그대로 달이 비치는 다리다.
이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시간은 해가 진 뒤다. 낮 동안 초록빛 산과 물, 목재 난간의 결을 보여주던 다리는 어둠이 내려오면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조명이 하나둘 켜지고, 월영정과 교각의 빛이 수면 위로 길게 번진다.
여름이라면 해가 완전히 지기 전 다리 초입에 서보는 것도 좋다. 짙은 녹음과 물빛이 남아 있는 시간부터 월영정과 난간의 조명이 살아나는 순간까지, 한 자리에서 낮과 밤이 바뀌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짙은 녹음, 겨울에는 설경이 같은 다리를 전혀 다른 장소처럼 바꾼다. 월영교가 한 번의 인증사진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다.

440년의 시차를 두고 두 연인이 같은 다리를 걷는다
‘오싹한 연애’는 귀신을 보는 천여리와 귀신을 무서워하는 마강욱이 사랑에 빠지는 오컬트 로맨스다. 9회에서는 두 사람이 연인이 된 뒤 편안한 데이트를 즐기고 서로를 지키려는 모습이 이어졌다.
드라마의 두 연인과 원이 엄마의 삶이 직접 연결돼 있는 것은 아니다. 촬영지가 그 역사적 사연 때문에 선택됐다고 단정할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장소가 만들어내는 우연은 묘하다. 2026년의 연인이 나란히 걷는 이 다리는, 1586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한 여인이 남긴 미투리의 형상을 400여 년 뒤 다리 위에 되살린 곳이기도 하다.
시간을 사이에 두고 결국 같은 마음 하나가 이곳에서 만난다. 곁에 있는 사람과 오래 함께 걷고 싶다는 마음이다.
드라마를 보고 가면 다리가 보이고, 이야기를 알고 가면 사람이 보인다
촬영지는 방송이 끝나면 빠르게 잊히곤 한다. 화면에서 예뻤던 장소를 찾아가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돌아서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월영교는 그 사진 한 장 뒤에 편지 한 장과 미투리 한 켤레, 그리고 한 여인의 마음이 남아 있는 다리다. 박은빈과 양세종이 걸었던 자리라는 사실은 이곳을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드라마를 보고 찾아가면 월영교가 보인다. 이야기를 알고 걸으면, 그 다리 위에서 한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여행정보 | 안동 월영교
- 위치: 경북 안동시 상아동·성곡동 일원
- 규모: 길이 387m, 폭 3.6m
- 이용요금: 무료
- 운영: 연중무휴
- 주요 볼거리: 월영정, 월영교 야경, 호반 산책, 조명시설
- 교통: 안동역에서 자동차 약 4.5㎞, 약 10분
- 편의시설: 공영주차장 장애인전용주차구역, 이용 가능 화장실 등
- 주변 연계: 안동시립박물관 등
- 문의: 안동시립민속박물관 054-821-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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