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운사로 가는 길, 인천강 옆 숲 위로 사람 머리 하나가 불쑥 솟아 있다. 가까워질수록 이마와 코, 입과 턱처럼 보이는 선이 또렷해진다. 차를 조금 더 움직여 각도를 바꾸면 조금 전까지 사람 얼굴이던 바위가 목이 잘록한 술병처럼 보인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의 병바위다.
높이는 약 35m다. 주변이 인천강과 들판으로 낮게 열려 있어 숫자로 보는 것보다 크게 느껴진다. 뒤편 소반바위와 전좌바위까지 시야에 들어오면 평평한 강변에 거대한 바위 몇 덩어리만 따로 솟은 지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구글에서 여행레저신문 먼저 보기병바위와 주변 14만1547㎡는 2021년 12월 6일 국가명승 ‘고창 병바위 일원’으로 지정됐다. 2023년 고창과 부안 일대가 전북 서해안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면서 병바위도 고창의 대표 지질명소가 됐다.

신선이 걷어찬 술상, 병바위와 소반바위가 됐다
옛사람들은 이 기묘한 바위에 먼저 이야기를 붙였다.
반암리의 잔칫집에 신선이 내려와 술을 마셨다. 거나하게 취한 신선이 몸을 뒤척이다 술상을 걷어찼고, 상 위의 호리병이 날아가 인천강가에 거꾸로 꽂혔다. 그 술병이 병바위가 되고 함께 날아간 소반은 소반바위가 됐다는 이야기다.
멀리서 두 바위를 번갈아 보면 전설의 모양새가 제법 그럴듯하다. 하나는 목이 잘록한 술병을 닮았고 다른 하나에는 아예 ‘소반’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고창에는 또 다른 전승도 전한다. 왜적을 쫓던 시절, 쫓기던 왜장이 술을 마시다 뒤따르는 군사를 막으려고 거대한 술병을 길에 거꾸로 세워놓고 달아났다는 이야기다. 뒤따라온 장수가 칼로 병을 내리쳤지만 중턱만 갈라졌고 군사들은 결국 다른 길로 돌아갔다고 한다.
병바위 주변은 풍수에서 금반옥호(金盤玉壺), 선인취와(仙人醉臥)와도 연결돼 왔다. 술병과 소반, 술에 취해 누운 신선의 형상을 지형에 겹쳐 본 것이다.

사람 얼굴이었다가 돌아서면 호리병
병바위는 한곳에 서서 보는 것보다 자리를 옮겨가며 보는 재미가 크다.
인천강 쪽에서는 사람 얼굴의 옆모습이 먼저 들어온다. 앞으로 튀어나온 이마 아래로 코와 입, 턱처럼 보이는 굴곡이 이어진다. 그래서 ‘고창 큰바위 얼굴’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조금 돌아서면 얼굴은 사라지고 위쪽이 넓고 중간이 잘록한 술병 모양이 나타난다.
이 모습은 최근에 붙은 해석도 아니다. 18세기 『여지도서』 흥덕편과 옛 지도에는 병바위를 호리병을 뜻하는 ‘호암(壺巖)’으로 적었다. 오래전 사람들도 이 바위를 지금과 비슷한 모습으로 바라봤다는 흔적이다.

1억5000만 년 전 화산이 남긴 바위
병바위는 약 1억5000만 년 전 백악기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선운산 일대 화산암과 관련된 지형이다.
병바위에서는 단단한 유문암과 화산재·암편이 굳은 화산력응회암이 함께 나타난다. 암석마다 풍화와 침식에 견디는 정도가 달라 주변의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은 먼저 깎였고 단단한 부분이 남았다. 위는 크고 아래는 잘록한 지금의 형태가 만들어진 이유다.
가까이 가면 바위 표면에 크고 작은 구멍이 보인다. 비와 바람에 암석이 풍화하면서 생긴 타포니다. 멀리서 보던 사람 얼굴이나 술병 실루엣과 달리 바위 표면은 거칠고 구멍이 많다.
병바위 뒤로 이어지는 소반바위와 전좌바위는 수직에 가까운 암벽을 만든다. 이 바위들과 두암초당까지 병바위 일원의 명승 경관을 이룬다.

390m 계단을 오르면 병바위를 위에서 본다
병바위 아래에서 탐방로를 따라 오르면 옥단바위 방향으로 이어진다.
병바위에서 약 390m, 보통 걸음으로 15분 안팎이다. 초반부터 데크 계단이 이어져 짧은 거리라도 평지 산책처럼 걷기는 어렵다. 여름 한낮에는 그늘이 있어도 오르막에서 땀이 제법 난다.
높이를 조금 올리면 병바위 뒤로 인천강이 휘고 반암리 들판과 마을이 펼쳐진다. 아래에서는 숲 사이로 얼굴만 내민 것 같던 병바위가 이쪽에서는 평평한 강변에 홀로 남은 거대한 암주라는 사실이 더 분명하게 보인다.

전좌바위 아래 바위 안쪽에 들어선 두암초당
탐방로를 계속 걸으면 전좌바위 아래 두암초당에 닿는다.
바위가 안쪽으로 들어간 자리에 기둥과 마루, 온돌방을 두었다. 건물 뒤편은 전좌바위 암벽이고 정면으로는 인천강과 영모마을 쪽이 열린다.
두암초당은 조선 중기 고창의 유학자 호암 변성온과 동생 인천 변성진 형제가 만년에 머물며 학문을 닦던 곳이다. 변성진은 형을 따라 김인후와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참봉에 제수됐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은 채 고향에서 은거했다.
초당이 처음 언제 세워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형제의 5대손 변동빈이 1815년 중건했고, 건물이 유실된 뒤 1954년 현재의 건물을 다시 세웠다. 가운데 작은 온돌방 하나를 두고 양쪽에 마루를 놓은 소박한 구조다.
마루 앞에서는 영모마을과 인천강 너머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거대한 암벽 바로 아래에 작은 초당을 들인 위치 때문에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 섰을 때의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탄금바위에는 김소희 명창 이야기가 전한다
두암초당 아래쪽에는 탄금바위가 있다. 가야금바위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고창에는 만정 김소희 명창이 젊은 시절 이 일대에서 소리를 닦고 득음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김소희는 훗날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예능보유자가 된 20세기 대표 명창이다.
병바위에서 시작한 짧은 길에 신선 설화와 조선 유학자의 초당, 판소리 명창의 이야기가 차례로 이어진다.
병바위에서 두암초당까지 800m, 한 바퀴는 약 1.8km
병바위에서 옥단바위를 거쳐 두암초당까지는 약 800m다. 병바위에서 옥단바위까지 약 390m에 15분 안팎, 옥단바위에서 두암초당까지 약 360m에 다시 10분 정도를 잡는다. 계단과 오르막이 섞여 있고 중간에 사진을 찍으면 30분 안팎이 걸린다.
탄금바위까지 둘러보고 병바위 쪽으로 돌아오는 전체 동선은 약 1.8km다. 실제 답사 기준으로 1시간 10분 안팎, 천천히 둘러보면 1시간 20분 정도 잡으면 된다.
두암초당만 보고 싶다면 아산초등학교와 영모정 쪽에서 짧게 접근할 수도 있다. 학교 시설과 주차장 이용 여부는 수업일과 시간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현장 확인이 필요하다.
전좌바위 정상으로 직접 올라가는 길은 별개다. 일부 구간에는 사다리와 밧줄을 이용해야 하는 곳이 있어 일반 관광객이라면 정비된 탐방로와 두암초당까지 걷는 편이 안전하다.
선운사 가는 길, 20분 볼지 70분 걸을지
병바위는 고창읍에서 선운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고창읍에서 아산면을 지나 약 15km 들어가면 반암리 영모정마을 부근에서 바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병바위 주변만 둘러보면 20~30분이면 된다. 옥단바위와 두암초당, 탄금바위까지 걷는다면 1시간 남짓 더 잡으면 된다.
짧은 거리 안에 백악기 화산지형과 신선의 술병 설화, 조선 유학자의 초당, 김소희 명창의 이야기가 함께 남아 있다. 선운사와 묶어 하루 동선을 잡기에도 어렵지 않다.
여행정보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산16 일원
병바위 높이 약 35m
국가유산 국가명승 ‘고창 병바위 일원’, 2021년 12월 6일 지정
지정 면적 141,547㎡
지질 가치 전북 서해안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명소
대표 동선 병바위 → 옥단바위 → 두암초당 → 탄금바위 → 병바위
탐방 거리 약 1.8km
예상 소요시간 약 1시간~1시간 20분
병바위→옥단바위 약 390m, 15분 안팎
병바위→두암초당 약 800m, 30분 안팎
난이도 정비된 탐방로 기준 초중급, 데크 계단과 오르막 있음
주의 구간 전좌바위 정상 방향 일부 사다리·밧줄 구간은 일반 관광객에게 권하지 않음
이용요금 병바위·두암초당 무료
운영 야외 탐방 가능
주차 병바위 일대 조성 주차공간 이용, 현장 안내 확인
두암초당 단독 방문 아산초등학교·영모정 방향에서 짧게 접근 가능, 학교 주차 이용 여부 확인 필요
화장실·편의시설 병바위 탐방안내소·지질정원 일대 현장 확인
추천 체류시간 병바위만 20~30분, 탐방로 포함 1시간 30분 안팎
추천 계절 봄·가을, 여름은 오전이나 늦은 오후
연계 코스 선운사·도솔암·선운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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