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서 서쪽 70㎞, 숲길 끝에 114년 흰 등대…서해 먼바다 어청도

전북 최서단 작은 섬, U자형 항구에서 2.1㎞ 등대길로…8월엔 땀범벅이어도 능선에 서면 서해가 한꺼번에 열린다

군산 어청도 바다 앞 흰색 어청도등대
서해를 바라보고 선 어청도등대. 1912년 처음 불을 밝혔다.

군산항을 떠난 배가 서해 바닷길을 두 시간 넘게 달리면 어청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군산에서 약 70㎞ 떨어진 전북특별자치도 최서단의 작은 섬이다. 항구와 마을을 지나 2.1㎞ 등대길을 오르면 숲 사이로 보이던 바다가 한꺼번에 열리고, 그 끝에는 114년 된 흰 등대가 서 있다.

육지는 아스라이 멀어지고 어느새 사방이 바다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면 산줄기에 둘러싸인 작은 항구와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청도는 군산 앞바다 섬 가운데서도 서쪽 먼바다에 떨어져 있다. 섬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든 U자형 항구를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바람이 거세지면 배들이 몸을 피하던 천연의 피항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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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맑기가 거울과 같아 어청도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작은 항구와 마을 뒤로 산이 솟고, 능선을 넘으면 서해가 사방으로 열린다. 섬 서쪽 끝에는 1912년 처음 불을 밝힌 어청도등대가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배에서 내린 뒤부터는 풍경이 빠르게 바뀐다. 항구와 작은 마을을 지나 숲으로 들어서고, 능선에 올라 바다를 만난 뒤 다시 등대까지 걷는다. 배를 타고 먼바다 섬으로 들어가는 설렘과 걷는 재미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어청도 선착장에 내려 마을로 향하는 여행객
여객선에서 내려 선착장 연결 통로를 따라 어청도 마을로 들어간다.

2.1㎞ 등대길, 숲 사이로 보이던 바다가 한꺼번에 열린다

어청도를 처음 찾는다면 등대길부터 걷는 것이 좋다.

선착장에서 마을과 치동묘, 어청초등학교 사랑나무, 팔각정쉼터를 지나 어청도등대로 이어지는 2.1㎞ 길이다. 안내 시간은 1시간10분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숲길과 오르막이 이어진다.

8월 초 한낮의 무더위에 등줄기는 금세 땀으로 젖는다. 그늘이 나타나면 자연스레 걸음도 조금 느려진다. 그래도 능선에 올라서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숲 사이로 힐끗힐끗 보이던 바다가 어느 순간 한꺼번에 시야를 채운다. 장대하다. 발아래로 어청도항과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산줄기 너머로 짙푸른 서해와 수평선이 길게 뻗는다.

조금 전까지 버거웠던 오르막과 더위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린다. 절로 걸음을 멈추게 되는 풍경이다.

길을 조금 옮길 때마다 바다의 모습도 달라진다. 나무 사이로 사라졌던 항구가 다시 나타나고, 다른 능선에 올라서면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해안이 열린다. 작은 섬인데도 걷는 위치에 따라 풍경이 계속 바뀌는 재미가 있다.

한여름에도 이 길을 걷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월에도 이 정도라면 햇볕이 한풀 꺾이고 바닷바람이 선선해지는 가을에는 걷는 맛이 한층 더 좋아지겠다. 서둘러 그늘을 찾지 않아도 되고 전망이 좋은 곳에서 한참 바다를 바라볼 여유도 생긴다.

어청도 등대길 오르막을 걷는 여행객들
바위 절개지와 초록 숲 사이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어청도 등대길.

중국 제나라 장군을 모신 치동묘

등대로 향하는 길에는 어청도가 품고 있는 오래된 이야기도 만난다.

마을의 치동묘에는 중국 제나라 전횡 장군을 모시고 있다. 한나라 고조 유방이 중국을 통일한 뒤 전횡이 추종자들과 바다로 나와 어청도까지 왔다는 설화가 섬에 남아 있다.

전횡이 실제 어청도에 정착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서해안 여러 섬에서는 오래전부터 그를 바다의 안전과 풍어를 지켜주는 인물로 받들었다. 어청도에서도 전횡을 모시는 제례가 이어졌고 치동묘는 군산시 향토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당산 정상에는 봉수대도 있다. 바다를 감시하고 위급한 상황을 육지로 알리던 곳이다.

등대를 찾아 걷기 시작한 길에서 고대 중국과 얽힌 섬의 설화, 바다를 지키던 봉수대, 근대의 등대까지 차례로 만난다. 걷는 길이 짧아도 이야기는 제법 길다.

어청도 능선에서 내려다본 U자형 어청도항과 서해
능선에 오르면 초록 산줄기 사이로 어청도항과 서해가 한눈에 펼쳐진다.

팔각정을 지나면 기다렸던 흰 등대가 나타난다

팔각정쉼터를 지나 다시 숲길을 따라간다.

그리고 길 끝에서 흰 등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초록빛 풀밭과 해송 사이로 하얀 등대가 서 있고 꼭대기에는 붉은 등롱이 얹혀 있다. 나지막한 돌담 뒤로는 푸른 바다가 곧장 이어진다.

멀리서 사진으로 보던 풍경과 실제로 마주하는 모습은 조금 다르다.

등대 주변에는 시야를 막는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다. 바다는 생각보다 가까이 붙어 있고 흰 등탑 뒤로 곧바로 수평선이 이어진다. 넓은 바다 한가운데 작은 섬까지 들어와 다시 산길을 걸었다는 느낌도 그제야 선명해진다.

사진 몇 장만 찍고 돌아서기에는 아깝다. 등대 앞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청도등대는 1912년 3월 처음 불을 밝혔다. 114년이 지난 지금도 서해를 오가는 배들의 길을 밝히고 있다.

높이 14.7m의 백색 원형 콘크리트 등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출입문 위에는 삼각형 지붕을 달았고 등탑 상부에는 한옥의 서까래를 닮은 장식을 넣었다. 흰 등탑과 붉은 등롱, 돌담과 해송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도 어청도등대만의 인상을 만든다.

2008년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됐다.

푸른 바다와 초록빛 풀밭 사이에 홀로 서 있는 흰 등대. 두 시간 넘게 배를 타고 다시 숲길과 능선을 지나온 여행의 마지막에 기다리는 장면으로 이보다 더 어청도다운 풍경도 드물다.

군산 어청도 헨리 아펜젤러 순직기념 표지석
팔각정 부근에 세워진 헨리 아펜젤러 순직기념 표지석.

124년 전 아펜젤러가 숨진 바다

팔각정 부근에는 헨리 아펜젤러 순직기념 표지석도 서 있다.

배재학당과 정동제일교회를 세운 아펜젤러는 1902년 6월11일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제물포에서 구마가와마루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그날 밤 어청도 인근 해상에서 구마가와마루와 기소가와마루가 충돌했고 배는 침몰했다. 승객 46명 가운데 18명이 숨졌으며 아펜젤러도 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124년이 흐른 올해 8월에는 어청도 인근 해저에서 구마가와마루로 추정되는 대형 물체가 확인되면서 이 사고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심 약 45m 지점으로, 어군탐지기에도 선박 형태의 물체가 잡혔다.

아직 구마가와마루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실제 침몰선인지 확인하려면 수중 조사가 필요하다.

등대로 향하다 만나는 작은 표지석 하나가 120여 년 전 이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이어진다. 모르고 지나갈 때와 알고 바라볼 때 바다의 모습도 조금 달라진다.

바다에서 바라본 군산 어청도항 전경
바다에서 바라본 어청도항. 산줄기가 항구와 마을을 감싸고 있다.

등대만 보고 돌아서기 아까운 섬

어청도에는 등대길 외에도 세 개의 걷기 코스가 있다.

서방파제에서 선착장과 마을을 지나 해안을 걷는 해안산책길은 1.65㎞, 약 55분이다. 팔각정에서 안산과 검산봉 쪽으로 이어지는 안산넘길은 2.67㎞, 약 1시간30분. 치동묘에서 봉수대와 당산을 지나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전횡장군길은 2.2㎞, 약 1시간15분이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등대만 왕복하기보다 능선길이나 해안산책길을 조금 보태도 좋다.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항구를 내려다보는 각도가 계속 바뀐다. 한쪽 산길에서 사라졌던 바다가 다른 쪽 능선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해안 가까이 내려가면 조금 전 산 위에서 내려다보던 바다와 눈높이가 가까워진다.

당일 여행이라면 돌아가는 배 시간을 먼저 확인해 두고 그 안에서 코스를 고르면 된다. 한여름에는 물과 모자를 챙기는 것이 좋고, 가을에는 능선길까지 조금 더 넉넉하게 걸어볼 만하다.

군산 초원사진관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군산 초원사진관.

새벽 은파호수공원, 아침에는 초원사진관

어청도로 향하는 일정에 군산 시내를 함께 넣으면 여행이 더 풍성해진다.

이른 새벽 군산에 도착했다면 은파호수공원부터 걸어볼 수 있다. 호수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고 물빛다리가 수면 위를 가로지른다.

아직 사람들이 몰리기 전 호숫가를 걷는 아침은 한결 여유롭다. 잔잔한 물 위로 다리가 길게 이어지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주변 풍경도 서서히 밝아진다. 먼바다 섬으로 떠나기 전 하루를 시작하기 좋은 길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는 군산 원도심으로 옮긴다.

근대 건축물이 남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초원사진관이 나온다. 1998년 개봉한 한석규·심은하 주연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다.

사진관 앞에는 영화 속 주차단속 차량도 놓여 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다림이 타고 다니던 차를 발견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내부에는 영화와 관련한 사진과 소품들이 남아 있어 하나씩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오는 29일에는 초원사진관 일대에서 ‘군산 8월의 크리스마스 골목길 축제’가 열린다. 추억 3컷 셀프사진관과 레트로 게임존, 프리마켓, 공연이 마련되고 제5회 군산 8월의 크리스마스 단편영화제 시상식도 함께 진행된다.

새벽에는 호숫가를 걷고, 아침에는 오래된 골목과 영화 촬영지를 둘러본다. 이어 군산항에서 배를 타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도심의 호수와 근대 골목에서 시작한 하루가 서해 먼바다 작은 섬과 114년 된 등대로 이어진다. 군산과 어청도를 한 일정으로 묶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군산 초원사진관 앞 8월의 크리스마스 주차단속 차량
초원사진관 앞에 전시된 영화 속 주차단속 차량.

9월5일에는 ‘어청도 낭만여행’

어청도는 9월에도 여행객을 맞는다.

9월5일에는 ‘어청도 낭만여행’이 열린다. 여객선 안에서는 군산 열두섬길 토크콘서트와 퀴즈, 일몰 감상이 진행되고 어청도에서는 트레킹과 사진 촬영, 관광명소 인증 프로그램 등이 이어진다. 100명 규모로 마련된 행사다.

한여름 어청도를 걷고 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른 장면들이 남는다.

숲 사이로 힐끗힐끗 따라오던 푸른 바다, 능선에 올라서는 순간 발아래로 펼쳐지던 어청도항, 초록빛 풀밭 너머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던 흰 등대다.

군산에서 서쪽으로 약 70㎞.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작은 항구에 내리고, 마을과 숲을 지나 능선을 넘어 등대까지 걷는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어청도 여행이다.

그리고 볕이 한풀 꺾이는 가을이면 이 길은 더욱 걷고 싶어질 것 같다.

여행 전 확인

어청도 여객선은 기상과 해상 상태에 따라 운항시간이 달라지거나 결항할 수 있다. 당일 여행은 돌아오는 배 시간을 기준으로 걷기 코스를 정하는 것이 좋다. 식당과 민박은 섬 사정에 따라 운영 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하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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