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배론성지, 1801년 토굴과 국내 최초 신학교가 한 골짜기에 남았다

제천 배론성지는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 안에 황사영 백서 토굴, 국내 최초 신학교로 평가되는 성요셉 신학교, 최양업 신부 묘소가 함께 남아 있는 곳이다. 종교 유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기엔 연못과 다리, 정원과 단풍길의 풍경도 좋다. 신앙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 근대사와 천주교 박해의 흔적을 천천히 걸으며 읽을 수 있는 역사 산책지로, 가을이면 사진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산으로 둘러싸인 제천 배론성지와 성당, 정원 전경
제천 배론성지는 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 안에 성당과 정원, 역사 유적이 길게 이어지는 공간이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여행레저신문 ㅣ 김미래기자

배론성지는 제천 봉양읍 깊은 골짜기 안에 있다. ‘배론’이라는 이름은 주변 지형이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는 데서 나왔다. 입구는 좁고 안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선시대 박해를 피해 들어온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루기에 적합한 지형이었다.

지금의 배론성지는 성당 하나를 보는 장소가 아니다. 황사영 백서 토굴과 성요셉 신학교, 최양업 신부 관련 유적, 정원과 연못이 골짜기 안에 이어진다.

1801년 황사영은 이 골짜기 토굴에 숨어 있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배론으로 피신해 옹기굴로 위장한 토굴에서 약 8개월을 지냈다. 이곳에서 북경교구장에게 보낼 장문의 편지, 황사영 백서를 작성했다.

제천 배론성지 연못과 나무다리, 가을 단풍
연못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와 붉고 노란 단풍은 배론성지에서 가장 오래 발길을 붙잡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백서에는 박해 상황과 순교자 기록, 교회 재건과 신앙 자유를 위한 방안이 담겼다. 그러나 외부 세력의 개입을 요청하는 내용도 포함돼 조선 조정에서는 중대한 역모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황사영은 결국 체포돼 처형됐다.

그 토굴 옆에서 한국 최초의 신학교가 시작됐다

1855년 배론에는 성요셉 신학교가 세워졌다. 국내 최초 신학교로 평가되는 곳으로 신학과 철학, 라틴어를 비롯한 서양 학문을 가르쳤다.

박해가 이어지면서 약 11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한국 천주교사와 근대 교육사의 중요한 공간으로 남았다.

제천 배론성지 십자가상과 연못, 정원 풍경
십자가상과 연못, 낮은 정원이 산자락 아래 겹쳐지면서 배론성지는 종교 공간을 넘어 조용한 산책 정원처럼 느껴진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최양업 신부는 평생을 걸었고 마지막에는 이 산에 묻혔다

최양업 신부는 김대건 신부에 이어 한국인으로 두 번째 사제 서품을 받은 인물이다. 박해 시기 전국의 신자 공동체를 찾아 오랜 기간 사목했고 과로와 병으로 선종했다.

배론성지에는 그의 묘소와 기념성당, 관련 기념공간이 남아 있어 성지의 역사를 또 다른 시대까지 이어준다.

종교 유적만 생각하고 왔다가 연못에서 오래 머문다

배론성지에서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장소 가운데 하나는 연못과 작은 다리다. 봄에는 연두빛, 여름에는 짙은 녹음, 가을에는 붉고 노란 단풍이 물가를 둘러싼다.

제천 배론성지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과 가을 숲
현대적인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은 주변 산과 넓은 잔디, 계절 숲 사이에서 기존 성지 건물과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든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바람이 잦아든 날에는 나무와 다리가 수면에 그대로 반영된다. 성지의 엄숙한 역사와 전혀 다른 부드러운 장면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성당 건물이 유난히 현대적으로 보이는 이유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은 주변의 전통적인 건물과 달리 밝은 콘크리트 벽과 높은 수직 구조를 갖고 있다. 1999년 최양업 신부 서품 150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넓은 잔디와 산을 함께 넣어 바라보면 현대적인 성당과 깊은 골짜기의 대비가 선명해진다.

제천 배론성지 연못과 다리, 십자가상이 어우러진 정원
배론성지 안쪽 정원에서는 연못과 다리, 십자가상, 주변 숲이 한 장면에 겹쳐져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만들어진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신자가 아니어도 들어갈 수 있지만 유원지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

배론성지는 일반 방문객도 역사 유적과 정원을 둘러볼 수 있다. 다만 실제 기도와 미사가 이어지는 성지인 만큼 정숙한 방문이 기본이다.

반려동물 출입은 금지돼 있으며 큰 소리, 음주나 취사 등 성지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30분이면 짧다, 역사까지 보려면 한 시간 반은 두는 편이 낫다

연못과 성당만 보면 30~40분에도 가능하지만 황사영 백서 토굴과 성요셉 신학교까지 보려면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가 적당하다.

배론성지 글씨가 새겨진 제천 배론성지 입구 표지석
배론성지 입구의 표지석에는 ‘배론성지’ 글씨가 그대로 새겨져 있으며, 이곳부터 깊은 산골짜기 안으로 성지 동선이 이어진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최양업 신부 묘소까지 올라가거나 해설을 들으면 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방문한다면 천천히 역사를 읽으며 걷는 편이 좋다.

여행정보

위치: 충북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핵심 볼거리: 황사영 백서 토굴, 성요셉 신학교, 최양업 신부 관련 유적, 기념성당, 연못과 정원

추천 동선: 입구 표지석 → 연못과 정원 →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 → 황사영 백서 토굴 → 성요셉 신학교

추천 체류시간: 핵심만 40분~1시간, 역사 유적까지 1시간~1시간30분

체감 난이도: 주요 정원 구간은 쉬운 편

추천 계절: 사계절 가능, 특히 가을 단풍철

추천 대상: 역사여행, 가족여행, 부모님 동반 여행, 사진여행, 조용한 산책

개방시간: 공식 홈페이지 내 페이지별 표기가 달라 늦은 오후 방문 전 확인 권장

대중교통: 제천버스터미널에서 852번 버스 운행, 당일 시간표 확인 권장

주의사항: 정숙 유지, 반려동물 출입 금지, 음주와 취사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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