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레저신문 ㅣ 김미래기자
양평 용문사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대웅전보다 은행나무다. 국가유산청은 이 나무의 수령을 약 1,100년으로 추정하고 높이를 42m로 기록한다.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거목은 용문사의 건물보다 오랜 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지켜온 존재다.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일본군이 의병의 근거지였던 용문사를 불태웠지만 은행나무는 살아남았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이 아니라 1907년 정미의병의 불길이었다
일부 오래된 여행글에는 임진왜란 당시 용문사 은행나무가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남아 있지만 공식자료가 전하는 화재는 1907년이다.
당시 용문사가 의병 근거지로 이용되자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고 사찰은 큰 피해를 입었다.
은행나무는 이 화재에서 살아남았다고 전해지며 이후에도 용문사 입구를 지키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42m 높이는 가까이서보다 뒤로 물러나야 실감난다
국가유산청 기준 은행나무 높이는 42m다.
나무 바로 아래에서는 줄기와 가지가 화면 밖으로 잘릴 만큼 크다.
석탑이나 전각을 앞에 두고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전체를 바라보면 은행나무의 크기가 훨씬 선명하게 드러난다.
동양 최대라는 표현보다 국가유산 기준 숫자가 정확하다
과거 일부 관광자료에는 높이 60m라는 기록도 남아 있지만 현재 국가유산 관리자료는 42m를 사용한다.
1991년 은행나무 보호시술 기록에도 수령 약 1,100살과 높이 42m가 명시돼 있다.
따라서 홍보성 최고 기록보다 현재 공식관리 수치를 기준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은행나무와 용문사의 역사가 거의 같은 시대에서 시작된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인 913년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다른 설에서는 경순왕이 직접 행차해 사찰을 세웠다고 한다.
은행나무 역시 약 1,100년으로 추정돼 사찰의 창건 전승과 거의 비슷한 시간을 살아온 셈이다.
마의태자와 의상대사 두 전설이 한 나무에 겹친다
신라가 망한 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의상대사가 짚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고 그 지팡이가 뿌리를 내려 은행나무가 됐다는 전승도 있다.
역사적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오랜 세월 이 나무를 특별하게 바라본 사람들의 기억을 보여준다.
세종 때는 나무가 당상관 품계를 받았다고 전한다
국가유산청은 용문사 은행나무가 조선 세종 때 당상관에 해당하는 품계를 받았다고 소개한다.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소리를 냈다는 이야기와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가 부러졌다는 전승도 남아 있다.
나무를 단순한 식물보다 사찰과 마을을 지키는 존재로 바라봤던 옛 사람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일주문까지 들어가는 숲길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용문산관광지에서 사찰 쪽으로 이동하면 숲이 점점 짙어지고 계곡 물소리가 가까워진다.
일주문을 지나 다시 걷다 보면 사찰 전각과 은행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차에서 내려 바로 문화재를 보는 방식보다 접근 과정이 길어 용문산의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지금 보는 대웅전이 천년 전 건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용문사는 1907년 화재 이후 1909년부터 다시 건물을 세웠다.
1938년 대웅전과 여러 전각을 중건했고 1982년 이후에도 대웅전과 관음전, 지장전, 산령각, 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했다.
따라서 천년사찰이라는 표현은 건물 한 채가 천년 동안 남았다는 뜻보다 사찰의 역사와 전통이 이어져 왔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맞다.
대웅전과 은행나무를 같은 화면에 보면 시간의 차이가 보인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지장전, 산령각, 칠성각, 요사채, 일주문 등이 자리한다.
건물은 여러 시대 중건을 거쳤지만 은행나무는 같은 자리에서 1,100년 가까운 시간을 이어왔다.
용문사 여행이 건축보다 나무 한 그루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무는 이유다.

여름에는 노란 은행잎 대신 초록 숲 전체를 본다
8월에는 은행나무가 짙은 초록 수관을 만들고 용문산 숲도 녹음으로 가득하다.
사찰로 이어지는 숲길과 계곡 그늘이 더위를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가을 사진만 기대하기보다 여름에는 오래된 나무와 산중 사찰의 그늘을 보는 여행으로 접근하는 편이 맞다.
가을에는 은행나무 하나가 경내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시기에는 은행나무가 용문사의 확실한 주인공이 된다.
나무 아래와 석탑 주변까지 노란색이 번지면서 전각과 산의 색도 함께 달라 보인다.
단풍 절정은 기온에 따라 달라지므로 방문 직전 현지 상황을 확인하는 편이 좋다.
부모님과 함께라면 용문사까지만 보고 돌아와도 충분하다
용문사 이후 용문산 방향으로 계속 올라가면 본격적인 산행 구간으로 바뀐다.
관광단지에서 숲길을 따라 용문사까지 이동해 은행나무와 경내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핵심은 충분히 볼 수 있다.
아이와 시니어가 함께한다면 산행보다 사찰 중심으로 체류시간을 잡는 편이 여유롭다.

주차는 용문산관광지를 기준으로 잡으면 동선이 단순하다
양평군 공식 관광정보는 용문산관광지 주차요금을 경차 1,500원, 소형차 3,000원, 중대형차 5,000원으로 안내한다.
차를 세운 뒤 숲길과 일주문을 거쳐 용문사로 이동하면 된다.
가을 단풍철과 주말에는 방문객이 늘 수 있으므로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편이 동선상 유리하다.
2026년 현재 템플스테이도 실제 운영 중이다
용문사는 현재 주중 휴식형 나를 쉬어가다와 주말 체험형 나를 챙기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공식 예약페이지에는 두 프로그램 모두 2026년 10월 1일까지 운영 일정이 공개돼 있다.
사찰을 잠깐 보는 여행에서 벗어나 예불과 공양, 명상과 휴식을 포함한 1박 산사 체험으로 확장할 수 있다.
종교공간보다 역사와 숲을 함께 보는 장소로 접근해도 된다
용문사는 법당 참배만을 목적으로 찾는 장소가 아니다.
은행나무와 숲길, 계곡, 건축, 국가유산을 살펴보는 가족여행지로도 충분하다.
천년 거목을 중심으로 역사를 설명하면 아이와 함께 찾아도 장소의 성격을 이해하기 쉽다.
결국 용문사의 시간은 건물보다 은행나무가 더 오래 기억하고 있다
사찰은 여러 번 중창되고 화재를 겪었으며 다시 세워졌다.
은행나무는 약 1,10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그 변화를 지켜온 것으로 추정된다.
양평 용문사는 천년사찰을 보는 여행이면서 사찰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온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는 여행이다.
여행정보
장소 양평 용문사
주소 경기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은행나무 약 1,100년 추정, 높이 42m, 천연기념물
역사 포인트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일본군 방화로 용문사 소실, 은행나무는 살아남았다고 전함
주요 공간 대웅전, 관음전, 지장전, 산령각, 칠성각, 일주문, 다원
추천 동선 용문산관광지 → 숲길 → 일주문 → 은행나무 → 용문사 경내 → 원점회귀
난이도 쉬움~보통
추천 체류시간 용문사 중심 약 1시간30분, 관광단지 포함 약 2시간
주차요금 경차 1,500원, 소형차 3,000원, 중대형차 5,000원
템플스테이 2026년 현재 주중 휴식형·주말 체험형 운영
문의 템플스테이 031-775-5797
주의사항 사찰 이후 용문산 방향은 산행 구간으로 이어져 가족 동반 시 체력에 맞춰 범위를 정하는 것이 좋다.
여행레저신문 Copyrights ⓒ The Travel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