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미식에서 트러플은 맛보다 향으로 먼저 계절을 알린다. 접시 위에 얇게 저민 몇 조각만 올라가도 버터와 치즈, 육류의 풍미가 다른 결로 움직인다.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칼리노(Boccalino)가 이 향을 중심에 둔 ‘트러플 테이스팅 코스’를 11월 19일까지 디너 한정으로 선보인다.
포시즌스 보칼리노의 이번 메뉴는 블랙 슈에서 시작해 에그 크로켓, 대구 라비올리, 그릴드 호주산 등심, 레몬 포셋으로 이어지는 5코스다. 시칠리아 출신 헤드 셰프 이반 스파다로(Ivan Spadaro)가 트러플을 한 접시에 몰아넣기보다 크림과 치즈, 생선, 육류에 단계적으로 겹쳐 향의 강도를 조절했다.

대지의 향 ‘타르투포’…첫 접시는 가볍게
트러플은 나무 뿌리와 공생하며 땅속에서 자라는 버섯류다. 이탈리아어 ‘타르투포(tartufo)’는 ‘땅의 덩이’를 뜻하는 라틴어 계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화이트 트러플은 피에몬테 알바가, 검은 트러플은 움브리아의 노르차와 스폴레토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재배 자체가 불가능한 식재료는 아니지만 숙주 수목과 토양, 기후 조건 관리가 까다롭고 수확 시기를 예측하기 어려워 가치가 높다. 산지에서는 훈련된 개가 땅속 향을 찾아 수확을 돕는다.
코스는 헤이즐넛 트러플 크림과 블랙 트러플 파우더를 넣은 블랙 슈로 문을 연다. 이어 에그 크로켓에 감자와 콩테 치즈를 섞은 퓌레와 신선한 트러플을 곁들인다. 트러플 향을 처음부터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 고소한 지방감에 얹어 다음 접시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13세기 말 제노바 기록에 남은 라비올리
프리모는 대구 라비올리다. 라비올리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속 채운 파스타로, 이탈리아 백과사전 트레카니는 가장 이른 확실한 용례 가운데 하나로 13세기 말~14세기 초 제노바 지역의 기록을 든다. 14세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도 마카로니와 함께 라비올리가 등장한다. ‘제노바에서 시작됐다’고 단정하기보다 중세 리구리아 지역에서 이미 라비올리가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보칼리노는 이 오래된 형식에 대구를 채웠다. 세이지 버터와 파르메산 소스에 신선한 트러플을 더해 담백한 흰살생선과 버터, 치즈의 지방감 사이로 향이 퍼지게 했다. 전통의 모양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현대 호텔 다이닝의 균형으로 다시 조립한 접시다. 이탈리아식 코스에서 프리모는 파스타나 리소토처럼 메인 육류 전에 나오는 중요한 단계인데, 이 접시가 트러플의 향과 메인의 육향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등심의 육향 뒤에 레몬 포셋
메인은 그릴에 구운 호주산 등심이다. 진한 육즙 소스와 구운 채소, 신선한 트러플을 곁들인다. 추가 금액을 내면 한우 1++ 등심으로 변경할 수 있다. 메뉴의 무게가 가장 높아지는 지점이지만 마지막 디저트에서는 방향을 바꾼다.
레몬 포셋에 레몬 딜 젤리와 라임 허니 콤포트를 더해 코스를 마무리한다. 포셋은 중세 영국에서 우유나 크림에 술을 섞어 마시던 음료에서 발전한 디저트로 알려져 있어 이탈리아 전통 디저트와는 계보가 다르다. 보칼리노는 이 시트러스 계열 디저트를 마지막에 배치해 버터와 치즈, 육류, 트러플이 남긴 무게를 산미로 정리한다. 커피 또는 티도 함께 제공된다.
시칠리아 셰프가 서울에서 풀어낸 가을
이반 스파다로 헤드 셰프가 이끄는 보칼리노는 오픈 키친과 통창, 대리석 벽과 금속 장식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이번 코스는 값비싼 식재료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기보다 블랙 슈의 가벼운 향에서 라비올리와 등심으로 깊이를 높인 뒤 레몬 포셋으로 입맛을 환기하는 흐름에 초점을 맞췄다. 별도의 와인 페어링도 마련돼 음식의 향과 산미, 육향을 잔마다 다르게 맞춰볼 수 있다.
트러플 테이스팅 코스는 8월 31일부터 11월 19일까지 디너에 한해 운영한다. 가격은 1인 17만원이며 한우 1++ 등심 변경에는 추가 요금이 붙는다. 예약과 문의는 포시즌스 호텔 서울 레스토랑 예약과(02-6388-5500) 또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중세 파스타의 기록과 이탈리아의 가을 식재료, 영국계 디저트까지 한 식탁에 모았다는 점에서 이번 코스는 호텔 프로모션을 넘어 음식문화의 시간과 지역을 함께 맛보는 저녁에 가깝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 보칼리노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2026년 가을 시즌에는 트러플을 중심으로 한 5코스 디너를 11월 19일까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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