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설악산을 가본 사람들은 안다. 산을 오르는 고통보다 더 끔찍한 것이 10월 국립공원공단 예약창 앞에서 벌어지는 ‘광클 전쟁’이라는 것을.
초 단위로 예약 경쟁이 벌어지고 눈 깜짝할 새 원하는 시간대가 사라지는 단풍철, 설악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입성하기 어려운 산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런데 지금, 이 살벌한 전쟁을 비웃듯 아무런 예약도 복잡한 본인 인증도 없이 설악산 최고의 절경 한가운데로 그냥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다.
정확히 9월 30일까지다. 예약제 미운영 기간에는 정해진 입산시간 안에 흘림골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면 별도 예약 없이 탐방할 수 있다.
10월 1일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국립공원공단이 흘림골 구간을 하루 5000명 탐방예약제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2015년 낙석 사고 이후 약 7년 동안 폐쇄됐다 다시 열린 남설악의 비경, 흘림골. 등선대와 십이폭포를 지나 주전골까지 이어지는 6.2km 코스를 예약 없이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쉬운 샛길’은 착각…첫 1시간 여심폭포·등선대 된비알
흘림골탐방지원센터에서 용소폭포삼거리까지 이어지는 3.1km를 평탄한 숲 산책로쯤으로 가볍게 여겼다가는 초반부터 낭패를 본다.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자마자 산길은 거칠게 고도를 높인다. 숲 사이로 계곡물 소리가 들리지만 발밑에는 돌계단과 가파른 데크 계단이 계속 이어진다.
출발 후 만나는 여심폭포를 지나면서 경사는 한층 더 사나워진다. 좁은 바위 틈에서 길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나면 등선대를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이 기다린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인 등선대는 해발 1,002m. 초반 1시간 안팎은 흘림골 전체에서 가장 숨이 차는 구간으로 꼽힌다.
그러나 등선대에 올라서면 칠형제봉과 한계령 능선, 남설악의 기암괴석이 겹겹이 펼쳐진다. 운무가 걷히는 순간에는 암봉들이 한꺼번에 모습을 드러낸다.

거친 암릉에서 평온한 물길로…십이폭포 지나 주전골
등선대를 지나면 트레킹의 성격이 달라진다. 가파르게 올랐던 길은 하행으로 바뀌고 기암절벽 사이에 설치된 데크를 따라 계곡 쪽으로 내려선다.
등선폭포를 지나 십이폭포의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 탐방예약제 대상 구간의 끝인 용소폭포삼거리에 닿는다. 흘림골탐방지원센터에서 이곳까지 약 3.1km다.
여기서 산행을 끝내기보다 용소폭포를 거쳐 주전골로 이어 걷는 것이 일반적인 동선이다.
흘림골의 날카로운 암벽 지형과 달리 주전골은 계곡을 끼고 비교적 완만한 탐방로가 이어진다. 선녀탕과 성국사를 지나 오색약수터까지 연결하면 전체 약 6.2km의 편도형 코스가 완성된다. 사진 촬영과 휴식을 포함하면 약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 잡는 편이 좋다.

“경광등 울리면 멈추지 마라”…22개 낙석 취약지점
설악산 흘림골은 수려한 암벽 경관만큼 낙석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2015년 낙석 사고 이후 탐방로가 폐쇄됐고, 국립공원공단은 낙석 방지시설과 우회 데크 등을 보강한 뒤 2022년 다시 개방했다.
공단은 탐방로 가운데 위험도가 높은 22개 지점에 낙석 감지시설과 주의 경광등을 설치했다.
암벽 절경이 빼어나 사진을 찍고 싶은 장소가 많지만 경광등이 설치된 위험구간에서는 머물지 말고 주변을 살피며 신속하게 통과해야 한다. 비나 강풍 등 기상 상황에 따라 입산이 통제될 수 있으므로 출발 전 탐방로 통제 여부도 확인해야 한다.

차량 회수 핵심…“차는 오색에 두고 흘림골로 올라가라”
자차 여행자가 가장 주의할 부분은 흘림골탐방지원센터 주변 주차다. 44번 국도변은 주차할 공간이 사실상 없고 주정차가 제한된다.
가장 편한 방법은 최종 하산지점인 오색마을 쪽에 차를 먼저 세워두는 것이다.
오색마을 공영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한 뒤 택시나 군내버스를 이용해 흘림골탐방지원센터로 올라가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이후 흘림골에서 등선대, 용소폭포삼거리, 주전골을 거쳐 오색약수터 방향으로 내려오면 별도의 차량 회수 이동 없이 주차 장소로 돌아올 수 있다.
10월 1일부터 하루 5000명…9월 30일까지는 무예약
9월 30일까지 예약제 미운영 기간에는 하절기 입산시간인 오전 3시부터 오후 2시 사이에 탐방을 시작할 수 있다.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는 국립공원공단 예약시스템을 통한 탐방예약제로 바뀐다. 하루 탐방 정원은 5000명이며 10월 입산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다. 인터넷 예약은 이용 전날 오후 2시까지 가능하고 정원이 남아 있을 경우에만 현장 접수가 가능하다.
단풍으로 붉게 물드는 10월 남설악도 매력적이지만 예약 경쟁과 인파를 피해 흘림골의 암릉과 계곡을 걷고 싶다면 9월이 사실상 마지막 자유입산 기회다. 등산화 끈을 묶고 남설악 흘림골로 향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설악산 흘림골~주전골
흘림골탐방지원센터에서 여심폭포와 등선대, 십이폭포를 지나 용소폭포삼거리와 주전골을 거쳐 오색약수터로 내려오는 남설악 편도형 탐방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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