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 낙안면, 거대한 돌문을 통과해 성 안으로 들어서면 흙길 양옆으로 둥근 초가지붕과 돌담이 이어진다. 그 뒤로는 금전산 능선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수많은 여행자가 이곳을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위해 만든 민속 세트장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집집마다 걸린 문패와 빨랫줄의 옷가지, 마당과 텃밭을 마주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곳은 박제된 유적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이다.

1,410m 돌성 안에 둥지 튼 230명의 일상
낙안읍성은 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읍성이다. 성곽 둘레는 약 1,410m에 이르며, 성 안에는 지금도 약 100세대, 230여 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초가가 이어진다. 낮 동안 관광객이 오가는 시간에도 주민들은 마당과 텃밭을 돌보고 장독대를 살핀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뒤에도 마을은 멈추지 않는다. 빨래가 널리고 저녁밥을 준비하는 냄새가 골목을 채운다. 낙안읍성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생활의 연속성이다.
성곽과 관아, 민가가 한 공간에 남아 있는 데다 그 안에서 현재의 생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 다른 성곽 유적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발걸음의 시작은 성벽 위…초가마을이 한눈에
낙안읍성을 효율적으로 둘러보려면 성문을 지나자마자 골목으로 들어가기보다 먼저 성벽 위로 오르는 편이 좋다.
높이 4~5m 안팎의 성벽길에서는 초가지붕과 골목, 관아 건물의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을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성곽의 곡선과 초가의 배치가 드러나면서 낙안읍성이 하나의 계획된 읍성 공간이었다는 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서남쪽 성벽 구간에서는 초가마을과 금전산 방향을 함께 조망할 수 있어 낙안읍성을 대표하는 사진 포인트로 꼽힌다.

1397년 토성에서 시작…600년 역사를 품은 읍성
낙안읍성은 고려 후기부터 이어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조선 전기에 본격적으로 성곽을 갖추기 시작했다. 순천시 자료에 따르면 1397년 조선 태조 6년에 처음 흙으로 성을 쌓았고 이후 석성으로 정비됐다.
성 안에는 민가뿐 아니라 동헌과 객사 등 고을의 행정 기능을 담당했던 관아 건물도 남아 있다.
동헌은 지방 수령이 행정을 보던 공간이고, 객사는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나 사신을 맞던 곳이다. 성문과 성벽, 관아, 민가가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는 읍성의 구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낙안읍성은 이러한 역사성과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3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늦은 오후가 좋다…초가지붕에 빛이 내려앉는 시간
낙안읍성은 한낮보다 늦은 오후에 풍경이 더 또렷해진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초가지붕과 성벽에 비스듬한 빛이 내려앉고 돌담의 그림자도 길어진다.
성벽 위 조망을 먼저 보고 골목으로 내려오면 같은 마을을 위와 아래에서 두 번 볼 수 있다. 사진을 찍는 여행자라면 해가 낮아지기 시작하는 시간을 노리는 편이 좋다.
다만 성 안은 관광지이기 전에 주민의 생활 터전이다.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거나 주민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촬영하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생활 공간이라는 점을 알고 조용히 골목을 걷는 것 자체가 낙안읍성을 제대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낙안읍성만 보고 오기 아쉽다면…선암사·순천만까지
낙안읍성은 순천 도심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 인근 여행지를 한 축으로 묶는 편이 효율적이다.
오전에는 조계산 선암사를 먼저 둘러본 뒤 낙안읍성으로 이동하는 동선이 좋다. 선암사에서 낙안읍성까지는 차량으로 약 15~20분 거리다.
낙안읍성에서는 성곽길과 골목, 동헌과 객사를 천천히 둘러보는 데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점심은 읍성 주변 식당가에서 남도식 백반이나 꼬막 요리를 곁들이기 좋다.
이후 차량으로 약 30분 이동해 순천만국가정원으로 향하면 도시형 정원과 생태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
마지막은 순천만습지다.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습지는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이며, 운영 상황에 따라 스카이큐브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600년 성곽과 초가마을을 걷고, 산사와 국가정원, 갈대습지까지 이어 붙이면 순천의 역사와 자연을 하루 안에 두루 경험할 수 있다. 그 출발점으로 낙안읍성은 충분히 강하다.
순천 낙안읍성
조선시대 성곽과 관아, 초가마을 안에서 주민이 현재까지 생활하고 있는 전통 읍성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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