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만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마강욱(양세종)의 할머니가 사는 집이다. 낡은 나무기둥과 널찍한 툇마루, 세월이 내려앉은 기와지붕 뒤로 안동의 산이 펼쳐진다. 마당을 둘러싼 돌담과 처마 끝의 현판까지, 드라마를 위해 새로 만든 세트라고 하기에는 집이 품은 시간이 너무 깊다.
tvN 토일드라마 ‘오싹한 연애’ 9회에 등장한 이 고택은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의 안동 농암종택(聾巖宗宅)이다. 화면에서는 마강욱의 할머니 집이지만 현실에서는 한 집안이 650여 년 동안 대를 이어온 종가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다.
월영교가 ‘원이 엄마’의 440년 사랑을 품은 장소였다면 농암종택의 시간은 그보다 더 멀리 뻗어간다. 드라마 촬영지를 따라 들어왔지만, 대문 안에서 기다리는 것은 농암 이현보의 삶과 문학, 안동댐 수몰로 흩어진 고향의 기억, 그리고 그것을 다시 모아 세운 종가의 이야기다.

화면에서는 ‘할머니 집’, 실제로는 650년 이어온 종가
농암종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인인 농암 이현보(1467~1555)가 태어나고 성장한 집이다. 농암종택 측은 영천이씨 안동 입향조 이헌이 이곳에 터를 잡은 뒤 직계 자손들이 약 650년 동안 대를 이어왔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650년 된 한옥 한 채’라고 이해하면 조금 다르다. 지금 눈앞의 모든 건물이 650년 동안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한 집안의 종가와 기억이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왔다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드라마가 이곳을 ‘할머니가 사는 고향집’으로 선택한 것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종택은 원래 한 세대가 살고 끝나는 집이 아니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다음 세대로 제사와 생활, 기억이 이어지는 공간이다. 드라마에서는 몇 분 동안 지나가는 배경이지만 실제 안동 농암종택에서는 그 시간이 수백 년에 이른다.

이 집에서 태어난 사람, 농암 이현보
농암 이현보는 1467년에 태어나 연산군 때 과거에 급제했고 연산군·중종·인종·명종을 거치며 오랜 기간 관직 생활을 했다. 여러 고을의 수령과 경상도관찰사 등을 지냈고 청백리로도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오늘날 이현보를 기억하게 하는 것은 관직만이 아니다. 그는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산과 강을 벗 삼아 살며 ‘농암가’와 ‘어부가’ 같은 우리말 노래를 짓고 다듬었다. 강호의 자연과 은일의 삶을 노래한 그의 문학은 이후 영남 지역 국문시가의 흐름에도 영향을 주었다.
높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의 자연 속에서 삶과 문학을 완성한 사람. 그래서 농암종택을 제대로 보려면 기와와 기둥만 볼 것이 아니라 집 앞의 강과 산까지 함께 봐야 한다.

청량산과 낙동강이 만나는 가송리
현재 안동 농암종택이 자리한 곳은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다. 낙동강 상류와 청량산 자락이 맞닿는 곳으로, 산과 강, 절벽과 모래사장이 한데 이어지는 안동 북부의 깊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농암종택 사진을 보면 건물이 풍경을 압도하지 않는다. 낮은 기와지붕 뒤로 산이 솟고 돌담 너머로 나무가 이어진다. 한옥이 자연 속에 들어가 있다기보다 산과 강 사이에 오래전부터 놓여 있던 풍경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드라마 세트가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시간의 질감이다. 새 목재로 오래된 집의 모양은 만들 수 있어도, 산과 강 사이에서 여러 세대의 생활이 겹친 분위기까지 한 번에 만들기는 어렵다.
그런데 지금의 농암종택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집이 아니다
농암종택의 역사는 안동댐 건설 과정에서 크게 끊긴다. 종택이 원래 자리했던 곳은 분천마을이었다. 안동댐 건설로 마을이 수몰되면서 종택과 사당, 긍구당과 애일당 등 관련 건물들이 한동안 안동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이후 종가와 문중은 흩어진 건물과 기억을 다시 모으는 작업을 이어갔다. 2000년대 들어 현재의 가송리 일대에 건물들을 옮기고 복원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종택의 모습을 다시 갖추게 됐다.
이 사실을 알고 보면 오래된 목재와 기와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 집은 단순히 오래돼 살아남은 집이 아니다. 고향이 물속으로 사라진 뒤 흩어진 집을 다시 모은 공간이다.
옛집을 복원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물에 잠긴 고향의 기억을 건물 한 채 한 채 다시 불러 모은 셈이다. 그래서 농암종택에 들어서는 일은 오래된 한옥을 구경하는 것 이상으로, 수몰된 분천마을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농암종택에서 눈여겨볼 건물 가운데 하나가 긍구당(肯構堂)이다. ‘긍구’에는 조상의 유업을 이어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이름은 농암종택이 지나온 역사와 묘하게 겹친다. 댐 건설로 집이 흩어졌지만 후손들이 다시 모았고, 조상의 유업을 이어간다는 이름을 가진 건물 역시 여러 시간을 건너 종택의 한자리로 돌아왔다.
현재 농암종택에는 대문채와 사랑채, 안채뿐 아니라 긍구당·애일당·사당 등 여러 건물이 함께 자리한다. 드라마 화면 속 오래된 기둥과 툇마루가 단순한 ‘한국적인 배경’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 그 나무 뒤에 실제 시간이 있다.

650년 종택인데 문을 닫아놓지 않았다
농암종택의 또 다른 매력은 사람이 실제로 머물 수 있다는 점이다. 안동관광은 농암종택을 고가옥 전통체험이 가능한 장소로 안내하고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별당 등 여러 공간에서 숙박 체험이 운영된다.
박물관 유리창 너머에서 바라보는 옛집만은 아니다. 대문을 지나 마당을 걷고 툇마루에 앉을 수 있으며, 숙박을 이용하면 밤의 고택과 이른 아침의 가송리 풍경까지 경험할 수 있다. 운영 객실과 요금, 예약 가능 여부는 방문 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드라마에서 이 집이 유난히 자연스럽게 ‘고향의 할머니 집’처럼 보였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실제 사람이 살아왔고 지금도 생활과 체험이 이어지는 집이기 때문이다.
월영교에서 농암종택까지…‘오싹한 연애’가 보여준 또 다른 안동
‘오싹한 연애’ 촬영지를 따라가다 보면 월영교와 농암종택은 전혀 다른 장소처럼 보인다. 하나는 밤에 빛나는 긴 다리이고, 다른 하나는 청량산과 낙동강 사이의 오래된 종가다.
하지만 두 장소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의 이야기가 지금의 여행지가 됐다는 점이다. 월영교에는 이응태와 원이 엄마의 사랑이 있고, 안동 농암종택에는 한 집안이 수백 년 이어온 시간과 수몰된 고향을 다시 모은 기억이 있다.
드라마는 두 곳을 배경으로 사용했지만 여행자는 화면보다 훨씬 오래된 안동을 만나게 된다.
농암종택만 보고 돌아오기에는 주변이 너무 좋다
농암종택 주변에는 고산정과 도산서원, 퇴계종택, 이육사문학관, 한국국학진흥원 등 안동 북부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공간들이 이어진다. 특히 가송리의 낙동강 협곡과 고산정은 농암종택과 같은 날 묶어 돌아보기 좋다.
차를 타고 관광지 하나씩 찍고 이동하기보다 강을 보고, 고택에 들어가고, 오래된 나무와 돌담을 지나 다시 산을 바라보는 식의 느린 여행이 이곳에는 더 어울린다.
농암 이현보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선택했던 삶 역시 결국 이런 풍경 속에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찾아갔다가 650년을 만나게 되는 집
촬영지는 때로 드라마보다 오래 남는다. ‘오싹한 연애’가 끝난 뒤에도 농암종택은 그 자리에 남는다.
마강욱의 할머니 집이라는 설정은 사라져도 농암 이현보가 태어나고 성장한 종택이라는 사실은 남는다. 안동댐 건설로 옛 마을이 물에 잠기고 건물들이 흩어졌던 기억도, 그것을 다시 한곳으로 모은 후손들의 시간도 남는다.
드라마를 보고 찾아가도 좋다. 그러나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간 뒤에는 잠시 드라마를 잊어도 좋다. 기둥 하나, 툇마루 하나, 처마 너머의 산을 천천히 보다 보면 화면과는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화면에서는 마강욱의 할머니 집이었다.
현실에서는 650여 년 동안 한 집안이 기억을 이어온 집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농암종택이 어떤 세트보다 드라마 속 ‘고향집’처럼 보였던 가장 큰 이유일지 모른다.
여행정보 | 안동 농암종택
- 위치: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33
- 문의: 054-843-1202
- 특징: 농암 이현보 종택, 긍구당·애일당·사당 등
- 체험: 고가옥 전통체험·숙박 가능
- 주변: 고산정, 도산서원, 퇴계종택, 이육사문학관, 한국국학진흥원
- 이동: 안동 시내에서 차량으로 약 1시간. 숙박·체험 운영 여부와 요금은 방문 전 확인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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