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와인 하면 으레 프랑스나 이탈리아, 최근 핫하게 떠오른 조지아 정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진짜 ‘와인 스노브(Wine Snob)’들의 시선은 지금 동유럽의 작고 낯선 나라, 몰도바(Moldova)의 땅속 깊은 곳을 향하고 있다.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낀 이 내륙국은, 나라 전체가 거대한 포도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오랜 포도 재배 역사를 지녔다. 특히 수도 키시너우(Chișinău) 주변에는 자동차를 타고 지하 도로를 달려야만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와인 도시들과 200년 역사를 간직한 고성 와이너리들이 여행자들의 미각과 시각을 동시에 압도할 준비를 마쳤다.

“지하 터널만 200km”… 기네스북이 인정한 150만 병의 미궁, ‘밀레슈티 미치’
수도 키시너우에서 남쪽으로 단 20km만 벗어나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와이너리, 밀레슈티 미치(Mileștii Mici)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일반적인 농장 형태의 와이너리가 아니다. 과거 석회암을 캐내던 지하 갱도를 개조해 만든 이 거대한 지하 와인 도시의 터널 총길이는 무려 200km에 달하며, 그중 약 55km가 와인 저장 시설로 쓰이고 있다. 연중 12~14도의 서늘한 온도가 완벽하게 유지되는 이 천연 저장고에는 무려 150만 병 이상의 와인이 보관되어 있어, 2005년 ‘세계 최대 규모의 와인 저장고 컬렉션’으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되었다.
이곳의 관람 방식은 그 규모만큼이나 스펙터클하다. 도보가 아닌 ‘자동차’나 ‘전동 카트’를 타고 캄캄한 지하 갱도 도로를 따라 이동하며,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끝없이 늘어선 와인 보관 구역과 지하 시음장을 탐험한다. 수십 년 묵은 희귀 와인들이 동굴 벽면을 가득 메운 풍경 속을 달리는 경험은 그 자체로 초현실적인 쾌감을 선사한다.

“지하 도로의 이름이 포도 품종?”… 메르켈도 반한 ‘크리코바’
밀레슈티 미치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지하 와인 도시는 수도 북쪽의 크리코바(Cricova)다. 1952년 설립된 크리코바 역시 총연장 120km가 넘는 석회암 갱도를 와이너리로 개조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지하의 얽히고설킨 갱도 도로마다 ‘카베르네 소비뇽 거리’, ‘샤르도네 거리’처럼 포도 품종과 와인 이름을 붙여 놓았다는 점이다.
크리코바는 샴페인 제조 방식과 동일한 병 내 2차 발효를 거치는 전통 방식의 고품질 스파클링 와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길을 따라 갱도를 탐험하다 보면 오랜 세월 먼지를 덮어쓴 빈티지 와인 컬렉션 룸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에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등 세계 각국 정상과 유명 인사들의 개인 와인 컬렉션이 보관되어 있어 흥미를 더한다. 밀레슈티 미치와 크리코바, 이 두 거대한 지하 와인 도시는 산업 시설을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가치를 인정받아 202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19세기로의 시간 여행… ‘카스텔 미미’와 ‘샤토 푸르카리’
지하의 기괴한 미궁을 빠져나왔다면, 이제는 지상의 우아한 고성에서 와인의 품격을 논할 차례다. 수도에서 약 40km 떨어진 불보아카 마을에 위치한 카스텔 미미(Castel Mimi)는 1893년 콘스탄틴 미미가 설립한 유서 깊은 와이너리다. 웅장한 석조 건물과 아름답게 정돈된 정원을 갖춘 이곳은, 와인 시음은 물론 파인다이닝 식사와 럭셔리한 숙박까지 가능한 복합 관광 단지로 탈바꿈하여 미식가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역사로 치면 몰도바 남동부 슈테판보더 지역의 샤토 푸르카리(Château Purcari)를 따라갈 곳이 없다. 무려 1827년에 설립된 이곳은 드니에스터강 인근의 완벽한 테루아를 바탕으로 몰도바를 대표하는 프리미엄 와인 ‘네그루 데 푸르카리(Negru de Purcari)’를 빚어낸다. 광활한 포도밭을 산책하고 유서 깊은 저장고를 둘러본 뒤, 레스토랑에서 지역 음식과 페어링 된 와인을 곁들이는 코스는 유럽 귀족의 휴가 부럽지 않다.

토종 품종의 강렬한 유혹, 그리고 가을 와인의 축제
몰도바 와인의 진정한 매력은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 품종이 아닌, 이 지역만의 낯선 ‘토종 품종’에 있다. 짙은 루비색에 풍부한 과실 향과 묵직한 바디감을 자랑하는 적포도 품종 ‘페테아스카 네아그러(Fetească Neagră)’, 그리고 부드러운 질감과 산뜻한 붉은 과실 향이 돋보이는 ‘라러 네아그러(Rară Neagră)’는 몰도바를 방문했다면 반드시 맛봐야 할 지역의 자존심이다.
몰도바에서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전문 와이너리뿐만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도 가을마다 포도를 수확해 자신만의 와인을 담그는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매년 10월 첫째 주 주말, 수도 키시너우 광장에서 성대하게 열리는 ‘국가 와인의 날(National Wine Day)’ 축제에 맞춰 방문한다면, 전국의 와인 생산자들이 쏟아내는 수천 종의 와인과 전통 음식, 민속 음악이 어우러진 몰도바 와인 문화의 심장 박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몰도바 현지에서 날아온 특별한 ‘초대장’
사실 이번 기획은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에 거주하는 현지 독자 ‘로디온 부르카(Rodion Burca)’ 씨의 열정적인 제보에서 출발했다. 최근 본지에 게재된 조지아 와인 기사를 읽은 그는, “조지아만큼 훌륭한 와인 역사와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 와인 도시를 가진 몰도바를 한국 여행객들에게 꼭 소개해달라”며 방대한 자료와 생생한 현지 정보를 보내왔다. 또한, 한국 여행객들이 언어 장벽 없이 몰도바를 깊이 있게 여행할 수 있도록 한국어 통역이 가능한 현지인 ‘옥사나(Oxana)’ 씨를 연결해 주며 몰도바 와인 투어의 완벽한 징검다리를 놓아주었다.
몰도바 와인 여행 실전 준비 & 꿀팁 요약
| 구분 | 내용 |
|---|---|
| 비자 및 입국 | 한국 여권 소지자 90일 무비자 체류 가능 (※ 여권 유효기간 최소 3개월 이상 필수) |
| 항공편 이동 | 한국 출발 직항 없음. 이스탄불(튀르키예)이나 바르샤바(폴란드) 등을 경유하여 수도 키시너우 입국 |
| 추천 동선 (3~4일) | 1일차 키시너우 도착 및 도심 숙박 → 2일차 밀레슈티 미치 & 크리코바 지하 와이너리 투어 → 3일차 카스텔 미미 또는 샤토 푸르카리 방문 |
| 치명적 주의사항 | – 지하 와이너리는 100% 사전 예약제 (이동수단 및 영어 가이드 포함 여부 확인 필수) – 지하 갱도는 한여름에도 12~14도로 서늘하므로 두툼한 겉옷 지참 필수 – 시음 시 음주운전 절대 금지 (전문 기사가 포함된 현지 투어 차량 이용 권장) |
| 안전 및 통역 안내 | – 우크라이나 접경 및 트란스니스트리아 분쟁 지역 접근 주의 (출발 전 외교부 안전 정보 확인) – 한국어 통역 및 가이드 필요 시 사전 협의 (※ 제보자 추천 현지인 옥사나(Oxana) 씨 연계 가능) |
| 관광 정보 | 몰도바 관광청 공식 홈페이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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