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놀이 하면 으레 험준한 내륙의 깊은 산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귓가에는 파도 소리가 부서지고 눈앞에는 붉고 노란 잎사귀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풍경, 숲길의 끝자락에서 탁 트인 푸른 서해를 만나는 낭만은 오직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호사다. 바다와 숲이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는 이곳 천리포수목원에서 11월 22일까지 ‘2026 천리포수목원 가을산책’ 행사가 여행객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1만 6천여 종의 식물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가을 팔레트, 밀러가든
1962년 황무지였던 부지를 매입해 1970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된 천리포수목원은 한국 수목원 역사의 산증인이다. 공식 현황에 기재된 전체 면적은 무려 58만 9,429㎡에 달하며, 1만 6,895분류군이라는 천문학적인 식물 종을 보유하고 있다. 일반 관람객에게 365일 상시 개방되는 약 6만 5,623㎡ 규모의 ‘밀러가든(Miller Garden)’은 이 거대한 생태계의 화려한 축소판이자 핵심 탐방로다.
가을의 밀러가든은 뻔한 붉은 단풍 일색이 아니다. 상록수의 짙푸른 생명력 사이로 물드는 형형색색의 단풍잎들, 그리고 나뭇가지마다 보석처럼 맺힌 진귀한 가을 열매들이 정원의 표정을 시시각각 변화시킨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곰솔 군락 사이로 푸른 서해 바다가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해안 산책로 구간이다. 잔잔한 수변 정원에서 식물들의 미세한 떨림을 관찰한 뒤, 바다 쪽으로 걸음을 옮겨 수평선을 굽어보는 동선은 천리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힐링 코스다. 식물 이름표 하나하나를 찬찬히 읽으며 희귀 수종의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다.

‘비밀의 숲’ 예약 탐방과 종료된 행사, 옥석 가리기
올해 가을산책 행사는 10월 24일부터 11월 22일까지 한 달간 풍성하게 펼쳐진다. 가을 열매를 테마로 한 이색 포토존과 ‘가드너와 함께 걷는 비밀의 숲’, 그리고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기념 특별 전시 등 발길을 끄는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이 중 가장 인기가 높은 ‘비밀의 숲’ 프로그램은 11월 22일까지(월요일 제외) 운영되며,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는 미개방 구역을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단, 일반 입장권만 끊는다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온라인 예약이 필수다. 잔여 좌석과 집결 장소, 별도 참가 비용을 미리 확인해야 낭패를 막을 수 있다. 한편, 가을산책 프로그램과 함께 홍보되었던 북페어 ‘책바슴’ 행사는 10월 25일 자로 성황리에 종료되었으므로, 11월 방문객들은 착오 없이 동선을 짜야 한다.
푸른 눈의 귀화인 민병갈, 그의 숭고한 숨결을 읽다
수목원 산책의 깊이를 더하려면 ‘민병갈기념관’ 방문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천리포수목원을 일군 설립자 민병갈 원장은 본래 미국에서 태어난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로, 한국의 자연에 매료되어 귀화까지 한 인물이다. 평생을 바쳐 척박한 땅을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탈바꿈시킨 그의 집념과 눈물겨운 헌신은 기념관 곳곳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특히 이번 가을산책 기간에는 기념관 1층에서 수목원 조성 기록물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화려한 건물이나 희귀 식물 자체가 아니라, 초기 토지 매입부터 해외 기관과의 종자 교류, 꼼꼼한 식물 관리 일지 등 민병갈 원장이 피땀 흘려 남긴 ‘기록물’들이다. 이 먹먹한 전시를 가슴에 품고 다시 밀러가든으로 걸어 나오면, 무심코 지나치던 나무 한 그루와 풀 한 포기가 전혀 다른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11월부터는 한 시간 일찍 닫는다… 데스크의 실전 관람 팁
가을이 깊어지면 해가 짧아지는 법. 11월 방문객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변경되는 운영 시간이다. 10월까지는 오후 6시에 문을 닫지만, 11월부터는 오전 9시에 개장해 오후 5시에 폐장하며, 입장 마감 역시 오후 4시로 한 시간 앞당겨진다. 수목원은 연중무휴로 운영되지만 늦은 오후 방문 시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일반 성인 입장료는 1만 3,000원이며, 중고생 1만 원, 유아 및 초등학생은 6,000원이다.
수목원 측이 권장하는 기본 관람 시간은 90분 남짓이지만, 눈부신 바다 전망을 배경으로 한 사진 촬영과 민병갈기념관 관람, 여유로운 벤치 휴식까지 고려한다면 최소 2시간에서 2시간 30분은 넉넉히 잡는 것이 좋다. 탐방 후에는 바로 인근에 위치한 만리포해수욕장으로 넘어가 서해안의 싱싱한 해산물로 배를 채우는 완벽한 당일치기 코스를 완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규칙’이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식물 보호와 쾌적한 관람 환경을 위해 카메라 삼각대, 돗자리, 외부 음식물(식수/음료수 제외), 반려동물의 반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인생 샷을 남기고 싶다면 거추장스러운 삼각대 대신 가벼운 짐으로, 발이 편안한 운동화와 바닷바람을 막아줄 겉옷을 단단히 챙겨 홀가분하게 떠나보자.
여행 정보 요약
- 위치: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1길 187
- 가을산책 기간: 2026년 10월 24일 ~ 11월 22일
- 운영 시간: 11월 기준 오전 9시 ~ 오후 5시 (입장 마감 오후 4시, 연중무휴)
- 입장료: 성인 13,000원 / 중·고등학생 10,000원 / 어린이(만 36개월 이상) 6,000원
- 핵심 관람 팁: ‘비밀의 숲’ 탐방은 사전 예약 필수, 카메라 삼각대 및 외부 음식물 반입 절대 불가
- 문의: 천리포수목원 대표전화 (041-672-9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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