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승일교, 북한이 시작하고 남한이 완성한 높이 35m 교량…분단이 남긴 비대칭

철원 승일교는 북한 정권이 1948년 공사를 시작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단된 뒤 대한민국 정부가 1958년 완공한 철근콘크리트 아치교다. 높이 35m·길이 120m의 교량 중앙을 기준으로 아치와 교각 구조가 달라 남북 분단과 전쟁이 건축물에 남긴 흔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탄강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원 승일교 측면 전경
높이 35m의 아치 구조로 한탄강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원 승일교. 이미지=여행레저신문 AI 재구성

여행레저신문ㅣ 김미래기자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한탄강 위에 놓인 철원 승일교는 높이 35m, 길이 120m, 폭 8m의 철근콘크리트 아치교다. 북한 정권 아래 있던 1948년 공사가 시작됐지만 한국전쟁으로 중단됐고, 수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남은 구간을 이어 지어 1958년 완공했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시점은 2002년 5월 31일이다.

‘남북이 함께 만든 다리’라는 표현은 두 체제가 같은 시기에 협력했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설계와 동일한 공사 조직으로 공동 시공한 것도 아니다. 전쟁 전 북한이 먼저 교량 일부를 건설했고, 전쟁 후 대한민국이 중단된 공사를 이어받아 완성했다는 시간적 의미에 가깝다.

이 차이는 기록에만 남아 있지 않다. 중앙부를 기준으로 아치의 크기와 교각 형태, 세부 마감이 달라 어느 부분이 먼저 시공됐고 어느 부분이 나중에 완성됐는지 외관으로 구분된다.

승일교를 제대로 보려면 다리 위를 건너는 데서 끝내지 말아야 한다. 승일공원 전망 구간과 한탄강 강변에서 다리를 옆으로 바라봐야 아치의 높이와 교각의 차이, 바로 옆 한탄대교와의 관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철원 승일교와 한탄대교, 승일공원 전경
옛 승일교와 새 한탄대교, 승일공원이 나란히 이어진 한탄강 일대. 이미지=여행레저신문

한탄강 협곡 위에 세운 길이 120m 철근콘크리트 아치교

승일교는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내대리 사이 한탄강을 가로지른다. 공식 제원은 높이 35m, 길이 120m, 폭 8m다. 아래로 깊은 강과 암반지형이 놓인 만큼 평지에 세운 일반 교량보다 아치와 교각이 풍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다리의 중심 구조는 강 양쪽을 연결하는 큰 아치다. 아치 위에는 작은 수직 부재와 교량 상판이 이어지고, 강 가운데 교각이 구조물을 받친다. 강변에서 올려다보면 콘크리트 구조가 협곡의 곡선과 겹치면서 승일교 특유의 장면이 만들어진다.

다리만 가까이 촬영하면 오래된 콘크리트 교량처럼 보이지만 강과 절벽, 주변 숲을 함께 담으면 왜 이 교량이 철원의 대표 근대유산으로 남았는지 이해하기 쉽다.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협곡과 교량의 골격이 중심 풍경이 된다.

승일교 가까이에 놓인 한탄대교와 도로 진입부. 두 교량은 서로 다른 시대의 교통사를 보여준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북한이 시작하고 대한민국이 완성한 10년의 공사

 

승일교 공사는 철원이 북한 관할이던 1948년 8월 시작됐다. 당시 철원과 김화 일대 주민들이 공사에 동원됐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지면서 교량은 미완성 상태로 남았다.

전쟁 뒤 이 지역이 대한민국에 편입되면서 공사가 재개됐고 1958년 완공됐다. 공사가 시작된 시점과 완공 시점 사이에는 10년의 간격이 있으며, 이 기간에 전쟁과 휴전, 행정구역과 지배체제의 변화가 일어났다.

‘반쪽은 북한, 반쪽은 남한이 만들었다’는 설명도 여기에서 나왔다. 정확하게는 북한이 교량 공사를 시작해 일부 구조물을 건설했고, 대한민국이 미완성 구간을 이어받아 최종 완공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다.

승일교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하지만 공식 국가유산 정보에서 명칭 유래를 하나의 사실로 확정하지는 않는다. 특정 인물이나 두 지도자의 이름을 결합했다는 설은 사실과 구전설을 구분해 다뤄야 한다.

한탄강 강변에서 바라본 승일교 아치와 교각 구조
강변에서 바라보면 아치 크기와 교각 세부가 서로 다르게 시공된 승일교의 구조가 드러난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가운데에서 달라지는 아치와 교각, 분단이 남긴 비대칭

승일교의 핵심은 다리 중앙을 기준으로 구조적 인상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전쟁 전에 건설한 구간과 전쟁 뒤 완성한 구간은 아치의 크기와 교각 형태, 수직 부재의 간격이 외관상 구별된다.

차이는 멀리서 다리 전체를 볼 때 더욱 분명하다. 아치의 곡률과 교각 사이의 빈 공간, 상판 아래 반복되는 작은 아치의 형태가 완전히 대칭을 이루지 않는다. 전쟁 전후 서로 다른 기술과 현장 조건이 하나의 교량 안에서 맞물린 결과다.

대부분의 교량은 좌우 균형과 반복되는 구조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승일교는 완벽하지 않은 대칭이 역사적 의미를 만든다. 어느 한쪽을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공했다면 사라졌을 차이가 남아 분단과 전쟁의 시간을 눈으로 읽게 한다.

교량 위에서는 구조 차이가 충분히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승일공원 전망 지점이나 강변에서 측면을 바라보고 큰 아치와 그 위의 작은 개구부를 양쪽으로 비교하는 것이 좋다.

강변에서 바라보면 아치 크기와 교각 세부가 서로 다르게 시공된 승일교의 구조가 드러난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차량은 새 다리로, 옛 승일교는 역사 경관으로 남았다

승일교 옆에는 새로운 한탄대교가 나란히 놓여 있다. 현재 지역의 주요 차량 흐름은 새 교량이 담당하고 오래된 승일교는 근대 교량의 구조와 한탄강 경관을 살펴보는 역사 공간으로 기능한다.

회색 콘크리트 아치가 반복되는 승일교와 붉은색 강재 구조가 강조된 한탄대교는 재료와 형태, 건설 시기가 확연히 다르다. 두 다리를 한 장면에 놓고 보면 철원의 교통사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승일교를 찾을 때는 차량 진입 여부와 보행 가능 구간을 현장 표지로 확인해야 한다. 교량이나 탐방로는 시설 점검과 기상 상황에 따라 통제될 수 있으므로 난간을 넘거나 비공식 경사로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

승일교만 보고 돌아서기 아쉬운 한탄강 여행 동선

승일교 바로 옆에는 철원승일공원이 있다. 공원은 옛 승일교와 한탄대교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공간으로 넓은 주차장과 승일정,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승일공원에서 교량을 본 뒤에는 고석정으로 이동하는 동선이 자연스럽다. 고석정은 한탄강 협곡과 바위, 정자가 어우러진 철원의 대표 경관이며 승일교와 함께 한탄강 지형을 이해하기 좋은 장소다.

한탄강 은하수교와 주상절리길도 연계할 수 있지만 모두 승일교 바로 옆 시설은 아니다. 승일교와 승일공원을 둘러보는 짧은 코스와 고석정·은하수교·주상절리길을 잇는 반나절 코스를 구분해 계획해야 이동이 효율적이다.

승일정과 산책계단, 교량 조망 구간이 이어지는 철원승일공원. 이미지=여행레저신문

무료 관람·주차·안전까지 승일교 방문 전 확인할 점

승일교와 승일공원은 별도의 입장권을 구매하는 유료 관광시설이 아니다. 승일공원에는 차량으로 접근하기 쉬운 주차 공간이 마련돼 있으며 승일정과 전망 지점에서 두 교량과 한탄강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

승일교 전체를 둘러보는 데는 약 30분에서 1시간이면 충분하다. 승일정에서 쉬고 강변 전망 구간까지 살펴보거나 사진 촬영을 오래 하면 체류시간이 늘어난다.

여름에는 오전이나 오후 늦게 찾는 편이 좋고, 가을에는 주말 차량 혼잡을 고려해야 한다. 겨울에는 교량 구조가 선명하게 보이는 대신 계단과 산책로 결빙에 주의해야 한다.

한탄강 주변 탐방시설은 집중호우와 강풍, 결빙, 시설 점검에 따라 출입이 제한될 수 있다. 승일교와 주상절리길을 같은 날 묶을 경우 각각의 개방 여부를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철원 승일교 여행정보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갈말읍 내대리 일대
건설 기간 1948~1958년
구조 철근콘크리트 아치교
높이 35m
길이 120m
8m
국가유산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일 2002년 5월 31일
관람료 무료
추천 체류 30분~1시간
주차 철원승일공원 주차 공간 이용

철원 승일교는 남과 북이 평화롭게 협력해 만든 공동사업의 결과물이 아니다. 전쟁 전 북한이 시작한 공사를 전쟁 후 대한민국이 이어받아 완성한 교량이다. 바로 그 단절과 연결이 한 다리 안에 동시에 남았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한탄강 위로 이어진 아치의 곡선을 멀리서 바라보고 중앙부에서 달라지는 교각과 세부 구조를 비교하면 승일교는 오래된 다리 한 채가 아니라 분단과 전쟁, 수복과 재건의 시간이 겹쳐진 철원의 역사 기록으로 읽힌다.

여행레저신문 Copyrights ⓒ The Travel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