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북부 산악지대의 거대한 산허리가 온통 샛노란 계단으로 옷을 바꿔 입기 시작했다. 험준한 능선을 수백 겹으로 두른 다랭이논마다 벼가 고개를 숙이면서, 9월 중순에 접어들자 산골짜기 전체가 눈부신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베트남 서북부 라오까이성(Lào Cai)에 자리한 무깡짜이(Mù Cang Chải).
한국 여행객에게 널리 알려진 사파(Sa Pa)에 비해선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베트남 현지에서는 가을 문턱에 들어서면 전국의 풍경 사진가와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짐을 싸는 곳이다. 해발 1,000m 안팎의 깎아지른 산비탈을 따라 2,000헥타르(㏊)가 넘는 계단식 논이 층층이 펼쳐진다. 평소 짙은 초록색이던 원시림과 산자락이 황금빛으로 완전히 뒤바뀌는 시기는 1년 중 9월 중순부터 10월 초순까지의 딱 몇 주간이다.
올해는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현지에서 ‘2026 무깡짜이 황금 계절 축제’가 열리며 일찌감치 여행객의 발길을 불러 모았다. 당시만 해도 벼 이삭이 풋풋한 연둣빛을 띠었으나, 9월 중순에 들어서며 하루가 다르게 짙은 노란색으로 농익어가고 있다. 10월 중순 추수가 끝나면 1년을 꼬박 기다려야 하는 귀한 풍경이다.

등고선 따라 층층이 쌓아 올린 20세대의 생존 기록
무깡짜이의 다랭이논이 유독 압도적인 인상을 남기는 까닭은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가파른 산의 등고선 굴곡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계곡 바닥에서 시작된 논 한 줄이 끝나면 그 위에 다시 좁고 긴 논이 얹어지고, 층층의 계단은 산마루 턱밑까지 수백 단을 굽이치며 솟아오른다.
이 장대한 농경 예술의 주인은 소수민족인 흐몽(H’Mong)족이다. 물을 구하기 어려운 척박한 고산 절벽에서 빗물을 가두고 벼를 키우기 위해 20세대가 넘는 세월 동안 돌을 골라내고 흙벽을 다졌다. 베트남 정부는 이 보존 가치를 인정해 라빤떵(La Pán Tẩn), 제쑤핑(Dế Xu Phình), 째꾸냐(Chế Cu Nha) 일대의 계단식 논 850여 헥타르를 국가특별명승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찹쌀밥 그릇’ 맘쏘이와 말발굽 언덕의 동심원
무깡짜이 여행에서 가장 많은 카메라 셔터가 터지는 명소는 라빤떵 마을의 ‘맘쏘이(Mâm Xôi) 언덕’이다. 둥근 쟁반 위에 소복이 담긴 찹쌀밥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둥근 언덕의 능선을 따라 둥글게 원을 그리며 감아 돌아가는 계단식 논의 곡선이 완벽한 동심원을 그린다.

빛의 각도가 낮게 비스듬히 떨어지는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녘에 이곳을 찾으면, 계단식 논두렁 사이로 짙은 음영이 드리워지며 논의 입체감이 극대화된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좁은 진입로는 일반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 입구에서 현지 주민들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택시(쎄옴)를 타고 비탈길을 올라가는 경험 또한 이색적이다.


해발 1200m 카우파 고개서 내려다보는 파노라마
논두렁길 사이를 거닐며 벼 향기를 맡았다면, 다음 코스는 산 정상에서 풍경 전체를 조망할 차례다. 베트남 4대 고개 중 하나로 꼽히는 해발 1,200m의 카우파(Khau Phạ) 고개는 무깡짜이로 들어서는 천혜의 전망대다.
고개 정상 전망대에 서면 림몽(Lìm Mông) 계곡 바닥부터 산등성이까지 끝없이 물결치는 황금빛 논과 소수민족 마을 지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확철이면 전 세계 패러글라이더들이 이 고개에서 뛰어내려 황금빛 논 위를 새처럼 활공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사파보다 덜 닳은 길… 32번 국도가 선사하는 순수성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무깡짜이는 고속도로가 끝난 뒤에도 험준한 산악 국도(32번 국도)를 3시간 이상 더 달려야 닿을 수 있다. 차량으로 편도 6~8시간이 꼬박 걸리는 고단한 여정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접근성의 장벽 덕분에 대형 호텔과 상업 시설로 번잡해진 사파와는 전혀 다른 원형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화려한 리조트 대신 목조 홈스테이에 묵으며 흐몽족의 옥수수주와 전통 음식을 맛보고, 목적지에 닿기 전 32번 국도를 달리는 내내 창밖으로 펼쳐지는 다랭이논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는 로드 트립의 낭만이 살아있다.

베트남 무깡짜이
9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2000㏊가 넘는 계단식 논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북베트남 대표 수확철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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