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레저신문 ㅣ 이만재기자
영월 무릉도원면 주천강에는 누군가 거대한 드릴로 바위를 파낸 것처럼 둥글고 깊은 구멍이 연달아 나타나는 곳이 있다. 영월 무릉리 요선암 돌개구멍이다.
주천강 하상 약 200m 구간의 화강암반 위에 크기와 형태가 다른 포트홀이 복합적으로 발달해 있으며 2013년 천연기념물 제543호로 지정됐다.
돌개구멍만 보고 돌아서기보다 바로 위 요선정과 고려시대 마애여래좌상까지 이어보면 자연이 만든 시간과 사람이 남긴 시간이 짧은 동선 안에서 겹친다.

바위에 누가 구멍을 뚫은 것처럼 보인다
요선암에 처음 내려가면 강보다 먼저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넓은 암반 표면에 원형과 타원형 구멍이 반복된다.
구멍 안에 물이 고여 있는 곳도 있고 여러 구멍이 서로 연결돼 하나의 복잡한 곡선을 만든 곳도 있다.
바위 표면은 매끄럽게 닳아 있어 사람이 일부러 갈아낸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주천강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지형이다.
돌개구멍은 물만 흘렀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하천 바닥의 작은 홈에 자갈이나 모래가 들어간 뒤 물이 소용돌이치면 돌도 함께 회전한다.
회전하는 자갈이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긁고 두드리면서 기반암을 조금씩 마모시킨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작은 홈이 깊고 둥근 돌개구멍으로 발달한다. 요선암은 이 과정이 다양한 형태로 남은 대표적인 하천 침식지형이다.
하나의 큰 구멍보다 여러 개가 붙어 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요선암이 천연기념물인 이유는 특정 구멍 하나가 크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돌개구멍이 넓은 화강암반 위에 복합적으로 발달해 하천 침식과 지형 형성과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구멍 하나를 확대해서 보는 것보다 강바닥 전체를 넓게 보면 요선암의 진짜 규모가 드러난다.

물이 적을 때와 많을 때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수량이 적은 날에는 암반 표면과 돌개구멍의 형태가 많이 드러난다.
물이 많아지면 일부 구멍은 수면 아래로 들어가고 바위 사이의 물길이 강해져 계곡 풍경이 살아난다.
다만 장마 직후나 집중호우 뒤에는 수위와 유속이 달라질 수 있어 바위 위 접근은 현장상황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에메랄드빛 웅덩이는 예쁘지만 수영장으로 볼 곳은 아니다
깊은 돌개구멍에 맑은 물이 고이면 빛과 암석 색이 겹치면서 녹색 또는 청록색으로 보이는 곳도 있다.
사진에서는 작은 자연 수영장처럼 보이지만 깊이가 일정하지 않고 젖은 화강암 표면은 상당히 미끄럽다.
천연기념물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정비된 범위 안에서 관찰하고 구멍 가장자리에 무리하게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요선암이라는 이름에는 양사언 이야기가 남아 있다
영월군은 조선 중기의 문인 봉래 양사언이 이곳 경치에 반해 선녀탕 바위에 요선암이라는 글자를 새긴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요선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강과 화강암, 숲이 한곳에 모여 옛사람에게도 풍류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포트홀이라는 지질용어로 설명하는 공간을 옛사람은 전혀 다른 언어로 바라봤다는 점도 흥미롭다.

요선암만 보고 돌아서면 절반만 보는 셈이다
요선암 위쪽에는 요선정이 있다. 영월군은 요선암과 요선정을 영월 10경 제10경으로 선정해 소개한다.
아래에서는 화강암과 돌개구멍을 가까이 보고 위에서는 계곡 전체를 내려다보게 된다.
같은 장소를 서로 다른 높이에서 보는 구조라 요선암과 요선정을 하나의 동선으로 묶는 편이 좋다.
요선정은 현재 건물이 1913년에 세워졌다
요선정은 오래된 조선시대 정자처럼 보이지만 현재 건물은 1913년에 건립됐다.
이 지역의 원씨와 곽씨, 이씨 주민들이 중심이 돼 숙종과 영조, 정조의 어제시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다.
요선정과 모성헌 현판이 걸려 있고 현판 뒤에는 왕들의 어제시가 담겨 있어 단순한 계곡 전망정 이상의 역사성을 갖는다.
정자에 올라오면 방금 보던 강이 아래로 내려간다
요선암에서는 강과 거의 같은 높이에서 바위를 본다.
요선정으로 올라오면 나무 사이로 주천강과 화강암 계곡이 아래로 펼쳐진다.
돌개구멍 하나의 형태보다 계곡 전체의 방향과 산세를 보고 싶다면 요선정 쪽 시야가 훨씬 좋다.

요선정 옆에서는 3.5m 고려시대 마애불을 만난다
요선정 동쪽의 큰 바위에는 영월 무릉리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높이는 약 3.5m이며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고 현재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자연암 전체의 형태를 활용해 불상을 새겨 가까이에서 보면 사진보다 훨씬 큰 규모가 느껴진다.
아래에서는 물이 바위를 깎고 위에서는 사람이 바위를 깎았다
요선암의 돌개구멍은 자연이 바위를 깎은 결과다.
마애여래좌상은 사람이 바위를 깎아 남긴 결과다.
같은 암석을 두고 전혀 다른 방식의 시간이 기록돼 있다는 점이 요선암·요선정 여행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마애불은 주변 석조물과 소나무까지 함께 봐야 규모가 살아난다
불상만 확대해서 찍으면 거대한 자연암의 크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주변 소나무와 석조물, 바위 전체를 함께 넣으면 사람이 조각한 부분과 원래 암석의 경계가 드러난다.
요선정 주변은 요선암 강바닥보다 조용해 천천히 문화유산을 살펴보기 좋다.

길지는 않지만 슬리퍼보다 운동화가 맞다
요선암과 요선정을 돌아보는 일정은 긴 산행은 아니다.
하지만 강가에는 자연암반이 많고 흙길과 바위 구간도 있어 바닥이 평탄한 공원형 산책로와는 다르다.
특히 비가 온 뒤에는 바위가 미끄러워 슬리퍼보다 접지력이 좋은 운동화가 안전하다.
여름에는 물보다 암반 위 햇빛이 더 뜨거울 수 있다
물과 숲이 가까워 시원한 인상이 강하지만 강바닥 암반은 햇빛을 그대로 받는 곳이 적지 않다.
8월 한낮에는 바위 위 체감온도가 올라가고 요선정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땀이 날 수 있다.
여름에는 오전이나 늦은 오후를 선택하고 생수와 모자를 준비하는 편이 좋다.
아이와 간다면 돌개구멍 원리를 먼저 알려주면 훨씬 재미있다
자갈이 물에 의해 반복해서 회전하며 바위를 갈았다는 원리는 어린아이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현장에서 둥근 구멍과 길쭉한 구멍, 서로 합쳐진 구멍을 비교하면 자연과학 관찰 활동이 된다.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주면 단순한 계곡나들이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이 된다.
결국 요선암은 신기한 바위 하나보다 시간이 겹친 장소다
처음에는 강물이 만든 돌개구멍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위에서는 고려시대 마애여래좌상을 보고 그 옆에서는 1913년 세운 요선정을 만난다.
자연의 시간과 사람이 남긴 시간이 몇 분 거리 안에서 겹친다는 사실이 요선암을 다른 계곡여행지와 구분한다.
여행정보
장소 영월 무릉리 요선암 돌개구멍·요선정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도원운학로 13-39
요선암 천연기념물 제543호, 2013년 지정
형성 구간 주천강 하상 약 200m 화강암반
형성과정 하천이 운반한 자갈이 소용돌이와 함께 회전하며 기반암을 마모해 형성
요선정 1913년 건립, 숙종·영조·정조 어제시 봉안
마애여래좌상 고려시대, 높이 약 3.5m,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이용시간 상시 이용 가능
휴무 연중 개방
입장료 무료
주차 가능
추천 동선 주차 → 요선암 돌개구멍 → 요선정 →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 원점회귀
난이도 쉬움~보통
추천 체류시간 약 50분~1시간30분
준비물 운동화, 생수, 여름 모자
주의사항 비 온 뒤 자연암반 미끄럼, 강 수위 상승 시 접근 자제
관광안내 1577-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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